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 하나에 담긴 곧은 정신
47년간 무던히 글씨를 써온 강병인이 올해 새로운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

애주가가 아니기에 주류 브랜드를 꿰고 있는 편은 아니다. 술자리에서도 “나는 잘 모르니 어떤 것이든 좋다”라며 메뉴 선택에서 한발 물러나는 게 평소 내 역할이다. 그런데 작년 여름 한 모임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메뉴판을 뒤로한 채 주변을 살피는데, 주류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새하얀 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밤’. 언뜻 보고 가벼운 필치로 쉽게 쓴 글씨인 줄 알았는데, 각각의 획이 머금은 먹의 묵직함이 시선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이내 서울의 ‘시옷’과 ‘이응’에서 인왕산과 하늘에 높이 뜬 해가 보였고, 여러 개의 병이 줄지어 있는 덕에 글씨는 곧 조선시대 어좌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로 분했다. 글씨에 반해 주문한 서울의 밤은 가벼운 첫맛으로 시작해 묵직한 끝맛을 남겼다. 마치 농묵이 지닌 힘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강병인의 필치처럼.
“서울의 밤은 미소를 표현하려 했어요. 밤의 ‘미음’이 웃는 모습이죠. 예로부터 서예에서 기운생동을 중시했듯이 글씨는 생명력이 넘쳐흘러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여러 감정 중 삶의 원동력이 되는 행복을 글씨에 담은 거죠. 사실 제가 쓴 글씨를 나중에 보면 양가감정이 들어요.(웃음) 왜 저만큼밖에 못 썼을까 싶다가도 제품이나 드라마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칭찬을 들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곤 하죠. 가장 보람찬 건 제 글씨가 여기저기 쓰이면서 한글의 멋도 널리 퍼진다는 점이에요.” 과장할 필요 없이 한국 사람이면 최소 한 번은 강병인의 글씨를 보았다고 단언한다. 주류 브랜드 ‘참이슬’·‘화요’·‘산사춘’, TV 드라마 <미생>·<대왕 세종>·<장사의 伸>, 영화 <의형제>, ‘백상예술대상’·‘골든디스크어워즈’ 등이 모두 강병인의 글씨다. 한 사람이 썼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각 모음과 자음의 삐침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다. 그는 “서예를 독학한 저는 전문적으로 배운 분에 비하면 실력이 한참 모자랍니다. 단지 혼자 해왔기에 틀에 박히지 않은 다른 생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 하지만 작업실에 쌓인 화선지와 공간을 가득 메운 진한 먹 내음에서 지금의 강병인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엿볼 수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붓을 잡는 강병인은 자신의 철학과 그날의 정신을 획 하나하나에 눌러 담는다. 매일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화선지 앞에 서니 똑같은 글씨가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일. 강병인의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이유도 이와 같다.

1 가지런히 놓인 강병인의 붓.
2 숨을 고른 후 강병인이 화선지 위에 한 획, 한 획 긋기 시작했다.
주로 한글을 쓰지만, 한자와 알파벳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제품과 광고에 캘리그래피를 입히는 일로 명성을 얻었지만 <독립열사 말씀, 글씨로 보다>전, <한글.꽃.봄.>전을 개최하며 서예 작품 활동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강병인의 호칭은 ‘캘리그래퍼’, ‘서예가’, ‘멋글씨작가’로 여럿이나, 서예와 캘리그래피를 대하는 그의 마음은 같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캘리그래피 시장을 구축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서예와 구분하려는 목적으로 캘리그래피라는 용어를 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죠. 제 작품 대다수가 붓끝에서 시작되기에 서예와 캘리그래피를 용어로 나누는 건 큰 의미 없더군요. 글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는 단 한순간이에요. 순수예술을 할 때는 제 철학을 온전히 담지만 디자인적 글씨는 제품의 특성, 소비자와 광고주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쓰는 정도죠.”
한데 서예와 캘리그래피가 다른 의미로 통용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시점이다. 그에게 다시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관계를 묻자 강병인은 명확히 설명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고 답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기록의 수단에서 시작했지만, 문방사우를 사용하는 서예는 점점 정신과 철학을 우선시하며 예술 반열에 올랐다. 펜, 만년필, 연필 등 도구가 다채로운 캘리그래피는 자유로운 표현이 특징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 그리고 이를 우리나라에 한정해 설명하면 더 복잡하다고 덧붙인다. “저는 캘리그래피가 한국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요즘 통용되는 멋진 글씨 쓰기로 기록과 전달 목적이 강하죠. 다른 하나는 현대적 서예입니다. 서예를 영어로 번역하면 캘리그래피예요. 맑고 강인한 정신을 갖춰야 하는 일필휘지의 예술처럼, 캘리그래피에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더하면 서예와 다를 바 없죠.”
1세대 캘리그래퍼라 불리는 강병인은 지금 인생의 변곡점 앞에 서 있다. 47여 년간 한글의 멋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면, 이제는 강병인을 드러내는 글씨를 쓰려 한다. 또 제대로 된 ‘서예 시장’ 만들기라는 중책도 맡았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지던 서예가 점점 취미 생활로 전락하며 예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현실을 재정비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즉 은퇴 이후 벗 삼아 하는 취미 서예와 체계적 교육에 바탕을 둔 전문 서예를 나눠야 한다는 것. “서예가 제 위치를 회복하려면 궁극적으로 서예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술 시장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고, 교육 체계를 살피며 서예를 전공한 친구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야 해요. 나아가 서예계를 이끌어갈 작가를 배출해야 합니다. 서예가 단순히 글씨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회화 이상의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서예뿐 아니라 캘리그래피 시장도 덩달아 커질 거예요. 제가 캘리그래피 시장을 구축한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거라 생각해요. 몇 년이 걸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참 어려운 문제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씨로 얻은 지금의 성공도 노력이 아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덕분이고, 한글의 다양한 모습을 알리고 싶은 열망에 모든 작품을 다른 모양새로 썼다며 한글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강병인. 마침 10월인 만큼 그에게 이번 한글날을 어떻게 보낼지 물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365일을 한글날처럼 보내요. 항상 한글이 있음에 감사하고, 이토록 민주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를 창제한 세종대왕께 경의를 표하죠. 한글날이면 그러한 마음가짐이 더 다소곳해지는 경향은 있네요. 제가 종로에 연구소 터를 잡은 것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지역이란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한글날을 맞아 두 가지 소망을 말해보면, 세종이 태어난 이 동네에 기념관이 생기는 것 그리고 현시점에 맞게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교체하는 거예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