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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게 좋아

LIFESTYLE

많이 먹는 게 미덕이 된 요즘, 먹는 방송을 보는 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많이 먹지 못함에도, 대식가처럼 보이고자 엄청난 양의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식사 자리에서 항상 숟가락을 1등으로 내려놓을 정도로 에디터는 입이 짧다. 한 끼에 밥 한 공기를 다 먹은 적이 손에 꼽고, 없어서 못 먹는다는 치킨도 3조각 먹으면 질린다.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곧바로 속이 더부룩하고 갑갑한 기분마저 든다. 음식을 양껏 못 먹는 이유를 스트레스성 위염, 평균보다 작은 위, 나쁜 소화기능 등으로 추측하며 위내시경도 받아봤지만 돌아온 건 ‘건강에 이상 없음’이란 문자 한 통. 굉장히 심각하게 썼다만, 사실 2010년 초까지는 살면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되레 친구들에게 “네가 적게 먹어서 내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다. 한데 ‘먹방(먹는 방송)’이 선풍적 인기를 얻으면서 2015년 무렵부터 많이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약하다는 핀잔을 듣기 시작했다.
‘Mukbang’이란 이름으로 수출까지 한 ‘먹방’은 우리나라 고유 콘텐츠로, 1인 스트리머가 음식 먹는 모습을 실시간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초기 먹방은 말 그대로 먹는 방송이었다. 적당량 또는 그보다 조금 많은 음식을 보기 좋게 플레이팅해 깔끔하게 먹는 그런 모습.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봐서 무엇을 하느냐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보고 있으면 입맛이 돌기도 하고 혼자 밥먹을 때 켜두면 적적하지 않다. 당시 먹방은 생활 밀착형으로 타인의 삶에 대한 작은 호기심도 해소할 수 있었다. 생태계가 변하기 시작한 건 한 스트리머가 등장하면서부터다. 2013년쯤 나타난 그는 한 끼에 피자 한판과 햄버거 5개를 먹는 대식가였다. 관심을 받기 위해 억지로 먹는 게 아닌 깔끔하게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먹방 시장을 독식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먹방의 흥망성쇠는 먹는 음식의 ‘양’에 좌우되었다.
유튜브의 성행,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리며 먹방의 인기는 점점 증가했다. 덩달아 먹방 스트리머도 늘어나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보통은 콘텐츠의 절대 수가 많아지면 종류도 다양해진다. 먹방도 그랬다면 좋겠지만, 이 세계의 성공 기준은 오로지 먹는 양이다. 왜냐? 시청자가 많이 먹는 스트리머를 좋아해서다. 한 스트리머가 케이크 한 판을 다 먹고 호평받았다면, 다른 스트리머는 케이크 2판에 아이스크림 파인트 한 통을 먹어 박수갈채를 받는 식이다. 유튜브 먹방은 ‘도넛 90개 도전’, ‘돼지고기 3kg’, ‘1만kcal 먹방’ 등 평범한 사람은 결코 먹을 수 없는 양이 기본이고, 한눈에 봐도 고칼로리인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방송을 시작한다. 떡볶이와 핫도그, 보기만 해도 혀가 아려오는 매운 음식에 휘핑크림을 뿌리는 등 칼로리에 칼로리를 더하는 음식 조합을 찾아 소개하기도 한다. 더 많은 양, 더 높은 칼로리, 더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스트리머에게는 대단하다는 댓글이 찬사처럼 달리고, 적당량을 먹는 스트리머에게는 저조한 조회 수만 남는다. 대식가 스트리머가 단 한 번이라도 평소보다 조금 먹으면 초심을 잃었다는 악플이 달린다. TV 방송도 다르지 않다. 코미디 TV의 <맛있는 녀석들>과 올리브 TV의 <원나잇 푸드 트립>도 출연자가 섭취량으로 신기록을 세운 편만 회자되며, MBC의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같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도 대중에게 주목받는 출연자는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다. ‘잘 먹는다’는 기준은 이제 복스럽게 먹는 게 아닌 먹는 양에 달려 있다. 많이 먹는 게 미덕인 세상이다.

1 1박 2일 동안 해외로 떠나 음식을 최대한 많이 먹고 오는 TV 프로그램 <원나잇 푸드 트립>.
2 잘 먹는 건 음식의 양보다 질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3 음식을 더 먹음직스럽게, 더 기름지게 카메라에 담는 미국 리얼리티 쇼 <푸드 포르노>.

지난해 여름, 보건복지부의 ‘먹방 규제’ 논란이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2018~2022)’에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 TV, 인터넷 방송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모니터링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간 비만 관리를 목적에 둔 정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에 탄산음료 자판기를 두지 않거나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고열량 식품 TV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과한 처사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첫 비만 관리 대책인 데다 (다른 내용이 많음에도) 미디어를 규제하겠다는 내용이 대중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행위라는 반발이 빗발쳤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법적 규제는 아니며 금연을 위해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되도록 송출하지 않듯 건강에 좋지 않은 비만과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발표해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요즘, 상황은 다소 바뀌었다. 방송 횟수만큼 스트리머의 체중이 불어나는 게 보이자 ‘건강 학대에 가깝다’, ‘일종의 식이 장애다’라는 등 먹방이 불러일으키는 건강과 비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월에는 일본의 한 유튜버가 주먹밥을 한입에 먹는 먹방을 하다 질식 증세를 보이다 결국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먹방을 하는 것, 보는 것이 엄연한 개인의 자유 의지임에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건 미디어가 지닌 파급력 때문이다. 화면에 노출된 간접광고를 계속 보다 보면 특정 상품을 사고 싶은 심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희 목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먹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평소보다 많이 먹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미디어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대식가 스트리머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가 먹는 음식량을 다른 스트리머에게 똑같이 요구하고, 재미있는 먹방은 많이 먹는 방송이란 공식을 세운 시청자는? 수요 없는 공급은 없다. 대중이 환호하는 방향으로 스트리머가 반응했고, 시청자가 더 자극적인 방송을 찾자 출연자는 방송에서 대식가의 탈을 썼다. 푸드 포르노에 빠진 이 상황은 많은 이의 욕구가 뒤엉켜 나온 결과물이다.
SNS에서 해시태그가 많이 달린 레스토랑을 찾아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소개하는 TV 시리즈 <푸드 포르노(Food Porn)>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타이틀에 충실한 이 프로그램은 두툼한 피자를 들어 올리며 치즈를 길게 늘어뜨리고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진 디저트를 먹음직스럽게 촬영한다. 처음에는 식욕을 돋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찌푸려지고 식욕이 떨어진다. 기름을 뚝뚝 흘려가며 크게 피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아이스크림을 초콜릿으로 떠먹는 진행자의 모습이 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다. 더 과한 걸 요구하고, 필터 없이 시청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미디어를 제작하면 뉴스에서 먹방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릴지 모른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가장 좋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