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제철 식재료로 차린 따뜻한 집밥
건강한 제철 식자재로 정성껏 차린 음식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기대감, 소박하지만 마음을 채워주는 한 끼.
< 거제 가정식 > 저자 이나영은 매일매일 따뜻한 온기와 풍성한 이야기가 담긴 집밥을 식탁에 올린다.

투박한 결이 느껴지는 호밀빵 샌드위치, 몽글몽글한 달걀옷을 입은 오므라이스, 진득한 치즈를 듬뿍 머금은 토마토 수프. 장식을 과하게 하고 필터를 씌우거나 비껴 찍는 법 없이, 음식이 가장 잘 보이도록 위에서 찍은 정직한 한 컷.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음식 사진에 왜 이리 마음이 동하고 침이 고이는지 모를 일이다. 집밥 사진으로 2만여 명의 SNS ‘절친’을 둔 이나영은 거제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거의 매일 집에서 끼니를 챙겨 먹는다. 그리고 집밥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한때는 그녀도 여느 주부처럼 점심은 아침에 먹다 남긴 걸로 대충 때우고, 저녁은 전날 만든 밑반찬을 꺼내 차려 먹곤 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왠지 우울했어요. 혼자 밥을 먹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를 아껴주는 식탁을 차리고 싶어졌죠. 그리고 그런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처음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SNS에 매일매일 음식 사진을 올렸습니다. 마치 집밥이 그날의 나를 말해주는 것처럼요. 매일 다른 음식 사진을 올리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집밥에 대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전문적으로 요리를 한 것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이나영에겐 무척 힘들었다고.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시스템 속에서 요리의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가 결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늘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했던 10여 년의 자취 생활이 되레 그녀의 진짜 요리 경력이라면 경력이랄까.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반듯한 요리 대신 집에서 뚝딱 만들어 먹는 집밥. 가족, 연인, 친구 등을 집으로 초대해 요리를 만들어주는 시간. 이나영에겐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이나영에게 집밥은 마주 보는 것이며 함께 누리고 배려를 쌓는 것이다. 여유를 부리고 천천히 관계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를 건네는 것이다. 요리가 일이 아닌 생활인 만큼 이나영의 집밥은 쉽고 부담 없이 다가온다.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나영표 집밥의 매력이다.
“수치나 계량을 하는 데 취약한 편이고,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에요. 시장에 갈 때도 무엇을 살지 미리 정하지 않아요. 그날 시장의 분위기에 스며들어 신선한 식자재가 눈에 띄면 구입하는 편이죠.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도 필요한 식자재만 대충 파악한 뒤 제 나름대로 일단 만들어봅니다. 때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도 마음이 당기면 무작정 재료를 이용해 요리하고요. 그래서 SNS를 통해 요리 순서나 조리 시간, 재료의 양, 불의 세기 등을 묻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답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집집마다 쓰는 소금의 짠맛도 다르고 화구 또한 다양한데, 어떻게 정답인 듯 말할 수 있겠어요. 이번에 책을 낼 때도 그런 점이 곤혹스러웠어요. 어쨌든 요리에 들어가는 식자재의 양을 표기해야 하니까 각자 부엌 사정에 맞게, 음식 먹을 사람의 입맛에 맞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밥을 먹더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를 아껴주는 식탁을 차리고 싶어졌죠. 그리고 그런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처음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SNS에 매일매일 음식 사진을 올렸습니다. 마치 집밥이 그날의 나를 말해주는 것처럼요.”
따지고 보면, 집밥에 ‘정확성’을 끼워 넣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조금 짜다고, 혹은 조금 싱겁다고 집밥의 온기가 가시거나 정성이 줄어들진 않을 테니까. 이나영은 책을 통해 ‘집밥은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며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리 과정을 최대한 간단히 표현했다. 구하기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식자재도 쓰지 않았다. 때론 귀찮고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에 마음을 고쳐먹고 몸을 움직여 보다 나은 내가 되는 시간을 부엌에서 만들어내는 것. 이렇게 쌓은 시간이 생활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세상에 많은 것 중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대화를 건네는 수단이 집밥일 수 있다는 것. 맛과는 별개로 이나영의 집밥이 많은 이에게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그리고 그 공감에는 거제라는 지역의 매력도 포함된다.
“결혼한 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부산에서 거제로 왔어요. 부산에서도 바다를 자주 접해서인지 거제에서 일부러 바다를 찾는 일은 드뭅니다. 대신 숲이 우거진 산은 자주 찾아다녀요.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산책하러 가거나 조금 먼 곳으로 소풍을 가거나. 산 근처에 사니 계절을 빨리 느낄 수 있어 더 좋아요. 거제에서 두 번의 사계절을 보냈는데, 초여름에 진하게 풍기는 숲 향을 특히 좋아합니다. 장마철에는 그 향이 더욱 짙게 느껴지죠. 신선한 자연의 향이 주는 행복한 기분을 집밥에도 끌어들이려 해요. 취나물, 참나물, 시래기, 고사리 등에 오일만 써서 재료 본연의 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파스타를 만들 때도 있고요. 이맘때 거제의 ‘흔한’ 해산물인 가리비나 굴 등에 거제 농장에서 가져온 생유자를 곁들여 쪄 먹거나 거제 시장에서 생모과를 사다 청이나 술을 담기도 합니다.”
차가운 해풍을 맞은 거제 유자, 한겨울 외포항의 대구, 거제면의 굴 등 거제의 다채로운 식자재로 만든 이나영의 집밥을 보면서 이곳의 매력을 풍경 대신 맛과 향으로 느끼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집밥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책이 일상을 뒤흔드는 강렬한 도끼가 되듯, 이나영에게 집밥은 아무렇게나 흘러도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생활에 느낌표를 새기고 흔적을 남긴다. 그렇기에 그녀는 말보다는 이미지, 이성보다는 감성, 그야말로 ‘느낌적 느낌’이 난무한 요즘 같은 시대에 되레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 흔한 말로 의식주의 그 ‘식(食)’을 소중히 여긴다. 잘 먹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잘 ‘해’ 먹는 데 삶의 가치를 둔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쉽게 버려지는 요즘, 음식만큼은 세상의 기준과 반대 노선을 탈 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채소 장아찌나 과일청, 김치 등 기다린 만큼 소중한 맛과 향이 쌓이는 음식처럼요. 어제는 태풍으로 엉망이 된 텃밭을 갈아엎고 새로 씨를 뿌렸어요. 고작 15평짜리 텃밭에 시금치와 배추, 무, 쪽파, 마늘, 쑥갓, 로메인, 치커리 등 집밥으로 해 먹고 싶은 채소를 골고루 심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제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올라오는 잎을 솎아 샐러드라도 만들어 먹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부엌에서 길어낸 시간을 조금 늘려 집밥의 시작에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로 똘똘 뭉친 집밥을 기대하고 있어요.”
에디터 손지혜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