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내가 알아서 할 문제
파리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원로 작가 강명희의 개인전 <강명희– 방문 Visit>이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3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 열린다.

북원, 캔버스에 유화, 462×527cm, 2002~2020.
강명희 작가의 그림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녀는 몽골 고비사막에서 남극과 안데스산맥에 이르기까지 넓은 세상을 직접 발로 밟고 하늘을 머리 위에 인 채 눈으로 본 자연의 선과 색을 있는 그대로 그려왔다. 그래서 좀처럼 구체적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추상화임에도 제목을 통해 그 색과 선을 옮겨온 지명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세상에 대한 경이와 그림 그리는 기쁨으로 가득한 작품에 프랑스와 중국, 시리아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저마다 시를 붙였고, 강명희 작가는 전시와 더불어 시 낭송회를 열곤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월부터 열리는 개인전 〈강명희 – 방문 Visit〉을 준비하느라 프랑스와 제주 작업실을 오가는 작가는 바쁘고 또 기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명희 작가. 2024년 10월 13일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개인전 〈Requiem〉을 연 샤토 라 코스트(Château la Coste)에서.
강명희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난 강명희 작가는 자연과 세상의 색채와 흔적, 형태를 시적이며 우주적인 추상회화를 통해 표현한다. 1972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퐁피두 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중국미술관 등에서 전시와 시 낭송회를 열었다. 현재 프랑스와 제주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방문 III, 캔버스에 유화, 98×130cm, 2016.

영실계곡, 캔버스에 유화, 80×65cm, 2023.
예술과 언제 처음 만났는지 궁금합니다. 예술···. 날 때부터 눈 뜨고 대상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 같아요. 특별히 예술을 하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어요. 대상을 보며 궁금증이 생겨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속으로 감싸두고 계속 그림을 그렸죠. 나중에 넓은 세상에 나가 적극적으로 보면서 조금씩 답을 찾게 되었어요. 아무런 특별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을까요? 흐르는 물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한 게 아닐까? 지금도 그런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요. 질문과 답이 바뀜에 따라 그림도, 나 자신도 계속 변해갑니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해요. 내가 아직 답하지 못한 것과 앞으로의 가능성 같은 것이 마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더 명확하게 보여요. 그래서 정말 바쁘고 또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그림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림은 태도예요. 작가가 어떤 태도를 갖는지 그림에 다 드러나니까.
시각예술인 회화를 ‘질문’과 ‘답’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1986년 ‘한국의 남과 여: 임세택과 강명희’라는 제목으로 한국 여성 예술가 최초로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를 열었죠. 당시 프랑스에서 살며 작업했는데, 교류하던 예술가 중에 시인이자 비평가인 알랭 주프루아(Alain Jouffroy)의 소개로 열게 된 전시죠. 제목도 그가 정했고. 그렇게 어울려 지낸 예술가가 많았어요. 시인, 화가, 연극 연출가···. 그들과 어울리며 그림 그리고 시 낭송하며 지낸 시절이죠.
어떤 시를 주로 낭송했나요? 윤동주, 서정주, 김수영···. 좋은 한국 시라면 가리지 않고 했죠.
1986년 전시도 그랬지만, 시를 낭송하는 시회(詩會)를 함께 개최해왔죠. 베이징과 제주에서 ‘명희시회(Poem Party)’라는 제목의 전시도 여러 번 열었고요. 주변에 시인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림과 시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중국 베이징에서 전시할 때는 수차이(Shu Cai) 같은 시인이 내 그림에 시를 붙였고, 도미니크 드 빌팽(Dominique de Villepin)이 쓴 ‘망자의 무덤’이라는 긴 시도 기억나고···. 그런 시로 인해 그림을 한층 열심히 그리게 돼요.
요즘도 그런 시회를 엽니까? 정기적으로 하지는 못해요. 다들 바쁘니까. 그래도 3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여는 전시에는 여러 나라에서 시인이 많이 찾아올 것 같아요. 벌써 시를 보내온 친구도 있고요.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늘 주변에 시인이 많았어요.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시인이자 미술비평가, 전 프랑스 총리이기도 한 도미니크 드 빌팽이 작품에 붙인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강명희의 작업은 눈에 보이기(seen)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노래 불러지기(sung)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님의 시적인 작품에서 어쩐지 음악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림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중요하죠. 그런데 ‘운’이라는 한자가 리듬을 의미하거든요. 리듬이 없으면 살아 움직이지 않으니까.

접시꽃, 캔버스에 유화, 97×146cm, 2024.

