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마흔의 문턱에 선 우리의 요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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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이름을 바꾼다. 처음엔 일이 풀리지 않아 투정 부리는 줄로만 알았다가, 유명한 철학관에서 이름을 받아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뾰족한 말을 퍼붓다 알게 된 건 그는 미끼였다는 거다. 사실 이번 개명 사건에서 당신의 진짜 목적은 나였다. 번거롭고 귀찮은 것, 특히 미신에 학을 떼는 내 성격을 알곤 치밀하게 설계한 덫이었다. 시작은 심심풀이로 친구들과 찾은 철학관이었다. 추측해보건대, 무리 중 가장 심약해 보이는 엄마를 공략했을 거다. 특히 걱정 많은 당신의 아픈 손가락인 나를 언급할 때 가장 센 반응이 왔겠지. 이제 갓 마흔, 그리고 미혼. 보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것으로 당신을 뒤흔들었겠지. 이후 걱정병이 돋은 당신은 추가로 점집 세 곳을 더 돌며 내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장래는 물론 건강도 좋지 않을 거란 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도 힘들 거라고. 언제나 그렇듯이 포인트는 무심한 듯 덧붙인 마지막에 있다. 유용한 정보를 나열하다 제품 홍보를 끼워 넣는 SNS 페이지처럼 무게는 결혼에 있었다. 몇 해 전 비혼을 선언한 내게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테러를 가하고 있다. 그건 우호적 설득부터 눈물의 호소나 협박 같은 완곡한 표현이었다가 돈이나 아파트 같은 현실적 타협이기도 했다. 이렇게 샤머니즘적 요소가 짙은 변화구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당신은 가장 먼저 품을 떠난, 먼발치에 홀로 있는 내가 위태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사실 손녀가 보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다). 끝내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내 결혼관은 파스칼의 종교관 같은 태도를 취한다. ‘결혼 여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러니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다만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 그러니까 일단 공식 입장은 비혼인 것이 낫다는 거다.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번 공격 역시 잘 막아내긴 했지만, 마음에 당신의 말이 하나 남았다. “인생 두 번 사는 느낌이라서 좋지 않아? 40부터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사실 지금 내 고민은 결혼이나 자녀, 밥벌이, 건강 같은 현실적 문제보다는 거기에 있다. 어떤 태도 혹은 가치관으로 40 이후를 살아야 하나.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교적 몸이 가벼운 만 38세 싱글 남자에겐 물질적인 것만큼 인생의 지표가 중요하다. 가족을 부양하고 생명을 잉태해 세상에 독립시키는 숭고한 일은 하지 않을지언정,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40이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겁에 질리게 하는 면이 있다. 신체가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다만 인생 가능성의 통로가 점차 좁아진다는 것, 그리고 인생 후반부에 만져지는 삶의 궤적이 너무 얇아 바스락거릴까 겁이 난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나, 사고라도 저질러야 하나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도 심드렁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 취향이나 기호 같은 것들과 인생의 영웅을 20~30대를 보내며 전부 소진했다. 장마에 비옷을 뒤집어쓰고 동숭동 거리를 걷거나 1년에 한 번은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로컬 주민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것. 조조부터 심야까지 하루에 영화 5~6편을 몰아 보거나 전기나 식수대 없는 오지에서 텐트를 치고 미명을 감상하던 시절의 낭만이나 에너지가 없다. 무엇보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내 나이에 누구는 혁명을 일으키고, 누군가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하고 <화양연화>를 연출했던데, 그들의 40대 문턱은 어땠을까? 컵에 믹스커피 한 봉지 넣고 물을 가득 부은 것처럼 밍숭밍숭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성인이 되고 오롯이 스스로 서는 훈련을 꽤나 해왔다는 거다. 이젠 크게 휘둘리지도, 쉽게 상처받지도 않는다. 다만 이 잔망스러운 세상에서 보다 가치 있게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40이라는 운전석에 앉았다. 아직 연료도 있고, BGM도 흘러나오고, 마실 물도 있다. 다만 내비게이션의 목적지가 비었다. 그 칸부터 채워야 진짜 40대가 펼쳐질 것 같다. _ 조재국(<노블레스 맨> 편집장)

마흔 즈음의 건강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는 것
