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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고양이

LIFESTYLE

확실한 팬덤을 구축한 당대 고양이 스타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인간에 대한 분석으로 끝을 맺는다.

< Choupette: the private life of a high-flying fashion cat >은 슈페트의 관점에서 비밀스러운 사랑과 패션 팁,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조언한다.

고양이가 한 집단을 대변하는 아이콘(icon)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 스타 고양이의 역사는 20세기 ‘발레의 아버지’라 불린 무용가 게오르게 발란친의 집에서 시작한다. 요즘도 자주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등 유명 발레 작품의 다수가 그의 안무를 따를 만큼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혹자는 그가 가장 아낀 제자로 고양이 무르카를 꼽는다. 그만큼 녀석의 점프 실력은 좋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주인 앞에서 뛰어오르는 모습이 1963년 12월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에 실리면서 이른바 ‘셀레브러티 캣’이 되었다.
백발의 꽁지머리, 검은 슈트와 선글라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모습은 패션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의 사후에도 주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의 버먼종 암고양이, 아니 ‘뮤즈’ 슈페트는 어떤가. 원래 개를 좋아하던 라거펠트는 일흔일곱 살이 되던 해 만난 당시 4개월 된 고양이에게 푹 빠졌다. 입양 후 9개월간 600페이지가 넘는 기록을 남길 만큼 ‘그녀’에 대해 자세히 관찰했고 보디가드, 주치의도 따로 둘 정도였다. 슈페트는 엄밀히 말해 라거펠트의 사생활이기에 샤넬은 슈페트에 관한 공식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은 슈페트를 비공식 샤넬 홍보대사라 불렀고, 슈페트 역시 활발히 활동했다. 당연히 수만 팔로어를 거느린 SNS 계정도 있다. 자동차 브랜드 오펠과 달력을 만들고 슈에무라와 협업해 자신의 이름을 본뜬 화장품을 출시해 약 400만 달러를 벌었다. 슈페트의 저서(?)가 아마존닷컴에서 여전히 팔리고 있으니 올 2월 라거펠트의 사후 슈페트가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올해 부쉐론의 광고캠페인에서 다이아몬드로 형상화한 블라디미르의 눈빛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보다 앞서 활동한 패션계 스타로는 부쉐론의 블라디미르가 있다. 블라디미르는 창업자의 아들 제라드 부쉐론에게 입양되어 1979년 부쉐론 광고에 첫 출연했다. 앞서 다른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뮤즈로 활동해 화려한 삶에 익숙한 이 검은 고양이는 다이아몬드나 진주뿐 아니라 부쉐론의 최신 시계를 보면 발버둥칠 만큼 감식안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방돔 광장 26번가에 자리한 부쉐론 하우스에 머물며 단골들이 자신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등을 내주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큰 사랑을 받았다. 결국 부쉐론은 1981년 광고를 통해 블라디미르를 불멸의 존재로 탄생시켰고, 블라디미르 고유의 디자인 라인을 만들었다.

1 다우닝가 10번지 앞에 선 래리. 래리는 쥐 앞에서도 꼼짝하지 않는 근무 태만으로 2012년 잠시 해고당했다가 복귀하기도 했다. 최근 보리스 존슨 총리의 여자친구가 관저에 강아지를 들여오면서 래리의 향후 활동이 얼마나 보장될지 언론으로부터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2 무르카는 자서전 < Mourka the Autobiography of a Cat >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내용은 무르카가 동물 보호소에서부터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아파트에 오기까지 고양이의 성공한 일대기를 그렸다.

유난히 동물을 사랑하는 영국은 아예 고양이가 내각을 지킨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자리한 총리 관저에는 우리말로 수렵 수석 보좌관으로 부를 법한 ‘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라는 직책이 있다. 1924년부터 12대에 걸쳐 이어온 이 자리의 임무는 방문객을 맞거나 보안 상태 점검(쥐잡기), 300년 된 관저의 고가구 테스트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고양이는 2011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시절부터 활동 중인 수컷 래리다.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동료 암고양이 프레이어(주인은 조지 오스본 재무부장관, 교통사고를 당한 뒤 2014년 은퇴했다)를 견제하는가 하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문 시 리무진 밑에서 꼼짝하지 않아 이동을 방해하는 등 12세 나이에 걸맞게 노련하면서 정치적 행보로 종종 주요 언론 매체의 가십에 오르는 요주의 아이콘.
그 밖에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홈 구장에 난입했다 마스코트가 된 샹크스나 잠실 야구장의 검은 고양이 네로는 때때로 일상을 활력 있게 만드는 뉴스가 된 지 오래다. 영국 수상 처칠과 클린턴 대통령의 퍼스트 캣을 비롯해 수많은 아티스트와 인사에게 아이콘이자 뮤즈로 존재해왔다. 몽테뉴는 고양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쓰기도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 20년 넘게 산 자신의 고양이를 소재로 종종 글을 써왔다. 앤디 워홀은 모두 ‘샘’이라고 이름 붙인 15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면서 작품 속 모델로 등장시켰다. 가수 프레디 머큐리는 투어 중 노래를 불러줄 정도로 사랑한 고양이 딜라일라에게 동명의 곡을 만들어 헌정하기도 했다.
이쯤에서 세상 기호(design)가 아닌 아이콘의 조건은 무엇인지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처럼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이콘이 되려면 필요한 조건은 세 가지다. 당대를 대표하는 상징성과 차별화된 독창성, 대중적 인지도다. 정치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핵심은 셋 중 한 가지라도 빠져선 안 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 고양이는 이집트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껏 주로 사냥 능력 때문에 인정받아온 동물이자 제물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홍대 감성’으로 대표되는 청년 문화의 상징에서 주류 사회의 임무까지 고양이의 인기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영국의 동물학자 존 브래드쇼는 저서 <캣 센스>에서 개와 달리 고양이는 감정을 숨기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애묘인의 주장과 달리 인간뿐 아니라 동족 간에도 질투심이나 죄책감을 느끼기도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경쟁적인 동물로 진화했다. 오히려 브래드쇼는 고양이의 인기를 걱정한다. 도심에 살기 좋은 반려동물로, 또 좁은 공간과 접촉 공간에서 가축화가 진행되어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또 다른 관계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고양이가 특유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쉽게 동요하지 않기를 바라는 학자의 바람에서 힌트를 얻었다. 거의 모든 기술과 발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오늘날, 사생활과 개개인의 철학을 쉽게 침범하는 사회에서 고고한 자태로 존립하길 바라는 인간의 희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털 있는 동물을 쓰다듬으면 실제로 인간의 심장박동이 느려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조직의 리더가 왼쪽 가슴을 부여잡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공간과 따뜻한 체온으로 위로해줄 고양이일지 모른다. 훗날 고양이의 인기가 떨어져도 상관없다. 고양이가 전해주는 묵묵한 위로와 공감 능력은 인류의 영원한 염원일 테니까. 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