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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숙 감독이 말하는 미래 그리고 서울

LIFESTYLE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을 움직이는 백지숙 감독은 벌써부터 이 행사를 위해 리듬을 탄다.

백지숙 감독을 설명하는 몇 가지 표현이 있다.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던 199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어떤 선점성, 문화 연구와 비평을 포괄하는 다른 미술인과의 차별성, 현장과 담론을 끊임없이 연결해온 독립 기획자 등. 그런 그녀가 올해 아홉 번째를 맞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주최하는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예술감독으로 돌아왔다. 오는 9월 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4개 관을 무대로 열리는 이 거대 미술 행사를 5개월여 앞두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미래’에 대해 말했다. 미술을 그저 놀이로만 여긴 탓에 뒤늦게 미술계에 빠졌다는 이 현장 미술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 제법 명쾌하게 답했다.

한창 바쁜 시기죠? 그래도 ‘미디어시티서울’을 준비하신 게 1년 전부터라고 들었어요.
작년 5월 1일에 정식으로 계약했으니 이제 거의 1년이 됐어요. 그때부터 리서치도 하고 책도 좀 읽고 베니스와 모로코, 샤르자, 미국 등지를 다니며 작가를 만나고 세부 주제도 구상했죠.

그간 독립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입문해 아르코미술관 같은 공공 미술기관과 아뜰리에 에르메스 같은 사립 미술기관을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보이며 미술계 전방에서 활동했습니다. 한데 실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기 전에만 해도 미술과는 거리가 먼 그냥 평범한 여대생이었죠. 어떻게 미술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요?
오래전, 사회학을 공부한 대학 생활 4년간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아요. 그러다 졸업 후 내가 진짜 좋아한 게 뭔지 생각하게 됐죠. 사실 이 동네(서울 정동)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놀이터 삼아 놀던 곳이에요. 오래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 석조전에 있던 시절부터 여기서 친구들과 화방에 다니고, 미술 전시를 보고, 세실극장에서 공연도 보며 시간을 보냈죠. 그런데 그땐 화가가 되겠다, 큐레이터가 되겠다,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그게 직업인 줄도 몰랐으니까.(웃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쪽으로 공부하는 게 있어 놀랐죠.

‘놀이’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사실 돈도 벌 수 있는 일이란 걸 알고 충격을 받은 거네요.
맞아요. 정말 딱 그래요. 그래서 전 예술고등학교에도 진학하지 않았거든요. 제게 미술은 그냥 노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거꾸로 얘기하면 훗날 대학원에 들어가 직업으로서 미술인에 가까워진건, 어쩌면 계속 ‘놀고 싶었다’는 의미일 수 있겠네요.
사실 그렇죠. 직장에 취직하려니까 너무 끔찍해서. 좀 더 놀자 한 게 맞아요.(웃음)

처음 미술 쪽 일을 시작할 땐 어땠나요? 사실 미술계에서 ‘백지숙’이란 이름은 독립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극대화한 어떤 독보적 존재처럼 느껴지거든요. 일을 시작한 초기부터 문화 연구와 비평을 포괄했고, 기성 제도와 담론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기도 했고요.
제가 처음 미학과에 들어간 1988년은 문화 운동과 학술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시기였어요. 전 미술 쪽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미술비평연구회’라는 교내 비평 조직에 들어갔고, 그게 ‘미술’이라는 장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계기였죠. 거기서 4년 정도 활동한 후 1992년에는 그즈음의 문화 환경에 대한 미술의 해석과 반응을 주제로 박찬경 작가와 함께 <도시, 대중, 문화> 전시(큐레이팅)를 기획했고, 거기서 글도 쓰는(비평) 경험을 하며 본격적으로 큐레이터 일을 시작했어요.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은 ‘미래’를 주제로 정했습니다. 근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하필 또 미래일까?
지난 몇 년, 사실 그게 전면에 드러났든 그러지 않았든 미래를 주제로 한 비엔날레가 여러 번 열리긴 했어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또다시 미래를 얘기하는 건 어떤 걸까?’ 사실 제 입장은 이래요. 미래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고 잡히지 않는 무엇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단수로서의 미래는 이미 불가능하고, 많을수록 좋은 미래, 여러 개의 미래를 놓고 보자는 거죠. 어차피 미래를 이야기하는 시점과 관점은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시 제목도 그렇게 정한 거죠? 정말로 미래처럼 보이게.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라고.
전시 제목은 일본 시인 다니카와 타로가 쓴 <20억 광년의 고독>이란 시집의 동명 시에서 따왔어요. 시인이 화성인의 말을 상상해 쓴 구절인데, 마침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언어, 또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는 과거 또는 현재의 언어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의 기획 의도와 맞아 빌려왔죠.