그동안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하며 살아왔다. 탄탄한 몸매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잔병치레는 없었다. 지금껏 병원에 간 기억을 더듬기 어려울 정도다. 연말정산 의료비 지출 내역이 1년 동안 몇천 원에 불과한 적도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병원과 부쩍 친해지고 있다. 올해 연말정산 때 찍힌 의료비 지출 내역이 수백만 원이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가 다가오자 몸 기능이 급속도로 약화되는 느낌이다. 30과 40. 단순한 숫자 차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두 숫자 사이의 거리감이 이렇게 클 줄이야. 건강에 대한 염려는 코로나19 시국과 겹치면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염병은 남의 일이었다(주변에 걸린 사람이 없기도 했다). 설사 걸리더라도 별일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다르다. 나이가 든 탓일까, 아니면 바이러스 전파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탓일까? 결국 나도 전염병의 유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인들은 하루이틀이면 멀쩡해지고, 가벼운 감기 증상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20대나 30대 초반에 감염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꼬박 일주일을 앓고 나서야 코로나19와 작별을 고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우려되는 것은 내 건강이 아니다. 연로한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부모님은 조금 늦게 결혼한 까닭에 내 또래 부모님보다 연세가 많은 편이다. 단순히 부모님의 나이가 많은 게 걱정스러운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 분에게 몇 년 전부터 크고 작은 건강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나이 30에서 40으로 넘어가는 것만큼 두 분의 세월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타지에서 떨어져 지낸다는 핑계로 쇠약해진 부모님을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 내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 부모님이 노쇠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보여 안타깝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제 내 건강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우리 가족의 건강을 누가 챙길 것인가 하는 걱정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이제야 비로소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위해 뭔가 하나를 내어줘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30에서 40으로 넘어가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_ 김준혁(HMG저널 에디터)
시간을 살리는 일
이직을 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마흔을 앞둔 참이었고, 심지어 큰 변화였다. 알 듯 모를 듯하던 20대 후반과 축제 같던 30대에 걸쳐 직업란에 일관되게 적던 일을 그만뒀다.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큰 이유이자 변명 중 하나는 생활을 조금 바꿔보고 싶었다. 빡빡한 마감 일정, 일당백 역할, 일상화된 야근으로 도배된 생활이었다. 쿵쾅쿵쾅 시간에 쫓겨 일하는 통에 예금처럼 시간을 꺼내 쓸 수 있다면, 혹은 오늘이 어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탄식과 한숨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개인적 일은 챙길 겨를도 없이 맥없이 뒤로 밀렸다. 기진맥진한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애써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다 아홉수를 신호로 묻어둔 마음이 심통을 부리듯 어떤 결정적 순간에 갑자기 확 커졌다. 일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는 위안이 되지 못했다. 기어코 이직을 했다. 내 입장에서는 10년 이상 넘지 못한 어떤 선을 넘은 셈인데, 겪고 보니 긴 연애의 이별처럼 마음을 확실히 굳힌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한편, 요즘은 처지가 바뀌었다. 시간에 쫓기거나 허덕인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새로운 일에도 데드라인은 있지만 넋이 나갈 정도로 맹렬하지 않고, 나름대로 밀도 있게 일하다 보면 저녁을 홀가분하게 사무실 밖에서 맞이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게 괜히 뿌듯했다. 여기에 주말 출근은 과거 일이 됐고, 유연 근무제는 실로 놀라웠다. 발음부터 반지르르한 워라밸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흔 살이 되어서야 안 것이다. 이직의 결과는 마땅히 흡족하다. 하지만 전보다 굉장히 행복해졌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곤혹스러운 문제에 직면했다. 내 생활에 시간이 펑펑 생겼지만, 마음은 도리어 어수선해졌다. 이런 상황이 익숙지 않은 데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싶고, 뭘 해야 하는지 그런 대책이나 계산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끔찍하게 엉켜 있던 일과 일상이 분리됐지만, 한가하고 느슨한 평일 저녁엔 끝도 없이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거나 터무니없는 상상조차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말줄임표를 찍듯 하루를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시간이 더 생기면 미뤄둔 테니스를 배우거나 재테크 고수가 된다는 식의 호기로운 꿈도 있었지만, 결국 해볼까 하다가도 관성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급박한 시간 싸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벽돌처럼 공들여 쌓는 기분이었는데, 요즘의 나와는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달까. 