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DESIGN WAVE
2023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찾아낸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미학.
아웃도어 전성시대
올해 행사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아웃도어’였다. 그간 인도어 가구 중심으로 선보여온 카르텔, 마지스, 놀 등도 전시장 중심에 신제품 아웃도어 가구를 놓을 만큼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간 아웃도어 가구는 소수의 브랜드가 이끌어온 협소한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그동안 무심했던 메이저 브랜드조차 유명 디자이너를 앞세워 발 벗고 진출할 만큼 메인 마켓이 된 것. 덕분에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며 인도어 가구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화려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도 야외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듯 자연의 형상을 반영했는데, 모로소는 프런트 디자인(Front Design)의 ‘페블 러블’ 소파에 이름처럼 돌무더기 느낌을 형상화한 특수 원단인 포레스트 원더링을 입힌 제품, 영 디자인 그룹 자넬라토/보르토토가 디자인한 철제 법랑 탁자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또 플로스, 아르테미데 같은 세계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어온 조명 디자인 브랜드도 아웃도어 조명을 부각해 눈길을 끌었다.
소재, 철학을 만나다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재발견한 자연의 가치는 아웃도어 트렌드와 함께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단순히 소재의 종류와 색상을 탐구하는 영역을 넘어 소재 자체에 내재된 가치와 본질에 닿아 있는 듯했다. 전통 소재가 지닌 기품과 가치, 장인의 손에서 완성되는 특별한 품질을 새로운 제품과 공간에 녹여낸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스위스 디자인 그룹 아틀리에 오이가 선보인 설치 작품 ‘아이올로스’(Eole: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람의 신)는 몰자(Molza) 종이로 만든 오브제로, 공간에 바람을 일으키며 움직인다. 가볍게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바람과 더불어 몰자 종이와 소나무 조각의 향기가 디퓨저처럼 공간에 퍼지며 소재가 품은 공감각적 감성을 표현한다. 체코의 뛰어난 유리∙도기 기술을 선보인 전시 <메이드 바이 파이어(Made by Fire)>는 소재에 담긴 장인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 완벽한 작품을 위해 깨어진 무수한 미완성작의 이미지를 작품과 더불어 공간에 연출해 큰 호응을 받았다. 기존의 통념을 깨는 소재 연출로 신제품을 선보인 디자이너도 많았다. 벽돌 건축물로 유명한 세계적 건축 거장 마리오 보타는 토템처럼 쌓아 공간의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는 스툴 모듈을 도기로 선보였고, 미니멀한 미래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콘스탄틴 그리치치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헬라 용에리위스와 협업해 다양한 질감의 소재를 하나로 혼합한 의자 ‘트웨인’을 선보였다.
나만의 메이커 스페이스
투박하지만 따스한 손맛이 담긴 디자인이 더욱 다양화되었다. 특히 엮거나 짜는 니팅 기법을 강조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는데, 니팅 디테일 아이템은 인간적인 멋과 온기를 실내 공간에 불어넣기 좋다. 러시아 여성 디자이너 니카 주판크의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마치 굵은 털실로 소파를 짠 듯한 형상의 디자인이 공간에 유머러스함과 포근함을 더한다. 전 세계 우수한 공예인을 후원하며 공예의 가치를 중시해온 로에베는 ‘로에베 체어’ 프로젝트를 통해 간단한 도구로 일상에서 쉽게 니팅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의자를 전시했다. 일본 디자인 그룹 넨도가 미국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과 협업해 선보인 <브레이크 투 메이크(Break to Make)>는 넨도가 디자인한 욕조를 다니엘 아샴이 부숴 또 다른 디자인의 벤치를 완성하는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독특한 컨셉의 전시였다. 다용도로 쓰이는 하이브리드 퍼니처가 아닌,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또 다른 가구로 만들어낸다. 완전히 다른 용도, 혹은 용도는 같지만 변형된 형태로 재탄생해 제품 수명을 연장시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아낸 것. 이 새로운 컨셉의 디자인 아이디어에는 니팅과 마찬가지로 사용자를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적극적 창작자, 즉 공간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감성적인 퍼포먼스 라이팅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격년으로 조명 전시 ‘유로루체(Euroluce)’와 주방 전시 ‘유로쿠치나(Eurocucina)’를 별도로 개최한다. 올해는 유로루체가 열린 해로, 이제 조명은 급격히 발전한 기술 덕분에 일반 디자인 오브제와 별반 차이 없이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또 빛이 선사하는 드라마틱한 효과와 특별한 기능을 더해 가구를 뛰어넘는 감성적 제품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번 디자인 위크에서 새롭게 선보인 제품들은 조명의 전통적 기능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넘어 하이테크를 적용한 공감각적 퍼포먼스와 연출로 관람객을 놀라게 했다. 전방위적∙다각적으로 움직이는 조명부터 사용자의 설정에 따라 조도와 높낮이, 키네틱아트 같은 움직임과 빛 조절을 연출하는 섬세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또 통념적 조명 형태를 탈피한 새로운 디자인도 선보였다. 스위스 건축 그룹 헤어초크 앤 드 뫼롱은 퍼즐처럼 3개의 광원을 탈착식으로 조합해 연출하는 새로운 컨셉의 조명 ‘드라이슈비츠’(18세기에 유행한 삼각 모자)를,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조명 디자이너 다비데 그로피는 공간에 빛과 함께 융화되어 사라지는 듯한 투명한 조명 ‘비스 아 비스’를 선보였다.
