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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교류

LIFESTYLE

어느 날, 문화 교류라는 이름을 달고 프랑스에서 엄청난 볼거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세 몽탈보가 안무하고 국립무용단이 공연한 <시간의 나이>의 한 장면. 6월에는 프랑스 사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먼저 무용계에서 들려온 신선한 소식 하나. 곧 서울에서 신개념의 댄스 경연 대회를 관람할 수 있다. ‘댄스 엘라지’는 나이나 국적, 학력에 상관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무용 대회다. 파리의 유명한 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과 렌에 자리한 뮈제 드 라 당스(Musee de la Danse)가 공동 기획한 이 대회는 2010년 첫 개최 후 2년마다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 열린다. 그런데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를 맞아 올해는 서울 LG아트센터에서도 대회를 열기로 한 것. 파리 이외의 도시에서 댄스 엘라지를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전 심사를 통과한 34개 팀이 6월 11일과 12일 서울에서, 17일과 18일에는 파리에서 본선 무대에 오른다. 관객이 참관하는 공개 경연으로 진행하는 이 대회가 얼마나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일지는 당일 객석에 앉아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6월 무용계에 짜릿한 소식이 또 하나 있다. 프랑스의 세계적 안무가 조세 몽탈보가 국립무용단을 위해 안무한 신작 <시간의 나이>가 6월 16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 사요 국립극장의 시즌 마지막 무대를 장식할 예정. 한국 전통춤에 현대적 영상을 더한 이 작품은 지난 3월 국립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선보여 한국 관객을 먼저 만났다.
처음 시도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마치 물꼬가 터진 듯 쏟아지는 요즘이다. 이 풍성한 볼거리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대부분 ‘한불 상호 교류의 해’라는 것. 6월 4일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내 한국의 해’는 작년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그리고 ‘한국 내 프랑스의 해’ 행사는 지난 3월부터 올 연말까지 이어진다. 작년 가을 주한 프랑스 대사로 부임한 파비앙 페논 대사는 부임 직후 <노블레스>와의 인터뷰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포함해 프랑스 문화는 이미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상호 교류의 해를 위한 공식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선보인 적 없는, 창조성이 돋보이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 문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상호 교류’라는 경직된 느낌의 단어치곤 매우 흥미진진하다. 공연 예술 쪽에서는 무용계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특히 화제가 됐지만 다른 장르도 만만치 않다. 김영하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연극 <빛의 제국>은 프랑스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을 맡고 배우 문소리, 지현준 등이 출연한 한불 합작품으로 3월 서울에서 공연한 뒤 5월 중순에는 프랑스 오를레앙 무대에 올랐다. 또 지난봄 통영국제음악제는 프랑스 음악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했고, 10월 초 개최하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프랑스 재즈를 특별 프로그램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미술계도 그에 못지않게 분주하다. 7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날 수 있는 <에코 시스템: 질 바비에>전이나 6월 17일 성곡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행위예술가 생 오를랑의 회고전, 그리고 9월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카르티에 브레송>전처럼 대형 전시가 이어질 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협업 전시도 다양하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던 문화 행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전시 중 하나인 <에코 시스템: 질 바비에>전에 전시된 작품, ‘생명 게임’

6월 서울과 파리에서 열리는 신개념의 댄스 경연 대회 ‘댄스 엘라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을 지냈고, 한불 상호 교류의 해 공식 인증 사업을 기획한 최준호 예술감독은 양국의 전문가들이 공동 기획과 공동 제작을 위해 2010년 말부터 사전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명성 높은 문화 예술 기관은 대관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자체 기획으로 구성하므로 몇 년 앞서 준비하지 않으면 기획 전시나 공연을 할 수 없다. 교류 사업의 성패는 대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에 사전에 많은 기획자와 예술가가 양국을 오갔다. 그렇게 상호 교류 사업의 큰 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정당한 교류’였다. “지난 수십 년간 여러 국제 교류를 하면서도 우리 문화 예술이 해외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우리의 콘텐츠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진출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공식 인증 사업을 평등하게 진행하려 했다.” 당연히 프랑스 현지에서도 수많은 한국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미 임권택 감독의 전작을 상영하는 회고전을 개최했고,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파리 가을 축제에 초대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그녀는 지난 4월 29일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 확산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한불 문화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한불 상호 교류의 해 공식 사이트에서 나란히 제공하는 행사 지도를 통해 매일 한국과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수많은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한층 다채로워진 문화 콘텐츠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든다. 교류의 해가 끝나면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다시 줄어드는 걸까? 최준호 예술감독은 “공동 기획과 공동 제작을 하면서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협업이 이루어지는 데 중점을 뒀다”고 답한다. 홍보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문화 사업은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으니, 처음부터 전문가들의 장기적 교류를 목표로 삼았다는 것. 물론 아직 그 성과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교류의 해가 끝나면 그 결과를 수치화할 수 있겠지만 전례 없이 이어진 수백 개의 교류 사업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아티스트들의 협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 그로 인해 또 어떤 새로운 교류가 가능할지는 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우리의 것이 곧 세계의 것’이라 믿는다면 교류는 애초에 불가능한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한불 상호 교류의 해에는 더 이상 이런 해묵은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국가 간 일이든 개인 간 일이든,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뉴얼화하지 않은, 유연한 교류가 필요하다. 연극 <빛의 제국>의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같이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나라를 알게 되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그가 느낀 감동은, 마침내 완성작이 무대에 올랐을 때 객석의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의 연출이 한국에선 다소 낯선 접근 방식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호응한 이유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활동한 존재가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찾아낸 접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해가는 것, 교류의 진정한 가치란 그런 게 아닐까.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