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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향유

ARTNOW

전미래의 작품은 그녀가 직접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을 예술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그녀는 이제 수많은 질문과 온전한 수행을 거쳐 비로소 삶으로 드러난 진짜 ‘퍼포먼스’ 를 선보이려 한다.

전미래
Jeon Mirai

미메시스아트뮤지엄에서 열린 개인전 <삼합, 발효의 연식술>, 발효 연식술 ll, 퍼포먼스, 13분, 2015
Courtesy of the Artist

전미래

2004년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 입학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 장 뤼크 빌모트, 가와마타 다다시 등의 아틀리에를 거쳐서 2009년 석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에서 1년간 포스트디플롬 과정을 이수했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20주년 기념 특별 퍼포먼스 프로젝트 ‘Tap- Taretap’, 제37회 중앙미술대전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한 <이미 아직>의 무대미술 작업을 했다.

 

코너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전, 너를 위한 구멍, 퍼포먼스, 15분, 2014
Courtesy of the Artist

처음으로 예술 혹은 퍼포먼스 작업에 대해 고민한 순간은 언제인지 말씀해주세요. 계원예고 재학 시절, 퍼포먼스 1세대 작가로 잘 알려진 성능경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예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 삶이 예술이 되는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한 분이죠. 이후 테크닉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예술을 찾기 위해 모험하듯 프랑스로 갔어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 입학해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와 장 뤼크 빌모트(Jean Luc Vilmouth) 등 유명 작가에게 수업을 들으며 가장 놀란 건 그들이 작업뿐 아니라 삶과 아주 밀접한, 일상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거였어요. 그때 그들의 삶에 당연하게 녹아 있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보고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예술이 곧 삶인 이들에게 동양화, 서양화, 설치, 사진 같은 경계를 구분하는 건 중요해 보이지 않았어요. 그것이 제가 설치미술과 퍼포먼스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안무까지 그 모든 것을 하는 이유입니다.

퍼포먼스를 할 때 그 ‘수행성’이라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제 인생의 지향점은 예술가 본연의 역할을 하며 사는 거예요. 그런 이유로 연기, 즉 ‘퍼포밍 아트’가 되지 않으려면 수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퍼포먼스’는 창피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상황에서 작업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해요. 미시적 관점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 그것을 작업으로 이끌어내기까지, 모든 일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용감한 사람은 아니고 퍼포밍 아트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상에서 예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퍼포머 자체가 퍼포먼스적 요소를 갖췄을 때 작품에서 감동이 느껴집니다.

파리 유학 시절인 2010년, 파리 르 상카트르(Le Centquatre)에서 첫 퍼포먼스 ‘롤링 시티(Rolling City)’를 발표했죠. 당신의 초기작이 궁금합니다. 구르는 도시’라는 뜻의 ‘롤링 시티’는 500여 개의 바퀴가 달린 코스튬을 직접 제작해 입고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니거나 1 굴러다닌 작품이에요. 어떤 특별한 동작이나 춤을 추진 않고 자연스러운 제스처만으로 메시지를 남기는 작업이었죠. 일반적인 것에 반대되는 상황과 요소에 주목한 작품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관람객이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공간이 끊임없이 재활성화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이후 7년간 살던 집을 작품으로 변형한 ‘리엔(Rien)’이나 ‘레드 카펫(Red Carpet)’ 퍼포먼스도 비슷한 맥락에서 ‘공간의 재활성화’를 탐구한 작업입니다.

전미래 작가와 <백스테이지展 by 0914>의 설치 작품 ‘Creative Evolution’

발효된 만두 반죽에서 모티브를 얻은 흔들의자 설치. 싸개, 밀가루 반죽 형태의 흔들의자 6개, 스티로폼, 천, 가변 크기, 2015
Courtesy of the Artist

최근 2~3년간 ‘발효’라는 주제로 선보인 작품은 관람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수행적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그 작품을 창작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우연히 영등포 근처 식당에서 삭힌 홍어를 먹고 처음으로 제 몸이 뻥 뚫리는 듯한 묘한 경험을 했어요. 낯선 동네의 분위기, 홍어의 공포스러운 색깔, 입으로 들어올 때 느낀 쾌감과 불쾌감이 제 모든 세포와 감각을 깨우고 발악하게 했죠. 이후 ‘감각’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고민하며 그런 감각적이고 이상한 경험에 몰두하게 됐습니다. 그 모든 걸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한 끝에 홍어를 하나의 영성체나 숭고한 매개체로 비유한 작업이 바로 ‘숭고한 삼합’(2014년)입니다. 홍어를 먹으며 느낀 감각을 언어와 제스처, 소리와 맛으로 전달하는 퍼포먼스였어요.

