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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힘

ARTNOW

18년간 강원도 영월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한 동강국제사진제에 다녀왔다. 올해 <국제주제전>은 독일 베허학파 사진가들을 재조명했고, ‘동강사진상’은 DMZ를 우리나라 최초로 촬영한 박종우 작가가 수상했다.

강원도 지역 문화 축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동강국제사진제 전시장.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예술 대학교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usseldorf)’는 독일 현대미술 사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1976년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던 베른트 & 힐라 베허(Bernd & Hilla Becher) 부부가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로 초빙되면서 본격적으로 독일 사진의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 베른트 베허는 독일 아카데미 최초의 사진학과 교수로, 베허 부부가 배출한 사진가로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 토마스 슈트루트(Thomas Struth), 악셀 휘테(Axel Hutte) 등 ‘빅 5’가 있다.

<국제주제전> 전시 전경.

베허 교수는 강의를 하면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데, 그가 제자에게 특히 강조한 것은 피사체가 관람자로 하여금 의문을 가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7월 5일부터 9월 29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을 중심으로 지역 박물관과 문화센터 등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에는 그의 뒤를 잇는 21세기 베허학파 작가 보리스 베커(Boris Becker), 라우렌츠 베르게스(Laurenz Berges), 클라우디아 페렌켐퍼(Claudia Fahrenkemper), 클라우스 괴디케(Claus Goedicke), 마티아스 코흐(Matthias Koch), 마르틴 로스보크(Martin Rosswog), 이윤진 등이 작품과 함께 직접 영월을 찾아 자리를 빛냈다.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박종우 작가의 작품.

국내외 사진작가와 사진 애호가,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동강국제사진제의 장점 중 하나는 개막 다음 날 주요 사진작가들의 전시 투어가 이어진다는 것.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신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유명 작가들의 진지한 모습은 사진 애호가라면 놓치지 아까운 장면이다.
올해 동강국제사진제는 <국제주제전>을 비롯해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국제공모전>, <강원도 사진가전>, <보도사진가전>, <거리설치전> 등으로 구성됐다.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박종우는 2009년 국방부와 협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DMZ를 촬영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비무장지대, 한강하구중립수역, 북방한계선, 임진강, 대전차장애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한반도 분단을 다룬 그의 작품은 엄숙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지뢰의 위험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고, 철모와 방탄조끼를 입고 수색 대원들과 함께 다니며 촬영한 그의 땀과 노력이 전시장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동강국제사진제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국제공모전>의 테마는 ‘꿈, 색을 입다’. 61개국 4881점의 출품작 중 영예의 ‘올해의 작가’에는 폴란드의 젊은 사진가 마르타 즈기에르스카(Marta Zgierska)가 선정됐다. 그녀는 생사를 가르는 교통사고와 우울증을 겪은 후 자신을 직접 작품에 등장시키기 시작했는데, ‘봉헌을 위한 형상’ 시리즈는 자신의 신체에 밀랍을 씌워 뜨겁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 탄생한 숭고한 결과물을 조롱한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세계적 사진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동강국제사진제. 앞으로도 강원도의 지역 문화 축제에서 벗어나 사진 예술 애호가의 성지로 뻗어나가길 기대해본다.

베허 교수의 제자이자 독일 사진작가 보리스 베커의 작품.

Mini Interview 사진작가 보리스 베커(Boris Becker)
신작 ‘연출된 혼란’으로 동강국제사진제를 찾은 독일 스타 사진가 보리스 베커를 만났다.

사진작가가 된 계기에 대해 얘기해주세요.베를린 예술학교를 다닐 당시만 해도 베를린 장벽이 존재했던 터라 ‘장벽’ 연작을 작업했지요. 그리고 ‘벙커’ 연작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벙커는 목적을 숨겨야 하는 군 시설입니다. 하지만 사진은 있는 그대로 정면만을 보여주는 매체죠. 피사체의 이면을 알 수 없어요. 벙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를 알 수 없는 벙커에 매료되어 사진을 시작한 셈입니다.

동강국제사진제에 출품한 ‘연출된 혼란’은 어떤 작품인가요?우리는 사진만 보고는 사진 속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요. 시리아 건물 옥상을 담은 작은 사진은 2010년 아랍의 봄 개방 당시 촬영한 것인데, 이 사진 한 장에 시리아의 역사가 담겼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2014년에 찍은 사진은 박제한 동물이 가득한 공간을 보여줍니다. 어떤 부자의 서재인데, 30년간 취미로 사냥을 즐긴 그의 서재에서 받은 강렬한 첫인상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8년에 촬영한 사진은 피아노가 있는 동독 건물 모습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이 사용했기 때문에 러시아 글자가 보이지요. 관람자가 개방적 사고를 가지고 있더라도 건축의 역사를 알 수 없으니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장치는 모두 제 의도라고 할 수 있죠.

작품을 촬영할 때 미술가로서 어느 정도 피사체에 개입하는지 궁금합니다.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쓰레기 정도만 치우지요. 고유의 풍경에 개인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 기록을 남깁니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명확하지 않게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지요.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 베허 교수를 사사한 사진가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요?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베를린 예술학교는 일반적인 사진학을 가르치고,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는 보다 개방적입니다.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에서는 작품 주제를 학생이 직접 선택해야 하며, 학생의 자율권이 큽니다. 베허 교수의 가르침이 외부 세계로 시각을 넓힌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이소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