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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줄 몰랐던, 나만의 패킹 스타일

LIFESTYLE

여름휴가가 한창인 지금, 공항 컨베이어 벨트 위 많은 가방 속 존재는 어쩌면 가족보다 나의 욕구를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해외여행과 출장을 수없이 다니며 스스로도 알아챌 틈 없이 자신만의 짐 꾸리는 노하우가 생긴 인사들에게 물었다. “나만의 패킹 스타일은 뭔가요?”

디자이너의 비밀 코드는 ‘24색’
무대 디자이너는 공연 직전까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지루한 3D 작업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항상 자유로운 몸과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대한 갈증이 있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해외로 떠날 땐 이웃집 할머니가 재봉틀로 직접 지어준 가벼운 파자마 그리고 수채화 물감을 굳혀놓은 팔레트와 붓, 드로잉 노트를 꼭 챙긴다. 놀라운 점은, 이 아이템을 다른 아트 디렉터의 캐리어에서도 목격한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같이 짐을 풀 때 서로 바라보며 박장대소하곤 하는데, 포인트는 팔레트 물감이 12색도 아닌 24색이라는 데 있다. 허수정(무대 디자이너)

인형과 함께하는 해외여행
나처럼 글로벌 기업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달에 한 번은 4박5일가량 해외 출장을 다닐 터.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까지 소속을 불문하고 대체로 가져 가는 짐은 비슷하다. 노이즈 캔슬링이 가능한 헤드폰과 스타일을 무시한 가벼운 슬리퍼 등.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 딸이 준 작은 인형을 꼭 챙겨 가 숙소나 주요 미팅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 핑크퐁일 때도, 작은 곰돌이 인형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제 둘째 아들의 자동차로 바뀔 것 같다. 정지현(구글코리아 수석부장)

가장 그윽한 아침 식사
짧지만 해외 생활 경험도 있고 광고대행사에서 국제 담당으로 일했으니, 동서양의 어떤 문화에 놓여도 체류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평소 즐기는 차 티백(teabag)이나 몇 개 챙기면 그만이었다. 해외의 도심 호텔은 커피 포트가 없는 경우도 많아 일본에서 구입한 미니포트도 챙겨 갔다. 그런데 중년이 되니 입맛과 체력이 변하는 걸 느낀다. 지금은 차 티백 대신 어묵 티백을 챙긴다. 빠듯한 여행 일정에 피곤한 날은 물론, 특히 과음한 다음 날 아침은 전 세계 어떤 특급 호텔의 아침 메뉴보다 만족스럽다. 유성권(이퍼블릭 출판 대표)

노트북 속 드라마
요즘 아시아 마케팅 시장 교류가 늘면서 2박3일 정도 중국과 싱가포르행 짧은 여행이 늘었다. 늘 하던 대로 헤어 스타일링을 위한 포마드와 와이셔츠를 여러 벌 준비하고 도착하자마자 다려놓는 것이 나만의 루틴.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가벼운 노트북에 ‘미드’ 시리즈를 가득 다운받아 가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넷플릭스 서비스와 온라인 사용이 원활하지 않아 어느 순간 찾아오는 지루함을 견디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진민규(아마존 코리아 마케팅 팀장)

편안함의 유전자
어린 시절, 사업상 해외 출장이 잦은 아버지는 항상 캐리어에 베개를 넣어 가셨다. 언뜻 유난스러워 보이지만, 의외로 침구류를 들고 가는 비즈니스맨이 많다. 나도 주로 외국계 회사 마케터로 20여 년을 살다 보니 이제 이해가 된다. 바쁜 와중에 머리를 기대는 순간만큼은 내집 같은 편안함을 잠시라도 느끼고 싶은 것. 그래서 내가 고수하는 패킹 스타일은 아버지처럼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내가 편안한 것을 반드시 ‘기내 반입 사이즈 캐리어’에 챙긴다. 수년 전 벨기에 출장길, 일주일 치 짐을 부치고 히스로 공항을 경유하는데,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에어프랑스가 처리한 캐리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입국 당시 입은 옷 그대로 주요 일정을 처리해야 했던 끔찍한 기억. 아무리 길고 성대한 파티가 예약된 여행이라도 공항에 내려 바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속옷과 와이셔츠 두어 장만 다려 간다. 비닐 지퍼백에 넣고 적당히 공기를 넣은 채 밀봉하면 구김도 거의 없다. 고재용(마세라티 임포터 총괄 상무)

이국의 독서 낭만
우리는 둘 다 글 쓰는 사람이고, 글은 노트북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기에 종종 긴 여행을 떠난다. 결혼식 삼아 같이 쓴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도 호주 시드니에서 한 달간 지내며 작업한 책이다. 그때도 짐을 간소하게 꾸렸지만,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설렘은 놓치지 않았다. 요새는 여행 갈 때 꼭 ‘전자책’을 챙긴다. 비록 남편은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지 못하고 나 역시 물성으로서 종이책을 훨씬 좋아하기에, 전자책을 자주 보진 않지만 좁은 비행기 안에서나 이동이 잦은 경우 유용하다. 작년에 15일간 떠난 베를린 여행에서도 도리스 레싱, 다와다 요코, 이승우 작가의 소설을 여러 권 가져가 즐겁게 읽었다. 이국의 카페나 호텔 침대에 누워 하는 독서는 언제나 묘미가 있으니까. 박연준(시인)

아무리 많아도 괜찮은 가벼운 것들
글로벌 한류 콘서트 ‘KCON’을 준비하며 몇 년간 LA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 와보니 여행이든 출장이든 항공편으로도 최소 5시간 이상 장거리 구간이 흔하다. 미 국내선은 담요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레드아이(redeye)’라 불리는 밤 10시 이후의 늦은 출발 노선이 많기에 항상 체온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이럴 때 여성에게 캐시미어나 실크로 만든 얇은 스카프와 숄은 영원한 플라이 메이트가 아닐까. 부피도 작고 무게도 가볍다. 무채색부터 알록달록한 컬러까지 여러 개 챙겨 가면 그날그날 패션에 매치하기도 좋다.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으며 설사 잃어버려도 덜 섭섭한 나만의 베스트셀러 무라카미 하루키의 <슬픈 외국어> 같은 페이퍼백도 필수다. 김기주(CJ E&M America 컨벤션사업팀장)

슈트 맨의 족집게
연주자에겐 어딜 가든 잘빠진 슈트 한벌과 드레스 슈즈가 필수 아이템이다. 여기에 나만의 전용 패킹 아이템은 목적지와 계절을 불문하고 베스트와 커프스 그리고 족집게까지 더해야 완성된다. 아무리 바쁜 투어에도 꼭 하루는 풀 셋업을 하고 여행지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에 가는데, 공연 후 연주자들을 기다렸다 나를 소개할 때도 있다. 서로를 알아볼 만한 슈트 덕인지 때론 낯선 사이임에도 한참 동안 음악 얘기를 나눈다. 이런 남자에게 족집게는 정말 중요한 존재다. 언제든 눈썹부터 수염까지 뭔가 말끔하지 않을 때 바로 쓸 수 있는 도구 말이다. 나는 자동차부터 사무실까지 내가 가는 모든 곳에 족집게를 비치해둔다. 윤한(피아니스트)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정태호   소품 협찬 루이 비통, 로로피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