마치 내일을 서둘러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을 얼렁뚱땅 넘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놀이터에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를 흘려보내는 어린애처럼 죄책감 없이 시간을 죽이는 동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럽다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할 건가 싶다가도, 인생의 절반에 좀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이런 질문에 이르렀다. 언젠가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 훨씬 늘어날 텐데, 그 무렵 특별한 일 없이 극도로 지루하고 시시한 삶을 마주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삶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질책하거나 비웃지 않지만 이런 꼴로 계속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대에는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전략적으로 쓸지를 궁리하고 터득했다. 이제는 소란스럽고 치열하던 생활이 한결 차분해졌으니 시간을 잘 보내는 지혜를 체득해야 할 시점이다. 다짐은 했지만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위안이라면, 그에 앞서 내 삶에 대해 완전히 몰두해서 오롯이, 곰곰이 생각해봤다는 점이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결국은 시간이 왕창 생겼기에 그것도 가능했다. _ 김영재(브랜드 콘텐츠 제작자)

사업을 고민할 나이
분리수거를 하며 퇴사를 생각했다. 일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잠이 부족했고, 더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저 동면에서 깬 곰의 기분이 궁금했다. 휴가가 끝난 기분일까? 플라스틱을 버린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현관 앞에는 빈 상자들이 남아 있었다. 내 두 팔로는 아우를 수 없는 양이었다. 우리 집은 그렇다. 매주 재활용품이 품지 못할 만큼 쌓인다.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비우지만 금방 다시 찬다. 집 안은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냉장고를 열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데, 필요한 것만 샀을 뿐인데, 집 안에도 통장에도 남은 건 없다. 망국의 구겨진 화폐를 펴듯 배달 상자를 반듯하게 펼쳐 모았다. 가벼운 박스는 손에 들고, 무거운 박스는 발로 툭툭 차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발밑의 폐지가 내 커리어를 닮았다. 직장 생활이 학창 시절보다 길어졌다. 13년 차 매거진 에디터. 나이는 서른아홉이다. 시간은 내가 원하는 속도로 흐르지 않았다. 긴 20대를 바랐고, 건강한 30대를 누릴 줄 알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보다 많았다. 봄의 설렘이나 가을의 고독 같은 것도 몇 번은 놓쳤다. 책이 손에 안 잡혔고, 화창한 휴일에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둠이 좋았다. 휴대폰 화면이 밝게 빛나는 곳, 시간을 의미 없이 낭비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전선을 이탈한 군인의 마음이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는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불은 무겁기만 했다. 돌 지난 아들이 누워 있는 내게 다가와 활짝 웃었다. 꽃도 그렇게 예쁘게 피진 않는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아들을 천장 높이까지 안아 올렸다. 그리고 한참을 품에 안은 채 이 방 저 방, 거실과 주방을 옮겨 다니다 베란다로 나가 서울 풍경을 보여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런저런 걸 해보겠다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못했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서다. 정교한 사업 계획이 없다. 사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자고로 사업이란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내용은 간결해야 하며, 수익 모델은 안정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내가 가진 건 지금도 줄어들고 있는 30대 시간뿐이다. 서른아홉의 나는 불안하다. 분명한 것은 40대에는 더 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월급쟁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50대까지 경제활동이 가능한 기틀을 마련해야 할 나이다. 그러니 사업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사업을 하느냔 말이다! 아내는 아기를 품에 안고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지금 나는 회사에 묶여 있고, 아내는 퇴사했다. 육아를 전담하겠다며 먼저 퇴사한 건 아내였다. 아내의 커리어가 아깝다. 아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어렵게 입사한 회사인데, 이름만 대면 아는 곳인데,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다. 아내의 결정에 고개만 끄덕였다.
