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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예술의 예기치 못한 마주침

ARTNOW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 비평가로 불리는 리엄 길릭. 그는 데이미언 허스트, 세라 루커스 등과 함께 1990년대 영국 미술을 주도한 yBa의 초기 멤버이자,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인 ‘관계의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다. 무채색과 원색의 추상적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진 그는 출판, 조각, 디자인, 텍스트, 영화, 음악, 전시 기획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전시를 앞둔 리엄 길릭을 만났다.

Liam Gillick
리엄 길릭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공간을 특별하게 재해석한 세계적 아티스트 리엄 길릭

미술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2009년 독일 국가관의 전시 작가로 선정된 아티스트는 영국인인 리엄 길릭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나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그가 독일에서 산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독일이 자국 출신이 아닌 예술가를 선정한 것은 동시대 미술에 미치는 리엄 길릭의 영향력을 입증한 것이다.
리엄 길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건물의 구조적 개념을 재해석하고 공간의 질서를 탐구했다. 나아가 인간과 환경, 삶과 예술, 일상과 건축의 관계를 정립하고 사회적 현실과 삶을 구획하는 시스템에도 주목해왔다. 당시 예술계를 뒤흔든 ‘관계의 미학’이라는 문맥 안에서 공간, 예술, 관람자의 관계를 다시 규정한 것도 그의 성과다. 전시장에서 관람자가 참여하고 상호 교류하며 생겨나는 반응을 작품의 전제로 두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전시 중에도 계속 새롭게 정의된다. 그의 예술이 진정 빛을 발하는 건 작품 설치를 완료한 이후다. 마치 공간의 일부인 듯 관람객의 동선에 개입해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우연한 조우를 가장하는 작업이다. 자연스럽게 작품에 들어온 사람들의 창의적 해석과 의외의 접근, 기발한 추측 등으로 완성되는 그의 작품은 결과적으로 계획에 없던 다양한 면을 이끌어낸다.
리엄 길릭이 추상과 건축이라는 개념 안에 마련해둔 장치를 통해 예술과 우연히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반갑다. 자신의 작품과 맞닥뜨린 사람들의 반응과 상황을 주시하는 그의 예술적 영감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그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8월 30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발견하는 색다른 구조와 관점, 리엄 길릭의 예술 정신을 함께 완성해나갈 다음 주자는 바로 당신이다.

2010년 독일 본에 있는 연방공화국 건물 전시 홀 분데스쿤스트할레에서 선보인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by David Ertl

리엄 길릭이 2010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센텐플라자에 설치한 작품으로 원색적 색감이 돋보인다.

서울에서 공개할 신작 ‘If Relationships…’는 어떤 작품일지 궁금하다.
관람객을 예술, 인류, 모든 갈등과 불화, 사랑, 존재 너머의 시간으로 데려가는 작품이지만 그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참여적 매체로서 예술’이라는 가정을 검증하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도구로 이 문구를 활용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2000년대 초반에 작업한 영국 내무부 건물의 초기 버전이다. 최초 버전에서는 텍스트를 건물 표면의 안쪽에 숨기고 싶었다. 작품은 구조에 의해 통합되지만 또한 구조에 의해 가로막히기도 한다. 텍스트가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건물 구조 속에 존재했을 것이다. 난 이번 전시를 위해 그 작품을 더욱 발전시켰고 명쾌한 작품이 탄생했다. 문구는 더 정확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은 2005년부터 발전시킨 아이디어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시 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상상하는 방식을 더욱 까다로우면서 어쩌면 덜 이성적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 작품에는 언제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예술 작품과 모든 물질적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론적 구조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며, 이 텍스트는 나를 나의 추상적 작품과 직접적으로 대립시키는 대표적 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건물이다. 신작과 이 건물은 어떤 관련이 있을지 궁금하다. 둘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나는 이 건물을 아주 좋아하고, 또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남용하지 않는 무언가를 제안하고 싶었다. 나에게 텍스트 작품은 일종의 표지판처럼 기능한다. 가짜 건축물이 아니라, 분명히 건축물에 더한 존재다. 건물은 표지판이 필요하고, 표지판은 건물이 있어야 그 기능을 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작품의 위치 자체가 특별한 도전 과제였다. 이 작품은 하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3개의 창문에 걸쳐 분리돼 있다. 이것이 난관이긴 했지만 사실 난 건물과 아주 가까이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건물에서 오는 ‘합리적 복잡성’을 좋아한다. 복잡한 형태의 건물이라도 모두 합리적인 관계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이는 내 철학과 작품의 한 측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16년 5월부터 9월까지 포르투갈 세할베스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캠페인 전시의 일부분. AC/DC Joy Division House, Absent Model of A Social Centre for Teenagers for Milan 1993(Porto), 2016
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by Filipe Braga, ⓒ Fundacao de Serralves, Porto

