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은 그저 거들뿐
열정의 온도가 닮은 두 명의 스포츠맨. PGA 투어 이승호 부사장과 KBL 울산 현대모비스 이대성 선수를 만났다.

이대성 선수가 입은 터틀넥 스웨터와 코듀로이 팬츠 Loro Piana, 이승호 부사장이 입은 캐멀 재킷과 화이트 니트 스웨터, 블랙 팬츠 모두 Ermenegildo Zegna.
스포츠는 집단의 드라마다. 무수한 개인의 피와 땀을 자양분 삼아 완성되는 서사다. 이들은 팀원이나 코치, 스태프, 스폰서라는 여러 이름으로 경기에 참여한다. 이런 무기명이 없다면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스포츠가 감동적이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조력자는 스포츠라는 극을 완성하는 핵인 셈이다. PGA 투어 아태지역 사업본부 총괄 부사장 이승호와 KBL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가드 이대성은 서로에게 팀원이자 스폰서다. 포지션과 나이, 방식은 다르지만 또렷한 목표 의식과 열정의 온도는 놀랄 만큼 닮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8년에 시작됐다. 당시 NBA 아시아 한국 지사에 소속된 이승호는 KBL과 공동으로 주최한 학생 캠프에서 이대성을 발견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빛나는 재능이었다. “이대성 선수는 놀라웠다. 여타 선수와는 확연히 달랐다. 실력은 물론 쇼맨십까지 갖춘 슈퍼 루키였다. NBA 오클라호마시티의 러셀 웨스트브룩이 떠올랐다고 할까. 한국에 있기는 아까운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NBA에서 파견 나온 스태프의 의견도 같았다. 그래서 미국 대학 진학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대성은 국내 대학 한 곳과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끝난 것 같은 인연은 2년 뒤 다시 이어졌다.
화려하게 대학 농구를 시작했지만, 이대성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보수적인 한국의 플레이와 그는 맞지 않았다. 이대성은 몇 년 전 꿈 같은 제안을 한 이승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2년을 벤치에서 보냈다. 시합에 나가고 싶었다. 절실한 마음에 도움을 청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그의 말처럼 두 사람의 통화는 이대성 선수의 커리어를 통째로 바꿨다. 당시 NBA 홍콩에 있던 이승호는 흔쾌히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는 이대성의 실력과 재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2년의 공백을 설명할(또는 걱정을 불식할)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캠코더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이승호의 플레이를 담은 뒤 직접 편집해 미국 NBA에 보냈다.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NBA는 이승호에게 NBA 하부 리그의 로컬 트라이아웃 기회를 줬다. 수천 명 중 단 한 명만 뽑는 로또 확률의 기회였다. 이대성은 거기서 톱 3에 들었다. 최후 일인에 선정되지 못했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플레이였다. 그를 유심히 지켜본 브리검 영(Brigham Young) 대학 농구팀 켄 와그너 감독은 이대성에게 입학은 물론 4년 장학금을 약속했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붙었다. 상위 성적의 토플 점수. 이승호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운동만 하던 선수가 몇 개월 내로 그 점수를 받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색하지 못했지만 상황이 너무 가혹했다.” 묵묵히 조건을 듣던 이대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영어 학원 옆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긴 뒤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곤 20시간 동안 영어에 매달렸다. 농구공을 놓고 고시생처럼 공부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기적처럼 커트라인을 통과했다. 이승호는 그때 이대성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대성 선수는 농구가 아닌 분야에서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대개 꿈을 이야기하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노력까진 이뤄지지 않는다. 그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은 원하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승호는 이대성을 도왔다.
이승호 부사장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농구가 좋아 유년기에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성장을 멈춘 신장과 부상으로 NBA라는 꿈이 좌절되자 또 다른 높은 벽을 선택했다. 그는 월드컵 조직위원회(2002)와 NBA 스폰서십 디렉터(2003~2012), EPL 명문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APAC 세일즈 본부장(2013~2016)을 거쳐 현재 PGA에서 활동 중이다. 모든 스포츠 마케팅 전공자가 바라는 꿈의 영역이다. 그런 그가 캠프에서 이대성 선수를 발견했을 때, 도움을 청해왔을 때, 로컬 트라이아웃에서 톱 3에 들었을 때 자신이 이루지 못한 NBA의 꿈을 이대성 선수가 이뤄줄 거라고 믿었다. 그의 예감대로 이대성은 NBA G리그(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Gatorade League)에 입성했다. 최상위 선수만 선정한다는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이었다. KBL에 복귀한 이대성은 2018-2019 시즌 34경기에 출전해 평균 14.1득점, 2.7리바운드, 3.5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그는 “이승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내가 꿈이나 계획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미쳤다’거나 ‘무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인 계획을 독려하고 함께 고민해줬다. 이제껏 내가 받은 어떤 어시스트보다 값진 것이다. 언제고 NBA에 다시 도전할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가능하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선수와 프로모터라는 위치에 있지만, 이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최고가 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그리고 최대 노력을’이라는 가치와 태도가 꼭 닮은 것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김보성 스타일링 서재희 헤어 이경혜 메이크업 강석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