마흔 살에 다가서면 초연해진다. 자만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역량을 안다. 나는 특출 난 사람이 아니다. 전문 기술도 갖지 못했다. 마당발이 아니라 영업 능력도 시원찮다. 그러니 내 사업은 기발하고 세상을 놀라게 할 대단한 것은 아닐 게다. 이제 꿈은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가능성에 목매지 않고 합리적 판단을 앞세운다. 사업 구상은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다. 내겐 도전할 체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주변에서도 무턱대고 부딪혀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럴 나이가 지났다는 걸 알아서다. 사업에 실패한다 해도 다시 들어갈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은 나이다. 회사에 머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현명한 걸지도. 서른아홉의 나는 번지점프대 위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뛰어내려야 한다. 불안을 없애려면 그래야 한다.
다시 내려간 분리수거장에서 박스에 붙어 있는 택배 송장을 뜯어냈다. 테이프도 모두 잡아 뗐다. 공들인 취재, 밤새워 쓴 기사들이 과월호로 창고에 묻히듯 찢어진 폐지가 바닥에 차곡차곡 쌓였다. 분리수거를 마칠 즈음 폐지 무덤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건 봄비였을까, 계시였을까? _ 조진혁(<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20년의 괴리감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요즘 이틀에 한 번씩 듣는 질문이다. “모릅니다.” 나는 이 대화에 관심이 없다. 오늘도 신문물에 추월당한 아저씨 프레임이 씌워져 소소한 놀림감이 되는 것이 차라리 재밌다. 사실은 관종인가 보다. 아직도 이렇게 자의식 과잉에 빠져 있다니. 나는 마흔 살짜리 애새끼가 되었다. 나는 영상과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요즘은 우리 회사의 앞날을 책임질 어떤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그의 서사와 성장을 그려가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다. 근데 이 캐릭터가 스무 살짜리 남자애여야 한다.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스무 살짜리 인플루언서다. 참으로 곤란하다. 내가 아는 20대와 2022년의 20대가 상호 호환이 되는지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유행이 어떤지. 나는 이 주제에 관심이 없다. 남 잘되는 걸 해서 잘되는 케이스를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잘되려면 잘해야지, 라고 나의 나태함을 정당화한다.
“남자들은 만나면 무슨 얘기해요?”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다. 일단 만나기가 쉽지 않다. 1~2주일 전에 잡은 약속도 깨지기 일쑤고, 이마저 맛있는 음식이 함께하지 않으면 아저씨들은 잘 꼬셔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자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제 여자에 대한 담론을 포기한 모양이다. 나는 아직 싱글인데… 대신 그 시간은 돈 이야기로 점철된다. 나는 돈이 없다. 일생의 하프타임 정도 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올려다본 점수판이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개인 기록은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점수가 왜 이런지 짜증나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숨이 차는 나는 후반전을 위한 체력과 지력이 절실해진다. 그리고 정신 승리가 필요해진다. 다행이다. 수많은 여자와의 추억도, 돈도, 방탕함도, 화려함도, 모험도, 성공도 없이 젊음의 특권을 누리지 못한 줄 알았던 내 청춘이 그저 낭비된 것만은 아니라는 근거를 발견했다. 이런 내가 감히 20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내가 요즘 쓰는 이야기의 절정에서 주인공의 성장에 화룡점정이 되어줄 장치, 나아가 지금까지 잘못을 상쇄시키며 영웅으로 거듭나게 해줄 조건이 있었다. “주인공이 어떤 희생을 할 것인가?” 젊음은 쓰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것이다. 때깔 좋고 알찬 보상과의 교환. 이보다 훨씬 숭고해 보이고 멋진 단어 아닌가? ‘희생’. 과연 나는 실존을 위해 젊음을 기꺼이 재물로 바쳤는지. 다행이다. 그마저도 자랑할 수준은 아니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질 정도는 된다. 나의 가족과 이웃을 위한 희생이 현저히 부족하지만, 그건 후반전에 열심히 해보련다. 내 의식을 나만이 아닌 주변으로 확장하면 나도 자의식 과잉에서 탈출하는 날이 있겠지. 써놓고 보니 뭔지 모를 소리다. 어쨌든 내가 만드는 스무 살 캐릭터는 아직은 자의식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고뇌하지만, 적극적으로 젊음을 희생시킬 무언가를 찾고, 자신에 대한 상대적 가치보다 주변과의 관계로 자신을 정의하는 멋진 놈이 되었으면 한다. 나에 대한 고민과 회사에서의 고민을 동시에 정리하게 해준 이 기회에 감사해야겠다. _ 차병찬(영화감독)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최익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