당신 작품에서는 ‘텍스트’가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텍스트를 강조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항상 텍스트가 작품보다 먼저 존재하는가?
수년 동안 작품에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피했다. 미국의 개념미술과 분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념미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2000년대 중반까지 나는 이전의 예술과 혼동하거나 이전의 예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텍스트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매우 정확하고 정밀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품은 점점 정신분열증적으로 변해갔고, 텍스트는 내가 만든 추상적 작품과 변증법적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텍스트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다른 작품의 물질적 현실에 도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내가 전시장이나 특정 장소에 텍스트를 배치할 때 그건 언제나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된다. 문자가 오브제에 앞서 존재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직접적으로 대립한다. 내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은 그것이 철저히 모순적이라는 점이고, 관계를 맺는 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지점에 존재할 수도 있다. 텍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작품에서 진실하게 나타날 수 있는 무언가를 향하거나 혹은 멀어지게 한다.

‘If Relationships…’는 이전에 출간한 저서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이 작품은 2005년부터 저술한 책 한 권과 가장 깊이 연결돼 있다. ‘Construction of One’이라는 가제를 붙였고, 어느 북유럽 국가의 버려진 공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 책, 그리고 이 책과 관련된 전시 구조는 공장이 폐쇄되고 노동자들이 생산 활동 이후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행동 양식에 관한 생각을 다룬다. 생산자였던 사람들이 일터로 다시 돌아와서 소비재 생산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첫 번째 과제는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건물 파사드에 더 많은 창문을 만들고, 집으로 걸어갈 때 지나치는 산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간은 등가 경제, 즉 지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1단위를 투입하면 1단위의 결과물이 생산되는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생산 모델을 평가하는 데 쓰였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경제와 사회 모델은 점점 우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바람이 진지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진이 빠진 건 결국 그들 자신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 책이 아마도 예술계에 대한 하나의 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한글 사용을 고려해본 적은 없나? 이전 작품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가?
그걸 고려해보진 않았지만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한글 역시 그래픽적으로 매우 강력한 문자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어로 써야 온전히 임팩트를 낼 수 있다. 작품에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도 있는데, 어떤 아이디어를 새로운 장소에 옮겨놓기 위해서다. 그런 목적을 위해 미국에서 독일어를 사용하거나 영국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구체적인 도전이나 아이디어의 한 방식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매끈한 흐름을 방해하는 그 무엇 말이다.

그동안 많은 공공 예술을 선보였다.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건축의 일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에서 이번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에게 예상하는 반응은 어떤가?
나는 ‘무관심한 관람자’에게 관심이 있다. 예술 작품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은 채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말이다. 작품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것의 시각적 측면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나는 관람객이 지적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을 어떤 암호로 주장하며 주입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예술적 사고방식을 도시의 또 다른 미학적 프로세스에 도입하고 싶다. 예술가의 역할은 특정한 미학적 구조를 드러내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리고 아이디어를 억지로 끌어내는 데 저항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작품은 광고가 아니다. 건축, 구조, 아이디어와 관련된 하나의 표현이다. 내 작품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고 작품의 사용가치를 발견하는 건 사람들의 몫이다.