미래는 정말 어떻게 대처해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정답이 없으니 그냥 이것저것 가져와 ‘미래’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미래라는 큰 틀 안에서도 무언가 다른 미술 전시와 차별성은 있나요?
우선 이번 미디어시티서울은 전쟁과 재난, 빈곤 등 원치 않는 유산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전환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요. 그리고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주목해 예술 언어와 미디어가 매개하는 다양한 미래를 제안하고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기억이면서 노스탤지어이기도 한 내일의 가능성을 물을 예정이죠.

좀 더 듣고 싶어요. ‘내일의 가능성’이라는 말도 너무 큰 언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런 실험이 있긴 해요. ‘장애라는 것에 어떻게 미술로 접근할 수 있는가?’ 사실 우린 그간 장애와 예술을 연결할 때 거의 윤리적 태도로만 접근해왔거든요. 근데 거기에 미적으로 접근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을 해보자는 거죠. 우리가 장애를 돕는 게 아니라, 거꾸로 장애의 경험을 빌려 현대미술이 놓친 부분은 없을까 고민도 해보고.

전시에서 소개할 세계의 작가들을 접촉하며 느낀 어떤 차이점은 없나요? 이를테면 대륙별이든 국가별이든, 각자가 미래를 감지하는 관점 같은 것.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대륙별로 차이는 있었어요. 남미에선 미국과의 관계를 미래에서도 중요시하고, 아프리카의 경우 수탈의 역사가 깊은 탓인지 원시적인 힘과 반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죠. 또 아시아는 익히 알려진 이미지처럼 기술의 발전에 깊이 매료된 특성을 보이고요. 그런데 이런 걸 느끼며, 역시 미래를 얘기하는 건 어느 대륙, 어느 국가든 상당히 정치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래라는 건 정말 그것에 대해 말하는 발신자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50여 팀에 이르는 올해 ‘미디어시티서울’의 초대 작가 중 우르술라 마이어의 ‘Gonda’

전시 초대 작가 중 눈에 띄는 이들을 소개해주세요.
미국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청각장애인 작가 크리스틴 선 킴(Christin Sun Kim)과 오스트리아 작가 우르술라 마이어(Ursula Mayer)가 떠올라요. 크리스틴 선 킴은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타고났음에도 사운드 아트와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데, 이렇게 장애의 영역을 전면에서 다루는 것도 비장애인으로선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일 거라는 생각에 그를 초대하게 됐어요. 우르술라 마이어는 영화의 고전적 문법을 깨뜨리고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디스토피아적 영상을 만드는데, 그 특유의 영상미가 볼만하죠.

전시 준비를 하며 부딪히는 문제는 없나요?
늘 예산이 문제죠.(웃음) 그런데 이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예산이 너무 많아도 때론 재난이 되거든요. 다만 이렇듯 규모가 큰 전시에선 대상이 누가 됐건, 그들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을 정도의 예산은 필요하다고 봐요. 거꾸로 말하면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예산 집행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전 그래서 행정 전문가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요.

그간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등 다양한 기관과 프로젝트를 거치며 ‘연구하고 사고하는 문화 비평가’, ‘현장과 담론을 연결하는 독립 기획자’ 같은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얻기까지 우여곡절도 숱하게 겪었죠. 그럼에도 계속 미술계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일하며 재미를 느낀 부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정말 좋은 건 사실 대단한 것도 아니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경험, 작가와 큐레이터, 공간이 함께 성장하는 경험과 변화를 지켜보는 게 무엇보다 신났고 지금도 그래요.

올가을 미디어시티서울을 찾을 관람객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미디어시티서울엔 사실 모든 문제가 어우러져 있어요. ‘미디어’이면서 ‘도시’이면서 또 서울의 역사성까지 함께하죠. 지금 단계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건, 서울의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을지, 도시의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을지, 또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미래를 조망할 수 있을까 하는 소박한 문제의식이에요. 그간 서울의 모습을 돌아보면, 해방 후 지난 60여 년간 계속 ‘발전’뿐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미래상은 굉장히 모호하고요. 그래서 이번 행사가 그런 부분에서 예술가들이 제시하는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 김상곤(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