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품격
창조 활동에서 비롯한 지혜와 예술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에시스(Poiesis). 숭고한 장인정신과 거침없는 도전정신을 대변하는 다섯 스포츠 브랜드를 통해 포이에시스의 진정한 가치를 엿본다.

1 인그레이빙 디테일.
2 지미 카터의 서명을 새긴 로드.
3 라탄 그립 버전.
플라이 낚시의 손맛, 오이스터 뱀부 플라이 로드(Oyster Bamboo Fly Rod)
강이나 호수에 발을 담그고 굽이치는 물길 속에서 캐스팅을 즐기는 플라이 낚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가 물안개 자욱한 강가에서 낚싯대 던지던 모습을 기억한다면 플라이 낚시의 낭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이 낚시계의 명품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오이스터 뱀부 플라이 로드(이하 오이스터)’는 유리섬유나 보론, 캐블러 같은 합성 소재가 주를 이루는 기존 브랜드와 달리 전통 소재인 대나무를 사용해 낚싯대를 만든다. 대나무 특유의 뛰어난 탄성과 가벼운 무게 덕에 일반 낚싯대와는 다른 ‘손맛’을 느낄 수 있다고. 전통 소재를 사용하는 대신 알루미늄 파우더 코팅으로 내구성을 높였고, 포르투갈산 코르크에 명주실을 촘촘히 감싸 만든 정교한 그립과 니켈 실버 소재 릴 시트 등을 기본 옵션으로 제공한다. 오이스터는 낚시 애호가로 알려진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의 많은 강태공을 위한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테일한 마감까지 장인이 손수 작업하기에 1년 동안 생산하는 맞춤형 로드는 단 40개에 불과하다. 오이스터의 가치를 더하는 건 낚싯대의 마디를 장식하는 정교한 인그레이빙 기술. 브랜드 오너 빌 오이스터(Bill Oyster)는 세계 최대 인그레이빙과 주얼리 장비업체인 GRSTC사의 교수를 겸하고 있을 정도다. 작업하는 데 평균 100시간 이상 소요되는 그의 인그레이빙 디테일을 더한 오이스터의 낚싯대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4 다채로운 디자인의 스키 컬렉션.
5 자이 스키 제작 과정.
현대판 연금술을 스키에 구현하다, 자이(Zai)
스위스 그리송주에 위치한 마을 디센티스(Disentis). ‘인적이 없다’라는 뜻의 데세르티나스(desertinas)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로 작고 고요한 이곳에서 혁신적 스키 브랜드 ‘자이’가 탄생했다. 자이는 화강암, 삼나무 같은 천연 재료와 탄소 나노 튜브,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등 첨단 소재를 결합해 스키를 만든다. 스키의 가장 밑면이 되는 첫 번째 층은 흑연 함량이 높은 소재에 나노 코팅을 입혀 주행 성능을 높이고, 두 번째 층은 가장자리에 스테인리스스틸을 둘러 충돌로부터 스키를 보호한다. 장거리 경기 제품에는 특수 경량 소재인 다이니마(Dyneema)를 사용하는데, 강철보다 1.5배 강한 내구성을 지녀 저온에 장시간 노출해도 경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연금술이 연상되는 창의적 소재의 결합과 체계적 설계 방식은 자이의 뛰어난 품질을 완성하는 비결. 브랜드 오너 시몽 자코메(Simon Jacomet)는 자이 스키의 진동 흡수력이 뛰어나 빠른 속력을 내야 하는 스피드 경주자는 물론 초보자도 안정적으로 스키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변 산지의 석재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도 관심이 많은데, 스키 중심부에 편마암을 적용한 뒤 이를 탄소섬유로 감싸 압력에 대한 저항력과 유연함을 높인 스파다(Spada) 모델이 그중 하나다. 자이는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거쳐 석재의 숨은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까지 반복되는 시행착오가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시몽. 그는 사람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스키를 탈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것, 나아가 스키라는 도구를 잊고 눈 속에서 창조적으로 움직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6 초창기 카탈로그.
7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커스텀 레이디(Custom Lady).
8 올림픽 챔피언 피에로 딘체오(Piero D’Inzeo).
9 파리아니 안장을 사용한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작품이라 불리는 안장, 파리아니(Pariani)
이탈리아에서 100% 수작업으로 승마 안장을 만드는 유일한 회사 ‘파리아니’. 올해로 창립 116년을 맞은 파리아니의 유구한 역사는 1903년 피렌체의 작은 공방을 운영하던 아돌프 파리아니(Adolf Pariani)로부터 시작됐다. 맞춤 셔츠와 장갑 등을 만들던 그에게 한 손님이 찾아와 승마 안장 제작을 의뢰한 것. 아돌프는 당시 유명한 기수였던 페데리치 카프릴리(Federici Caprilli)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두 사람이 만든 수제 안장이 브랜드의 시발점이 되었다. 20세기 초, 불세출의 명마로 꼽히는 네아르코(Nearco)와 리보(Ribot)가 파리아니 제품을 사용한 것 역시 브랜드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뛰어난 탄성과 충격 흡수성을 갖춘 제품력은 파리아니의 변함없는 경쟁력이다. 원목을 다듬어 뼈대를 만들고 최고급 가죽을 잘라 붙여 가공하는 36시간의 과정을 한 사람이 책임지는 장인정신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 가치를 증명하듯, 엘리자베스 여왕 2세와 미국 케네디 가문, 미국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 유명인사가 파리아니의 안장을 선택했다.

