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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이제는 팬덤으로 오빠들이 움직인다!

BTS 멤버 정국의 생일을 기념해 팬들이 벌인 환경 정화 프로젝트 ‘#CleanupforJK’.

엄마는 엘턴 존 팬이었다. 10대 때부터 그의 ‘로켓 맨’과 ‘유어 송’, ‘다니엘’ 등을 달달 외우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무래도 ‘오빠부대’가 존재하지 않은 시대에 살던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오빠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나는 오빠부대는 아니었지만, 그것의 태동을 보고 자랐다. H.O.T.와 젝스키스는 내가 10대 때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아이돌 팬덤은 단순했다. 놓치면 다시 볼 수 없는 ‘본방’, 제한적인 잡지 화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소속사를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신경질적이던 소속사는 팬덤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룹의 멤버 간 불화에도 다소 강압적이었다. 그러니까, 그 무렵의 오빠부대는 영원할 줄 알았던 오빠들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던 세대다. 지금은 다르다. 팬덤이 소속사와 오빠들의 문화까지 바꾼다. 이렇게 된 건 팬들이 멤버를 직접 뽑아 아이돌 그룹까지 탄생시킨 Mnet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의 영향이 크다. 이 방송 이후 팬덤 문화는 이전보다 치밀해졌다. 내가 ‘픽’한 오빠에게만 많은 에너지를 쏟고, 그 오빠가 옆의 오빠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 꽃길을 걷게 해준다. 또 오빠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쓰레기 줍는 봉사 활동을 하고,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캠페인도 벌인다. 이런 양육자·후원자 모델의 다음 단계? 바로 팬덤의 사회 참여 주체로의 진화다. 최근 K-팝의 오빠부대가 전 세계에 보여준 그것 말이다.

K-팝 팬덤은 BLM 시위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 6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인권 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BLM,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가 미국 전역에 번지자 K-팝 팬덤은 단체 행동에 나섰다. 오빠들의 소속사에 BLM을 공개 지지하고 기부하라고 ‘명했다’. 이후 BTS와 NCT, 레드벨벳 등이 ‘인종차별 반대’ 선언을 했다. 팬들은 가수처럼 똑같이 기부도 한다. BTS가 BLM 측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자 팬클럽 아미는 하루 만에 같은 액수를 모아 기부했다. 글로벌 아미 팬덤은 “우리는 흑인 아미를 사랑한다”는 성명도 발표했다. 끝이 아니다. 댈러스 경찰이 시위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와 관련한 영상을 ‘아이워치 댈러스’라는 자체 앱을 통해 보내달라고 트위터 등을 통해 요청하자 K-팝 팬덤은 그것과 상관없는 아이돌 동영상을 집단적으로 보내 댈러스 경찰의 신고 시스템을 다운시켰다. 또 ‘WLM(White Lives Matter, 백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해시태그가 등장하자 이번에도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영상에 영상과 무관한 ‘WLM’ 해시태그를 달아 WLM의 의미를 무력화했다. K-팝 팬덤의 이 같은 온라인 게릴라전을 두고 CNN은 “가장 강력한 군대”라며 주목했고, 세계 매체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벌어진 칠레 시위도 K-팝의 국제적 활동 사례로 회자된다. 칠레 정부가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자 산티아고에서 두 달 넘게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정부 당국이 엉뚱하게도 K-팝 팬덤을 시위의 배후로 지목했고, 칠레 K-팝 팬덤이 평화의 거리 시위로 응답한 일 말이다.

지난 6월 있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 유세는 K-팝 팬덤의 노쇼 시위로 빈자리가 많았다.

잠깐, 좀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팬덤의 정의부터 확실히 알고 넘어가자. 팬덤(fandom)이란 광신자라는 뜻의 ‘fanatic’에 세력 범위라는 뜻의 ‘dom’을 더한 합성어다. 즉 특정 스타나 장르를 선호하는 팬들의 자발적 모임을 뜻한다. 다시 말해 오빠부대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존재한 개념이다. 지금의 팬덤과 이전 팬덤의 차이점은 뭐냐고? 더는 스타에게 맹목적 사랑만을 보내지 않는다는 거다. 요 근래 어떤 팬덤은 오랫동안 지지해온 스타의 실망스러운 행보에 등을 돌렸다. 또 스타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고 팬심을 접는 ‘결단’까지 내린다. BLM을 공개 지지하는 것도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대중문화의 확산으로 사회적 . 문화적 파급력을 획득한 오늘날의 팬덤은 단순히 스타의 좋은 이미지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스스로 문화를 만들고 행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중음악 평론가 차우진은 이를 “2030세대가 된 팬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쌓인 경험이 확장되며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K-팝 팬덤이 이 같은 메커니즘으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K-팝 팬덤의 어떤 동력은 그들 자체에서 나오기도 한다. 증거? K-팝의 주 소비층이 밀레니얼과 Z세대라는 데 있다. 지금 K-팝을 주로 소비하는 이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인종과 문화, 성 정체성이 다양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많은 부분에서 극심한 불평등을 겪는다. 그러니까 이 시점, K-팝 팬덤의 사회 참여는 단순히 K-팝의 소비보다 훨씬 근본적인 데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좋은 건 좋다고 하고, 재미없거나 잘못된 걸 보면 온몸으로 거부한다. 더는 소속사의 호통에 결코 ‘쭈구리’가 되지 않는다.

현재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흥행 여부는 많은 부분 팬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어떤 팬덤은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좋아하는 스타는 물론 그 스타가 속한 산업 자체를 살찌운다. 클래식 음악 팬덤이 딱 그렇다. 예를 들어, 조성진의 연주에 흥미를 느껴 클래식 음악에 입문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연주한 쇼팽을 다른 연주로도 들어본다. 다른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음악에도 관심을 보이고 음악 감상의 스펙트럼을 차츰 넓히며 산업 전반을 발전시킨다. 이는 산업의 기본 단위로서 팬덤이 중요해지는 경우다. 하지만 K-팝이든 K-클래식이든 모든 팬덤은 치명적 문제점이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이에 대한 작은 비판이나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비뚤어진 팬심 말이다. 그러한 일방적 팬심이 싫어 스타에게 등을 돌리는 케이스도 있다. 또 팬덤의 본질이 깊은 애정에서 비롯되는 만큼 팬들의 미움을 사는 스타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린 그간 ‘태도’가 문제가 된 아이돌이 결국 팀을 떠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지켜봤다. 그럼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앞으로 팬덤의 역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팬, 블로거, 게이머: 참여문화에 대한 탐색>으로 유명한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무려 28년 전 이 질문에 답했다. “팬 문화에서 영원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팬덤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다”고 말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 팬 문화는 지금도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팬덤은 이 글을 읽는 지금도 탄생하고 사라진다. 누군가의 팬이 되는 과정만큼 자신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없고, 그것에 등을 돌리는 일 또한 너무도 당연해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팬덤 문화가 없는 건 불가능하고, 그걸 규정하는 것도 어리석다. 다만 팬덤 문화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팬덤과 매체, 스타, 대중문화 생산자 등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팬덤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문화를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지금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면, 오빠부대가 존재하지도 않은 시대에 특정 뮤지션을 짝사랑하며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낸 부모 세대를 떠올려보자.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이영균(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