리엄 길릭이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이스탄불 모던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Hydrodynamica Applied, 2015Photo by Sahir Ugur Eren

2014년 프랑스 그르노블에 있는 국립현대미술센터 르 마가쟁에서 선보인 전시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Blaise Adilon

작년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개최 당시 파리에 ‘The Logical Basis’를 설치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기후변화에 관한 많은 예술 작품이 충분한 생각을 거치지 않은 메타포를 활용한 것에 반해 추상적이고 감정적이기보다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보편 언어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기후변화에 관한 근본적 요소를 찾던 중 수키 마나베(Suki Manabe)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거의 50년 전에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글로벌 기후 모델을 최초로 창안한 과학자다. 나는 1967년 그가 글로벌 기후 모델을 발표한 중요한 논문에서 핵심 방정식 일부를 발췌해 작품의 토대로 사용했다. 각각의 방정식을 담은 밝은 색상의 수많은 대형 패널을 설치했는데, 매우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작품이다. 수학은 보편적 언어고 마나베의 모델 또한 그 자체로 아름답다. 기차역이라는 장소를 복잡하면서도 세련되게 장악한 이 작품은 마나베에 대한 헌사이자 그가 우리에게 선사한 것을 기리는 하나의 방식이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며 현대미술의 역할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예술가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까?
예술은 안정적이면 안 된다. 예술은 우리 모두를 제약하는 인식과 구조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또 변화해야 한다. 예술이 우리 주변 세계에 대응하고 세계를 보고 느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도록 진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예술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예술가들은 모순적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일부는 더 멍청해지고, 일부는 더 똑똑해지는데 이것이 그렇게 나쁜 현상은 아니다. 예술은 항상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맴돌며, 앞으로 더 많은 차이가 생기고 더욱 주관적이 될 것이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올 하반기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싶다.
올 10월 일본 오카야마에서 개막할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또 포르투갈 세할베스 현대미술관에서 1년간 진행해온 전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파리에서도 전시를 열고, 런던에서 라는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현재 살고 있는 뉴욕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당신의 작업실 풍경도 궁금하다. 나는 20여 년째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몇 년만 지나면 유럽보다 뉴욕에서 더 오래 산 셈이니, 뉴욕이 곧 내 집이다. 나는 메가시티를 좋아한다. 거기서는 평화롭게 작업할 수 있다. 절대 별도의 스튜디오를 열지는 않고, 대신 내 아파트의 테이블에서 작업한다. 사실 별로 볼 건 없다. 공책 한 권과 컴퓨터 한 대가 전부다. 매일매일 비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다.

요즘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스크린, 가짜 천장, 새로운 소설 첫 페이지를 읽는 것, 문과 창틀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 내 방 창문에서 촬영하는 것,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 추억 속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
본 기사를 아라리오뮤지엄 애플리케이션 ‘AMA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인이지만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국가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저력을 입증한 작품, ‘How Are You Going to Behave? A kitchen Cat Speaks’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by Liam Gillick

How Are You Going to Behave? A kitchen Cat Speaks, Wood, lamps, Stuffed Cat, Text, Door Blinds, MP3 Player, 2009Courtesy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by Liam Gillick

영국의 이민국 건물에 다양한 컬러의 유리로 캐노피를 설치한 작품, 2002-2005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by Marcus J Leith

리엄 길릭은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 <공감>에 참여했고, 미술관 내 카페에 ‘일련의 의도된 전개’를 설치해 관람객과 소통했다.

 

리엄 길릭
1964년 영국 에일즈베리에서 태어났고,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카셀 도쿠멘타, 베를린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 굵직한 예술 행사에 참가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고, 2002년에는 영국의 저명한 예술상인 터너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주로 건물과 건물, 건물과 주변 환경의 ‘관계’에 주목한 작업을 한다. 현재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 백아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