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태로서 존재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의 ‘아이디어 뮤지엄’이
세 번째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을 선보인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제시한
‘중동태’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자리다.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으로 2023년부터 진행해온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은 동시대 현안을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재조명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의 프로그램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새로운 배움의 방식을 모색한다. 세계적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사유와 실천에서 영감받아 인간과 사물, 환경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프로그램은 지난 11월 25일에 열린 잉골드 교수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중동태의 자리에서 성찰하기: 대를 잇는 삶, 지각, 그리고 배움’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그는 능동과 수동의 이분법을 넘어 행위와 변화가 공명하는 과정, 즉 ‘중동태(middle voic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앎’의 과정에 주목하는 동시에 ‘본다는 것은 곧 상상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세계를 경험하는 태도의 적극성을 강조했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을 언급하며 이러한 사유를 시각예술과 연결했다. 지각을 상상력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각적·철학적 연계를 제시해 개념의 이해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끌어낸 것. 또 잉골드는 교육을 지식을 축적하는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서로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커머닝(communing)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그뿐 아니라 세대의 삶 역시 단선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밧줄의 매듭처럼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카이스트(KAIST) 인류세연구센터 김지혜 연구원과의 대담에서는 배움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보다 심도 있게 살피며, 결론적으로 AI가 ‘선(흔적, 과정)’을 남기지 않고 결론만을 산출하는 위험성을 지적함으로써 세대 간 연결을 위한 느슨한 매듭과 여백의 중요성을 환기하기도 했다.
강연 이후 3일간 ‘만들기’ 워크숍이 리움미술관, 남산공원, 한강공원, 파주 직천리 짚풀문화마을 등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흙과 짚풀, 연을 매개로 몸과 재료,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경험하며 ‘앎’을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자연과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재정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In the Middle Voice: 다섯 개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2026년 7월 31일까지까지 ‘춤추기’, ‘연주하기’, ‘합창하기’, ‘듣기’라는 네 가지 움직임을 중심으로 워크숍, 퍼포먼스, 예술가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안무가 안은미, 첼리스트 겸 작곡가 이옥경, 즉흥음악가 필 민턴(Phil Minton), 리스닝 아카데미(The Listening Academy) 등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연구자들이 참여해 감각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배움의 경험을 다층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