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손 잡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가장 잘 어울리는 크라우드펀딩의 세계.

2018년 베스트셀러에 안착한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처음 독자와 만났다.
<아트나우> 파이널 컷을 진행할 때마다 필자들과 어떤 콘텐츠를 다룰지 논의하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이 많다. 구묘진이 쓴 소설 <악어노트>도 그런 경우다. <악어노트>는 수온에 따라 성별이 바뀌는 악어에 작가 자신을 빗댄 자전적 소설이다. 대만의 영향력 있는 중국시보 문학상을 받았고, 뉴욕에서 출간한 뒤에는 <뉴욕타임스>에 “미래적 에너지로 가득 찬 주목할 만할 젠더 바이너리 문학”이라 소개되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했는데, 그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출판사가 불특정 다수의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것. 대만 최고의 퀴어 문학으로 회자되는 <악어노트>는 모금자의 프로젝트 제안과 이를 믿고 기다려준 후원자의 합작으로 한국 서점에 나올 수 있었다.
크라우드펀딩이 국내에 본격 출범한 지 8년이 접어든 지금, 그 모습은 사뭇 달라지고 있다. 초기에는 기부형이 강세였다면, 요즘은 후원형이 주를 이룬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은 다시 캠페인, 문화 예술 서포트, 상품 제작 지원으로 나뉜다. 우선 캠페인부터 살펴보자. 동물과 환경보호, 인권 단체 지원, 역사의식 고취같이 우리 사회가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후원자들이 기금을 모으는 형식이다. 앞서 말한 기부형 크라우드펀딩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바로 ‘보상’이다. 기부형 크라우드펀딩이 후원자의 자금 제공만 있다면, 캠페인은 배지, 팔찌, 에코 백, 텀블러 등 감사의 의미로 소품을 증정한다. 물론 후원금 중 일부는 상품 제작 비용으로 빠지기에 상대적으로 기부액이 적다. 하지만 보상이 높은 참여율을 불러오고, 홍보와 사회의식 고취도 덩달아 이뤄지기에 이점도 많다. 특히 캠페인 주관 단체는 보상으로 ‘배지’를 많이 택한다. 그래서인지 밀레니얼 세대 중에서는 이 배지를 모으기 위해 꾸준히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도 있다. 사회 공헌도 하고 전리품도 얻고,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서 배우 유준상이 진행한 ‘MBC 같이 펀딩 × 배우 유준상의 국기함’도 캠페인에 포함된다. 이 프로젝트는 국기 게양일에 태극기를 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을 재고하고, 태극기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 보상은 태극기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메달 디자이너 이석우가 고안한 국기함이며, 수익금 전액은 독립 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하는 내용이었다. 목표 금액 815만 원으로 시작한 펀딩은 18억 원(11월 초 기준)을 돌파했다. 이 같은 성공은 연신 언론에 오르내렸고, 태극기 인식 고취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이제 인터넷에 유준상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 검색어가 ‘국기함’이다.
크라우드펀딩 덕을 가장 톡톡히 보는 분야는 문화 예술이다. 콘텐츠는 출판, 게임, 연극, 전시, 음반으로 다양하며 주로 젊은 예술가들이 이 플랫폼을 활용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유는? 크라우드펀딩은 후원자에게 자본을 확보한 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돌입하기에 금전적 안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출판업계에서 크라우드펀딩은 효자나 다름없다. 작년 서점가를 휩쓴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텀블벅을 통해 출간한 뒤 종합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오른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를 포함해 다양한 독립 출판물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도 독자의 펀딩으로 책을 출간하는 ‘북펀드’를 런칭해 지금까지 30건이 넘는 출간 프로젝트를 성공했다. 즉 크라우드펀딩은 창작자에게는 출판 장벽을 낮춰주는 플랫폼이며, 소비자에게는 색다른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장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대표 플랫폼인 텀블벅 또한 “문화 예술 분야가 지속해서 성장하는 가운데 독립 출판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 한 해 텀블벅에서 탄생한 책은 700여 권, 출판 분야 누적 신간은 1600권을 돌파했다”라며 크라우드펀딩이 출판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을 전했다.

1 성우 이용신의 <달빛천사> OST 발매 프로젝트. 현재 펀딩을 성공리에 끝마쳐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2 구묘진의 <악어노트>.
절판된 유명 작가의 소설 또는 가수의 음반을 재생산하거나, 유명 크리에이터의 창작물 펀딩도 열린다. 얼마 전 후원액 26억 원이란 숫자로 크라우펀딩 사상 최고 액수를 기록한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2004년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달빛천사>는 주인공 루나 역을 맡은 성우 이용신이 부른 OST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한데 저작권 문제로 OST의 공식 음원이 나오지 못했다. 15년이 흐른 지난 10월, 많은 팬들의 요청으로 이용신 성우가 텀블벅에서 <달빛천사> OST 공식 발매 펀딩을 올렸는데, 개설과 동시에 목표 금액 3300만 원을 훌쩍 넘는 1억8000만 원이 모였다. 이 밖에도 <슈퍼스타 K>에서 이름을 알린 김예림은 림 킴(Lim Kim)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신곡을 발매하기 위해 텀블벅을 찾았다.
유통업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신생 기업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신상품을 먼저 소개한다. 대표적으로 신세계그룹이 작년 말에 런칭한 SSG 닷컴 ‘우르르’는 매주 소비자가 접하기 어려운 신진 브랜드를 발굴해 크라우드펀딩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유통 단계가 적은 펀딩 시스템을 차용해 소비자에게는 합리적 가격, 신생 기업에는 새로운 유통망을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고.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하는 사람은 초심자가 대다수다. 결과물이 생각보다 엉성한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펀딩 진행 시 설명한 내용과 지나치게 다른 보상으로 후원자가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크라우드펀딩은 승승장구 중이다. 2017년 600억 원이던 크라우드펀딩 규모는 2018년 13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크라우드펀딩이 후원자의 모험을 담보로 함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밀레니얼 세대는 취향으로 소통한다. 더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맞는 상품을 구매하기에 일반 매장이 아닌 다양한 창작자가 있는 크라우드펀딩으로 향한다.
더 자세히 이유를 듣고 싶어 크라우드펀딩 참여에 열성적인 지인에게 물었다. 그는 세 가지를 말했다. 나의 관심사와 부합하는 아이템을 선택해 펀딩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펀딩한 아이템은 대다수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이며, 펀딩 후 반응이 좋아 일반 상품으로 풀릴 경우 얼리어답터가 된다는 매력도 있다. 또 창작자가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인물이라면 그 사람의 창작 활동에 보탬이 된다는 기분도 만끽할 수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엄청난 부를 지녀야 예술 후원자가 될 수 있다는 편견도 허물었다. 위대하고 훌륭한 무언가는 다양한 것을 포용해야 탄생한다. 이 세상 모든 취향에 열려 있는 크라우드펀딩 흥행은 잠깐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 듯하다.

3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간된 대만 유명 아티스트 미스캣의 그림책 <고양이의 하루>.
4 유기 동물을 돕는 프로젝트 ‘Always with You’는 후원자에게 키링을 보상으로 제공한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