기술로 빚어낸 맥시멀 데커레이션
일반적으로 과장된 장식은 ’현대적인 것’과 반대의 가치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불식시키듯 올해 전시장 곳곳을 메운 화려한 장식 형태의 디테일 가구는 현대를 상징하는 최첨단 기술의 연장선 위에 있다. 눈부시게 성장하는 첨단 기술이 부여한 가능성을 제조 방식에 결합하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새로운 형태와 소재의 조합이 가능해졌다. 종이 위의 스케치가 아닌 3D 렌더링을 통해 디지털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제작, 복제, 결합한 디자인을 형상화하는 것. 신진 작가 오드리 라지(Audrey Large)는 판타지 세계에서 가능할 것 같은 과장되고 장식적 형태의 조형 작품과 가구를 선보였다. 다양한 색상의 복잡한 조형 오브제는 정교하게 서로 조합∙분리된다. 이 외에도 전통성과 현대성이 한데 뒤섞여 다양한 색상과 물성의 소재를 조합한 다양한 디자인이 주요 브랜드의 전시장을 채웠다. 포스카리니에서는 디자이너 안드레아 아나스타시오가 유럽의 실내 공간에서 쓰던, 전통 공예 소재인 도기를 조명에 접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CASSINA 새로운 모던 조명 디자인의 출현
풍성하고 혁신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까시나. 안토니오 치테리오, 가에타노 페스체,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등 화려한 디자이너 군단이 협업한 가구와 조명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넓은 스펙트럼의 스타일을 만족시키는 새로운 조명 컬렉션으로 주거 공간에 대한 비전을 확장해 눈길을 끌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디자이너 찰스 앤 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조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임스 오피스 앤 폼 포트폴리오(Eames Office and Form Portfolios)와 협업한 이 첫 번째 ‘임스 라이팅 컬렉션’은 2024년에 런칭할 예정이다.
explore new DesignS @Fuori Salone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 (Fuori Salone)가 펼쳐진다. 토르토나 지구와 브레라 지구를 중심으로 건물마다 밀도 높은 전시가 이어지는 현장. 그 뜨거운 열기를 품은 창의적 축제 현장에서 에디터의 발길을 붙드는 디자인 브랜드 열 곳.
MUUTO 컬러와 형태, 텍스처로 경험하는 공간
브레라 지구에 자리한 18세기 아파트먼트 형태의 갤러리가 감각적인 변화의 옷을 입었다.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무토의 가구와 조명, 소품 등으로 혁신적이고 탐구적인 인테리어를 창조해 컬러와 텍스처, 형태적 요소가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 것. ‘Butterfly Effect’라는 테마처럼, 다채로운 색조로 재구성한 거실, 침실, 키친 등의 인테리어가 일상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을 제안했다.
B&B ITALIA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뉴 에디션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비앤비 이탈리아 쇼룸은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로 리소니의 진두지휘 아래 수평과 수직이 조합된 그래픽 요소와 강렬한 색상, 백라이트와 미러링 효과를 이용해 연출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뉴 컬렉션을 대거 선보였는데, 피에로 리소니가 디자인한 새로운 모듈식 소파 ‘담보’, 1950년대 노르딕 디자인과 일본 문화의 결합으로 탄생한 안락의자 ‘에리트’부터 영국의 디자인 듀오 에드워드 바버와 제이 오스거비가 디자인한 ‘토르텔로’, 일본 디자인 거장 후쿠사와 나오토의 미니멀한 캐비닛 ‘테트라미’ 등 브랜드 고유의 창의적 DNA와 다양한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놀라움을 안겨주고 싶었다는 피에로 리소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디자이너 일곱 명이 새로운 디자인의 향연을 펼쳤다.
