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여행자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세밀한 통찰과 따스한 포용이 담겨 있다. 이병률의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여행의 기쁨을 알았다.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도 늘 어디론가 떠나고, 여전히 사람 사이를 여행하는 이병률 작가를 만났다.

<끌림>의 누적 판매 부수가 150만 권을 넘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큰 기록이다. 사람들이 왜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늘 고민한다. 과연 내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그것을 재미있어 할까? 시는 지루하고 어려우니, 내 이야기를 쉽게 들려주는 방법이 산문이라 생각했다. 친구를 내 앞에 바짝 끌어당겨 앉히고 자상하게 얘기하듯이 산문을 쓰려고 한다. 글의 톤만으로 내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계속 의심하면서. 그 점이 통한 게 아닐까. 라디오 작가로 일할 때, DJ의 일상과 생각을 청취자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부분이 여행 산문집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운영하는 달 출판사에서 낸, 일반인의 여행 산문집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여행자> 서문에 ‘여행의 시대를 넘어 여행자의 시대’란 말을 썼다. 어떤 의미인가? 예전처럼 여행을 간절히 원하던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쉽게 여행을 떠나고, 세상에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여행 자체보다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온도나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도 여긴다. 조금은 외롭고 고통이 따르는 여행이 자기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여행의 주역은 자기라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서 ‘사랑과 여행의 닮은 점’을 얘기하며 20대에 여행과 사랑 모두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행자로서 청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사랑은 둘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철저히 혼자 되어 사랑을 ‘경영’할 필요가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도, 사랑도 혼자 해보며 헤쳐나갈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세상을, 사람을 보는 관점이 정비돼야 한다. 그 순간을 잘 통과하면 여러 가지를 많이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 같다.
여행자로서 부산은 어떤가? 이 도시가 영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는지? 오늘처럼 독자를 만나기 위해 1년에 네댓 번 부산에 온다. 서울행 기차를 타기 전, 혼자 남포동에서 부산역까지 걸을 때가 있다. 큰길이 아닌, 작은 골목길을 따라.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위태롭게 걷는 걸 좋아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자갈치시장에 처음 와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렬로 쭉 늘어선, 곰장어구이를 파는 포장마차촌 사이를 전전하던 추억 때문인지 남포동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좋다.
오늘 부산의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나? 만남의 주제가 ‘꿈이 있다는 것은, 그렇고 그런 삶을 뛰어넘겠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면 좋겠다. 그림이든, 음식이든, 음악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선명한 태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행복과 직결된다고 본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거나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면, 어영부영한 삶을 살거나 혼란스러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 즉 꿈이 있는 것은 그저 그런 삶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나의 경우 그것이 여행, 글 그리고 자유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 “여행지로 어디가 좋아요?”, “여행 갈 때 뭐 가져가세요?”, “시인인 줄 몰랐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역시 묻고 싶었다. 책에선 베네치아, 파리, 티베트에 애정을 듬뿍 표했다. 근래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어디인가? 한 달 전쯤 혼자 열흘 동안 일본 마쓰모토를 여행했는데, 좋았다. 사실 지금은 여행지가 어디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 일터에서 벗어난, 일상에서 분리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난 글을 쓸 때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고, 대체로 막힘도 없는 편이다. 왜 그런가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그럴 때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비록 생각한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써야 할 순간이 오면 어느새 또 기별이 온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에피소드 중 ‘여행 가방에 무엇이 있나’ 편에서 ‘최소한의 감정 재료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조만간 어디로 떠날 예정인가? 무엇을 챙겨 갈 것인가?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사람에 관한 글만 쓰고 살 정도니까.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만 사람을 만날 순 없다. 요즘 같은 때 10년 넘게 만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가족이 아닌 이상 별로 없다. 그래서 여행 갈 때, 나름대로 잊어야 할 사람과 정리할 사람을 생각하고 챙겨 간다.
그렇게 사람을 챙겨 간 여행지에서 또 사람을 만나고, 그에 대한 글을 쓴다. 다음은 어느 곳일지 궁금하다. 조만간 네팔을 경유해 부탄에 다녀오려 한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이다’ 여겨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부탄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부탄에 가서도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작가의 여행책도 읽는 편인가? 근래 읽은 여행책 중 좋았던 게 있다면?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동시대 소설가의 여행책인데, 나와 관점이 달라 좋았다. 작가와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거다. 내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 이들도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의 결은 다 비슷할 것이다. 여행지에 가서 걷고, 시장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 관찰하고, 그러면서 술 한잔하고. 정말 비슷할 거다. 그런데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뽑아내는 글은 제각각 다르다. 김연수는 생각을 통해 실크를 뽑아내는 작가다. 김영하는 팽팽한 낚싯줄을 뽑아내는 것 같다. 나도 굳이 비유하면, 국수를 뽑아낸다. 적당히 잘 풀어지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국수. 작가마다 지닌 본연의 필터가 다르다. 그래서 글도 다르게 나온다.
국수 같은 글을 또 읽고 싶다. 많은 사람이 이병률의 신작을 기다릴 것 같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 있는지? 9월에 산문집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에는 여행 에세이도, 시도 아니다. 혼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글이다. 생각도, 철학도 없으면 혼자 사는 삶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지 절실히 느낀 부분을 담으려 했다.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라는데, 나부터 챙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나를 챙긴다는 것은 ‘혼자를 잘 경영한다’는 의미다.
에디터 손지혜
사진 공정현 촬영 협조 이터널 저니(아난티 코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