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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그 가능성에 대하여

ARTNOW

과거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촉매제로 사용되던 퍼포먼스는 현재 그 의미를 확장 중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퍼포먼스의 변화 추이와 그 경계를 해석했다.

지난 5월 초에 열린 뉴욕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새롭게 선보인 ‘프리즈 사운드 프로그램’ Courtesy of Marco Scozzaro Frieze

“모든 작가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퍼포먼스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던 ‘신체를 이용한 라이브 액션’이라는 1차원적 개념에서 ‘작품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과 신체적 성격’을 포함한 개념으로 동시대 퍼포먼스의 의미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전문 미술이나 공연 혹은 대중 예술 할 것 없이 무분별한 기준에 의해 선별한 자극적인 요소를 ‘퍼포먼스’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히 선보이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기존 행위예술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던 퍼포먼스의 문턱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긍정적 측면이지만, 근래 인스타그램 등에서 양산되는 인스턴트적 ‘짤’과 같이 패션, 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단순히 핫하고 힙한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는 요소로 치부되는 것을 볼 때면 퍼포먼스의 저평가된 가치에 허무함을 느끼곤 한다. 사실 포스트모던 퍼포먼스가 미술사에 남긴 궤적은 미술의 영역으로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복합하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전문 미술 영역에서 퍼포먼스는 순수 미술과 그 가치를 나란히 할 정도로 꽤나 다양한 발전상을 보였다. 그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지난 몇 년간 퍼포밍 아트, 곧 라이브 퍼포먼스를 위주로 한 작품이나 전시는 미술관과 갤러리, 극장 할 것 없이 주요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다. 이는 퍼포먼스가 현시대의 성향을 반영한, 흥미롭고 가치 있는 영역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증거다.
영국의 대표적 현대미술 기관 테이트 모던은 2000년 개관 이래 글로벌한 현대미술 기관 중 가장 먼저 퍼포밍 아트 전담 부서를 만든 미술관이다. 테이트 모던 내 총 3개의 오일 탱크 공간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면서 2012년에는 ‘더 탱크스’라는 이름으로 퍼포먼스 전용 전시장까지 구축했다. 더 탱크스는 라이브 퍼포먼스와 필름 그리고 대규모 설치 작품을 주로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음악과 무용, 연극, 영화, 문학적 요소가 깃든 스포큰 워드를 주로 다루고 있다. 더 탱크스는 오픈 당시 약 3개월 동안이나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미술관의 관람객 유치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지난달에는 테이트 모던 신관을 개관하며 퍼포먼스 아트에 특화한 컬렉션 전시장을 조성해 1960~1970년대에 개념적 접근을 기반으로 한 미래주의, 다다이즘의 주요 거장 작품을 선보였다. 이곳에서는 앞으로도 BMW와 블룸버그 재단의 후원으로 정기적인 라이브 퍼포먼스 프로젝트와 미디어 스크리닝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듯 퍼포먼스는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작품 혹은 예술 활동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능동적 공간으로 미술관을 변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매체와 재료를 다루는 기성 작가들, 나아가 대중과 함께 실험적 시도를 도모하고 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카고 출신의 시어스터 게이츠는 도심의 로컬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도시 재생과 재건을 주제로 작업해온 작가인데, 그가 지난 2015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선보인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젝트 ‘12개의 발라드’는 위그노 하우스에서 벌인 재미난 퍼포먼스였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공연하며 일정 시간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기도 하고 공간과 공간 내에 버려진 카펫, 계단, 낡은 가구 등을 재생해 새로운 공간을 완성했다. 작가는 이 일련의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이는 전통적 극의 성격을 지닌 기존 퍼포먼스 외에도 퍼포먼스를 사회적 작업으로 다루고 실제 지역 기반의 예술 활동에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시어스터 게이츠는 이를 지속적으로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고향 시카고를 기반으로 비영리 프로젝트 재단 ‘리빌딩 파운데이션(Rebuilding Foundation)’을 설립, 대중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자체의 후원으로 지역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와 펠로십도 운영 중이다.

퍼포먼스 전용 전시장인 더 탱크스의 전시 전경 Photo by Marco Scozzaro

퍼포먼스의 확장은 기존 미술관이나 비영리 기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5월 초 열린 뉴욕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새롭게 런칭한 ‘프리즈 사운드 프로그램’과 같이 세계적 아트 페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조니의 아내 체칠리아 아르마니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페어 기간에 일정 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스트리밍되었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MoMA PS1 관장 클라우스 비젠바흐가 공동 큐레이팅으로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에서 시작한 ‘11 Rooms’를 아트 페어의 성격에 맞게 재가공해 아트 바젤에서 선보인 ’14 Rooms’ 프로젝트 또한 동시대 퍼포먼스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이외에도 ‘아트 인 액션(Art in Action)’처럼 시각 기반의 작업이 아니라 특정 공간을 기반으로 일련의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활동도 퍼포먼스 범주에 포함된다. 뉴욕 소재 뉴 뮤지엄 내의 라이좀(Rhizome)은 영상과 사운드 기반의 뉴미디어에 특화한 단체로 작품 제작과 스크리닝, 퍼포먼스를 유치하고 이에 대한 리소스를 공유하며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1~2년간 국내의 젊은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업실이 포진한 을지로3가 일대에 문을 연 ‘신도시’라는 복합 문화 공간을 예로 들 수 있다. ‘신도시’는 인디 밴드 공연, 미디어 스크리닝, DJ 혹은 VJ의 프로젝트를 개최하며 젊은 예술가들의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퍼포먼스는 시대가 변해도 늙지 않는 젊고 감각적인 정신을 지닌 장르다. 물론 예술사적 측면에서 과거 다수의 퍼포먼스 작업이 사회적 금기를 다루며 전위적 성격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때때로 비윤리적이고 극단적인 섹슈얼리티로 묘사되고 폭력, 터부 같은 자극적이고 파격과 충격을 우선시하는 무분별한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퍼포먼스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퍼포먼스의 전위성을 진보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과거의 관용적 관점, 그리고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미술 현장의 입장과 향후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퍼포먼스는 예술을 기반으로 한 제3의 언어로 무궁한 가능성이 있다. 인종과 국가 그리고 이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초월해 소통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미에서 정신적·물리적 소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도 있다. 퍼포먼스가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양산하는 촉매가 아니라 관람객의 능동적 감상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예술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본다.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 전민경(국제갤러리 대외 협력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