RE;CODE 가치 있는 같이, 지속 가능한 비전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래코드는 패션을 넘어선 서스테이너블 이니셔티브답게 밀라노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담은 전시를 펼쳤다. 지난 10주년 전시로 시작된 ‘리콜렉티브(Re;collective)’를 새롭게 선보인 것. 아홉 명의 한∙중∙일 디자이너가 참여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방식으로 패션, 가구, 산업디자인에 이르는 12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와 함께 전시장 안에는 일본의 스키마타 건축 사무소와 TANK 건축 사무소의 디자인 유닛 ‘데카세기’와 협업해 에어백으로 만든 공용 소파, 아르텍의 ‘세컨핸드’ 빈티지 체어 등도 만날 수 있었다. 또 업사이클링을 직접 체험하는 무료 DIY 워크숍도 마련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LORO PIANA 이국적 자연으로 떠난 여행
로로피아나는 이번 행사 기간 동안 아르헨티나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모하데드와 협업해 ‘아파체타스(Apachetas)’라는 테마의 전시를 선보였다. 고대 안데스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몽환적인 미지의 자연으로 여행을 떠난 듯한 풍경을 구현했다. 아파체타스는 안데스산맥의 돌 더미를 일컫는다. 자연을 닮은 불규칙한 형태, 부드럽고 어스(earth)한 컬러 팔레트, 로로피아나의 지속 가능한 직물 소재 등으로 디자인한 소파, 테이블 등 가구와 조각 작품 등이 아름답고 평온한 자연의 미학을 선사했다.
DOLCE & GABBANA 정교한 공예로 빚어낸 이탈리아 디자인
시칠리아의 전통 손수레 카레토, 지중해의 파랑(blu mediterraneo), 레오퍼드(leopardo), 지브라(zebra)에 이어 브랜드의 심벌로 자리 잡은 DG 로고와 화려하면서 세련된 바로크 양식을 오마주한 오로 24K(Oro 24K) 패턴을 추가한 까사 컬렉션을 선보였다.
MOOOI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이 빚어낸 미학
독창적 감성의 프리미엄 네덜란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오이가 LG전자와 손잡고 ‘A Life Experimental’이라는 테마의 감각적인 전시로 관람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작년에 이은 두 번째 협업으로, LG 올레드 오브제 컬렉션 ‘이젤’과 ‘포제’의 라이프스타일 TV가 모오이의 캔버스가 되어 장난스럽고도 유쾌한 조합을 연출했다. 모오이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는 기술적 소비재가 어떻게 이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요소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조화롭되 즐거운 공간. 바로 모오이가 해석하고 표현한 창의적 공간의 모습이다.
CARL HANSEN & SØN 덴마크 디자인의 새로운 유산
‘New Heritage’라는 테마 아래 재출시한 건축가 빌헬름 라우리첸의 ‘모나크’ 체어와 한스 베그네르의 ‘네스팅’ 테이블, 알프레드 호만의 새로운 ‘AH 아웃도어 시리즈’ 등을 전시했다. 가볍고 기능적이면서 독창적으로 구현한 칼한센앤선의 컬렉션은 장인정신이 담긴 덴마크의 디자인 유산을 보여준다.
LOUIS VUITTON 새로운 오브제를 향한 또 한 번의 여행
세계 유수 디자이너의 재능과 메종의 장인정신이 결합되어 탄생한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2012년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컬렉션을 확장해온 브랜드답게 밀라노 도심 내 유서 깊은 ‘팔라초 세르벨로니’에 프랑스 건축가 마르크 포르네가 특별히 조성한 공간 ‘노매딕 파빌리온’에서 관람객을 맞이했다. 아틀리에 오이, 마르셀 반더스, 자넬라토/보르토토 등의 신작 11점과 캄파냐 형제의 스페셜 에디션 2점을 선보였다. 마크 뉴슨이 재해석한 루이 비통 트렁크 ‘캐비닛 오브 큐리서티(Cabinet of Curiosities)’도 공개했다.
FENDI CASA 빛의 아이콘과 이룬 독창적 조화
이번 디자인 위크 기간에 스칼라 광장에 위치한 부티크에서 소개한 새로운 컬렉션은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의 가죽 셸 안에 풍성한 패딩 쿠션을 담은 ‘피카시트’ 소파, ‘펜디 페퀸’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블로운’ 모듈 소파 등 콘트로벤토 스튜디오와 협업한 소파, 피에로 리소니가 넓은 스퀘어 형태로 디자인한 ‘타이코(Taiko)’ 소파 등 펜디 까사 가구와 루이스 폴센이 조우해 눈길을 끌었다. 폴 헤닝센이 디자인한 루이스 폴센의 다섯 가지 아이콘으로 구성해 덴마크 디자인 전통과 이탈리아의 탁월한 디자인 감성을 결합했다. 두 브랜드에게 중요한 시대인 1920년대를 기념하기 위한 컬렉션으로, 1924년은 빛의 대가인 폴 헤닝센과 루이스 폴센의 컬래버레이션이 시작된 해이며, 1925년에는 펜디가 설립되었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