10 부츠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
11 얼티밋 드림 부츠(Ultimate Dream Boot).
선수들이 선택한 승마 부츠, 더다우(Der Dau)
뉴욕 브랜드 ‘더다우’는 장인정신은 물론 가볍고 편한 사용감의 라이딩 부츠로 선수들 사이에 먼저 인기를 끌었다. 발가락 모양을 기록할 정도로 치밀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가 이곳의 시그너처. 사이즈 측정이 끝나면 박음질로 전체 디자인을 잡고 몰드에 가죽을 못 박는 것으로 성형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발바닥 모양에 따라 메모리 폼의 입체적 구조를 디자인하는 과정도 필수다. 최종 검수까지 마무리하면 더다우 부츠가 완성되며, 발에 착 붙는 착용감 덕분에 ‘두 번째 피부’라는 별칭이 붙었다. 세분화한 제작 과정을 각 분야의 마스터가 전담하며 단계별로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가죽 모양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휴지 기간을 거친다. 제작 기간만 최소 보름에서 한 달이 걸리지만 더다우를 향한 선수들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는다. USDF 대회 금메달리스트 베치 슈타이너(Betsy Steiner)와 세계 승마 선수권 대회 수상자 마지 엥글(Margie Engle) 역시 더다우의 오랜 고객 중 한 명이다.

12 스피드 에어 레더 S VG1 모델.
13 헬멧 제작 과정.
헬멧의 기준을 세우다,지피에이(GPA)
안전한 스포츠를 위한 필수 장비인 헬멧은 ‘GPA’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카레이서이자 창업자인 마이클 핀켈(Michel Finquel)이 1964년, 절친한 동료가 레이싱 경기 도중 사망한 사건을 목도한 이후 제품 개발에 뛰어든 것이 GPA의 설립 배경이다. 형식적 헬멧에서 벗어나 통풍, 무게, 충격 흡수 등 실질적 사용성을 고려한 제품을 출시하며 헬멧이 중요한 보호 장비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레이싱과 바이크 전용 헬멧으로 시작해 1998년엔 승마까지 분야를 확장, 턱과 목 보호대를 결합한 최초의 라이딩 헬멧으로 출시 직후부터 전례 없는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프랑스 제조업체 UFO와 협업해 탄소섬유와 티타늄 등 첨단 소재를 접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 제품 중 하나인 퓨어 카본 헬멧은 풀 페이스 헬멧임에도 1200g에 불과한 초경량 무게를 자랑한다. 보통 하나의 헬멧을 완성하기까지 이틀 정도 걸리는데, 충격 테스트와 침투력 테스트, 낙하 시 얼굴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바이저 테스트 등 다양한 자체 검증 과정을 거친다. 안전에 대한 집요한 고집은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으며, 독일의 유명한 승마 선수 크리스티안 알만(Christian Ahlmann)을 비롯해 세계적 라이딩 스포츠 스타들에게 인기가 높다.
에디터 최별(choistar@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