당신이 늘 강조하는 ‘감각의 향유’에 대한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된 거군요. 맞아요. 저에게 가장 좋은 자극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미각이나 촉각, 청각으로 느끼는 예술이에요. 내가 느낀 것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며 감각의 향유에 집중했습니다.

그다음 발효 코드는 ‘만두’였습니다. 왜 하필 만두였나요? 하얼빈의 유명한 만둣집에서 맛본 중국 만두는 제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어요. 그 만두는 피부를 벗겨낸 듯 아름답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한 미색(米色)이었어요. 만두피도 두꺼운 편이라 씹을 때 사람의 살을 깨문 듯 알 수 없는 쾌감과 공포감을 동반하죠. 알고 보니 만두피를 반죽할 때마다 매번 조금씩 떼어내 다음 반죽에 섞는다고 하더라고요. 몇백 년 동안 그 과정을 거친 미생물을 통해 만두피 반죽을 발효시켜온 거죠.

지난해에 미메시스아트뮤지엄에서 선보인 개인전 <삼합, 발효의 연식술>은 바로 그 만두에 관한 이야기를 퍼포먼스와 설치로 보여준 전시였어요. 처음으로 안무를 하기도 했다고요?네. 먼저 ‘발효 파티’라는 설치 작업은 6~7m짜리 해골 벽화와 무대 조명, 거울, 밀가루를 사용했어요. 인간이 죽은 다음 썩어서 그 살이 흩어지고 해체되고 자연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잉태시키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그런 일련의 반복을 통해 부모와 조부모, 조상이 모두 하나의 유기체로 엮여 있다는 걸 표현했죠. ‘발효 연식술’이라는 퍼포먼스에서는 만두피를 빚는 동작을 박수 소리로 바꾸고, 탱고라는 춤을 통해 고통과 희열을 동반하는 발효 감각을 표현했어요. 제가 연출과 안무, 의상을 맡고 김혜경, 서일영, 정완영 등이 출연했습니다.

그 작품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밀가루 반죽을 치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거기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발효 코드에 집중하면서 순차적인 시간 외에 죽음 이후 역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홍어는 삭히는 과정으로, 만두는 살의 일부를 떼어내 그 숨을 이어가는 것으로요. 실제로 죽었는데, 죽지 않은 무언가가 된다는 것. 이처럼 발효를 통해 시간대가 넓어지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또한 홍어와 만두를 삼켜 제 몸속을 발효가 통과할 때, 저도 모르게 나오는 리듬과 흥, 표정을 담았어요.

<삼합, 발효의 연식술> 오프닝 퍼포먼스. 발효 파티, 목탄, 무대 조명 2개, 거울, 밀가루, 가변 크기, 2015 Courtesy of the Artist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만두가(饅頭歌)’는 스크립트로 된 작품이에요. 일종의 렉처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죠.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든 텍스트인데, 외국에는 스크립트 작업만 하는 렉처 퍼포먼스 작가도 있어요. 저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합니다. ‘만두가’는 제가 샤먼이 되어 만두굿을 하는 것처럼 “부풀어오른다, 더 부풀어오른다, 오른다, 호흡한다, 다시 후~~~” 이런 대사를 읊으면서 리듬감과 사운드로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었어요.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을 작품화하는 것이 진정한 퍼포먼스 예술이라고 했죠. 매 순간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예술이 삶이고 삶이 예술’인 삶이 피곤하지는 않나요? 예전에 번개나 폭죽, 피고 지는 꽃처럼 일시적인 것이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유학 생활을 마치고 10년 만에 한국에 정착했을 때, 익숙지 않은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제게 강렬하게 와 닿는 경험을 하면서 찰나의 가치를 느꼈죠. 일시적 현상이나 순간이 일으키는 큰 파장에 관심을 가지면서 좀 더 ‘순간’에 몰두하고 온몸으로 즐기는 태도를 갖게 됐어요. 타협점을 찾을 수 없고 일상의 모든 순간에 예민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죠. 하지만 작가로서 제 고유의 언어는 이렇게 감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퍼포먼스 작가로서 이 장르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이 퍼포먼스를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옛날부터 많은 예술가가 해온 작업이에요.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작품 아카이빙에 대한 고민은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면 퍼포먼스 작품이 부질없는 게 될 수 있으니까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장소에서 전시하고 다작을 발표하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잘 짜인 각본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민과 과정을 거쳐 예술의 진짜 역할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동안 ‘공간’, ‘발효’ 등을 키워드로 작업해왔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스토리가 등장할지 궁금합니다. 이번엔 ‘사랑’에 관한 이야기예요. 14년 동안 한 사람과 연애하면서 사랑, 이별, 미움, 기쁨 등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 제 친구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긴 시간 동안 곪아 터지고 새살이 돋고 다시 닳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지켜봤죠.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발효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에로스에서 시작해 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내년쯤 고통과 쾌락이 반복되고 어느 순간 하나로 뭉쳐지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 |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 김재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