산방산, 캔버스에 유화, 162×227cm, 2024.
1994년 무렵부터는 몽골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오셨죠. 프랑스에 살면서 서양 문화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국인이 몽골에서 왔다고들 하잖아요. 거길 가봐야지. 대책도 없이 파리에 있는 몽골 대사관에 찾아갔어요. 나는 몽골인의 후손이다. 비자를 좀 내달라.
대사관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웃음) 작은 사무실에 직원 한 명 있었는데, 한참 이야기를 듣더니 집에 가서 좀 기다려보라더군요. 그런데 얼마 후에 정말 비자가 나온 거예요.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사관 직원이 몽골 자기 식구에게 연락해서 고비사막까지 안내해줬어요. 그렇게 자연을 그리는 일이 몽골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동안 그리던 캔버스가 사막을 그리기엔 너무 작아서 7m 크기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여행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 힘든 걸 자꾸 다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몽골에만 여섯 번 갔고, 어느 해 겨울에는 남극에 가기도 하고.(웃음) 겁도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다녔나 몰라요. 그렇게 남미도, 중국도, 대만도 갔어요. 아이 걸음마 하듯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세상을 보고 그렸죠.
넓은 세상을 다녀보니 질문의 답이 나오던가요? 그렇게 착각한 적도 있는데 그럴 때가 가장 위험해요.(웃음) 계속 새로운 질문이 생겨요. 쉽게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이 들어 좋은 점이 그런 게 아닐까.(웃음) 에너지가 더 생겼다고 할까. 아니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일까? 그러니까 하루가 너무 바쁘죠. 그림 그리느라.(웃음)
몽골에 여섯 번 가신 것처럼, 같은 장소도 여러 번 그리시지요. 제주 한라산에 영실계곡이 있잖아요. 여러 번 가서 여러 번 그렸죠. 거기서 그린 거랑 화실에서만 그린 그림의 차이를 나는 아니까.
어떻게 다른가요? 하늘을 머리 위에 이고 하는 일은 뭐든 힘들어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은 언제나 틀리는 일이에요. 어떻게 해도 틀릴 수밖에 없어요. 있는 그대로 그릴 수 없으니까. 그런데 하늘을 이고 그리면 힘들어서 정신이 없거든요. 틀려도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일단 하는 데까지 하는 거죠. 그러고 화실에 돌아와선 밖에서 그린 데생을 토대로 큰 그림을 그립니다.
어떤 장소를 거듭 가게 되나요? 가면 갈수록 보이는 게 선명해지는 곳이 있어요. 영실계곡! 비가 많이 오면 거기 시커먼 물이 고이거든. 그러면 실제 풍경보다 물에 비친 색이 훨씬 선명하게 보여요. 그 시꺼먼 거에 빠진 거지.
‘영실’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이 여럿 있죠. 작품에는 구체적 형상이 보이지 않지만 제목에는 구체적 지명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건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그래. 내 그림은 그 장소에 가서 있는 그대로 그린 거거든요. 아직 더 그릴 게 많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겠죠.(웃음)
한 작품을 여러 해 동안 작업하는 경우도 많죠. 요즘도 그래요. 요전에 파리 작업실에 다녀온 것도 팬데믹 전에 열심히 그리던 5m 크기 그림이 거기 있거든요. 7년 동안 손을 못 대다가 다시 생각이 나기에 가서 그렸어요. 그래도 요즘엔 자연스럽게 그림을 끝낼 때를 알게 돼요. 밤이 저절로 오는 것처럼.

레퀴엠, 캔버스에 유화, 340×288cm, 2024.

제주도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강명희 작가.

안덕계곡, 캔버스에 유화, 280×340cm, 2024.
그렇게 여러 해 작업한 작품을 보면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느낄 수 있겠어요. 시간의 맛을 느낄 때도 있죠. 자꾸만 끌리니까 작품 앞으로 가서 그리고, 질문이 또 생기고…. 그러면 좀 물러나서 보고, 다시 다가가서 그리고. 그림은 그런 것 같아요. 발걸음이랑 땀이에요.
그림은 발걸음과 땀이다? 캔버스에 다가가서 그리고, 뒷걸음쳐서 보고, 다시 다가가서 그리고, 그러다 보면 진땀이 나죠. 화실 생활이 그래요. 땀을 뻘뻘 흘리고 움직이며 그리죠.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한국 미술관에서 여는 전시는 오랜만이죠? 작업은 다 끝냈나요? 지금도 그리고 있어요. 한라산을 그린 5m 되는 큰 작품. 내 평생 이렇게 전시에 닥쳐서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는데, 아무튼 하고 있어요. 처음 하는 경험이에요.
욕심이 생기나 봐요. 어떤 전시든 중요하지만 이번은 좀 더 그래요. 신경이 많이 쓰여요. 자연이든, 그림이든 대부분의 사람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보는 눈이 트일 수 있거든요. 이번 전시가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몽골이든 제주의 계곡이든 늘 화구를 챙겨 현장에서 데생을 하지만, 전시를 통해 선보인 적은 많지 않죠. 이번 전시에선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림 걸기에 벽은 항상 모자라니까요. 그래도 이번엔 몇 개를 골랐어요. 몽골에 처음 가서 몇 달을 있으며 그림 하나 못 그리다가 겨우 그린 울란바토르 병원, 광주항쟁 10주년 때 그린 전남도청 같은, 꼭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고요하다가 시끄럽고, 거친 것 같다가도 한없이 부드럽고···. 작가님 작품에서 상반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 자연이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그와 더불어 그 안에 세상에 대한 경이와 그림 그리는 기쁨이 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힘들게 살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정직하면 언젠가 기쁘고, 놀랍고, 경이로움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요. 누가 대신 해줄 수는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자기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게 도움이 되겠죠.
2011년 〈명희시회〉 전시 도록에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Adonis)의 ‘명희에게 보내는 질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명희, 그녀는 생각하면서 색을 칠할까?/ 색을 칠하며 생각할까?”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따로 답은 안 했어요. 시는 그 사람의 이야기니까.
지금 그 질문에 답을 하신다면요? 색을 칠하든 선을 긋든 중요한 건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자신에게 정직한 것. 정직해야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정확하게 선을 긋고, 정직하게 색을 칠해야 있는 그대로의 그림이 되거든요. 내가 알아서 할 문제지. 지금 답한다면 이렇게 하겠네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웃음) 그래도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선을 긋고 정확한 색을 칠하기 위해 매일 연구해요. 행복한 일이죠. 해야 할 일이 있고,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하고, 거기 답을 해야 하니까.

서광동리에 살면서, 캔버스에 유화, 288×500cm, 2024.

초란도, 캔버스에 유화, 340×288cm, 2020~2022.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강명희,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