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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인의 미래를 찾아내는 감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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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 di Milano)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디자인 행사다. 그중 살로네 사텔리테(Salone Satellite) 전시는 만 35세 이하 신진 디자이너가 국제 무대에 데뷔할 수 있는 등용문으로 대중의 지극한 관심을 받아왔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의 국제 언론 및 홍보 디렉터이자 20년 전 살로네 사텔리테를 만든 주인공, 마르바 그리핀 윌시레(Marva Griffin Wilshire)를 봄날의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만났다.

이탈리아 디자인을 한국에 알리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날’ 행사의 연사로 방한한 그리핀은 시종일관 낭창한 목소리로 매 질문마다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날카롭고 강렬한 눈빛은 최근 만난 인물 중 가장 강렬하게 각인될 정도였다. 베네수엘라 태생인 그는 1970년대 초 밀라노행을 결심, 세계적 이탈리아 가구 회사 B&B 이탈리아에서 PR 업무를 담당했다. 콘데나스트 계열의 잡지에 밀라노 통신원으로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가구를 위한 텍스타일 페어인 인콘트리 베네치아(Incontri Venezia)에서 PR을 담당하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주관하는 코스미트(Cosmit)의 CEO 만리오 아르멜리니(Manlio Armellini)의 요청으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합류하게 됐다. 이후 살로네 사텔리테를 만들면서 가구 디자인의 미래를 찾아내는 역할을 맡아 세계 가구 디자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물이 되었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다른 디자인 페어와 어떤 차별점이 있나?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관람해본 적이 있나? 없다면 와봐야 한다. 무조건! 이탈리아에는 르네상스라는 혁신의 역사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거장은 당대의 혁신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이탈리아는 그 창조성을 이어받아 가구를 만들고 있다. 1961년에 시작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지금까지 놀랄 만한 가구를 선보여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발전을 거듭했다. 올해가 56번째 박람회인데 작년만 해도 약 34만 명이 전 세계에서 방문했고 내로라하는 톱 디자이너, 크리에이터가 빠짐없이 밀라노를 찾았다. 기자만 해도 5000명이 넘는다. 스톡홀름이나 쾰른에서 열리는 가구 박람회도 있지만 그 어느 곳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의 거대한 잠재력을 따라올 순 없다.

정말 엄청난 규모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관람객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돌고 변화하면 우리는 변화의 물결에 적응해야 한다. 이 세상과 생은 계속 움직인다. 물건들도 계속 변화를 꾀한다.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의 출현은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디자인에서 변화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 즉 늘 진화할 뿐이다. 혁신과 함께 말이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에게 혁신적 작품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소파, 침대, 옷장,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혁신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품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은 신진 디자이너의 강력한 무기다. 이것이 가구 디자인계의 젊은 피를 수혈하는 살로네 사텔리테를 만든 이유인가?
20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 디자이너의 잠재성을 살피는 역할을 맡은 재단이나 기관은 전무했다. 가구 회사들도 신진 작가에게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갓 졸업한 디자이너들이 이것저것 만들어본 걸 가구 회사에 보내는 게 전부였는데,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곤 했다. “저기, 그리핀 씨,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요.” 나는 PR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런 디자이너의 갈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살로네 사텔리테를 만든 것이다. 첫해에 40여 개국에서 650여 명의 창의력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을 가져왔다. 전 세계의 유망한 디자인학교 18곳도 행사에 동참했다. 이런 모습은 당시 다른 디자인 페어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밀라노에 와보면 안다. 엄청난 수의 가구 회사와 디자이너들이 그곳에 모인다.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고 마지막에는 무엇을 할까? 바로 살로네 사텔리테를 구경하러 온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서 말이다. 거기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면 작가와 제조사가 바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올해 살로네 사텔리테가 탄생 20주년을 맞는다고 들었다.
이번 살로네 사텔리테 주제는 ‘Design is…?’다. 우리를 찾아오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 무엇이냐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디자인은 열린 질문이다. 때로는 우리 모두와 연관이 있고, 때로는 매우 엄격하기도 하다. 물음에 다시금 되묻기보다 새롭게 반응하는 것, 이게 디자인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살로네 사텔리테에 참여하는 신진 디자이너는 그들의 역량을 테스트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세련되고 까다로운 안목을 지닌 관중에게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참여하고, 둘러보면서 그들의 창의성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가득 찬다. 이는 앞으로 디자인을 해나갈 수 있는 양분이 된다. 탄생 20주년을 맞아 두 가지 특별전을 준비했다. 하나는 20년 동안 살로네 사텔리테에 출품한 프로토타입 작품 중 실제 제품화한 것을 선별해 밀라노 공과대학교 베페 피네시(Beppe Finessi) 교수가 큐레이팅한 <살로네 사텔리테, 새로운 창의성의 20년>이다. 또 하나는 전 세계 40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컬렉션 전시다. 순회 전시가 목표인데 한국에도 들르고 싶다.

혹시 요즘 주목할 만한 작가 몇 명을 추천해줄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나는 절대 특정 디자이너의 이름을 언론에 밝히지 않는다(그는 ‘절대’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살로네 사텔리테에 참가하는 모든 작가는 내 기준에서 각자 훌륭한 재능을 지닌 인물이다. 모두 다른 재능이 있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특혜를 줄 순 없다. 만약 그중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연이어 말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살로네 사텔리테에 참가하는 모든 작가가 성공을 이루길 바란다. 그러니 일단 밀라노를 방문해보라. 당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어떤 디자이너가 흥미로운지 당신의 관점으로 파악해보는 게 어떨까.

그렇다면 한국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나는 디자이너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이 필드에서 계속 일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일단 나에게 알려달라고. 왜냐하면 그들을 세상에 노출시킬 수 있는 언론이 그걸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스튜디오 밖으로 나오지도 않지만, 누구는 남이 시키지 않아도 언론에 직접 연락한다. 주요 인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노크하고 자기 작품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PR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디자이너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또한 닥치는 대로 잡지를 읽고 박물관에 가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장소인 한국가구박물관을 찾아 영감을 얻는 것도 좋겠다. 내가 젊은 디자이너라면 여기에서 자신의 문화적 원류를 파악하고 이를 발전시켜 무언가를 만들어보겠다. 그대로 베끼라는 말이 아니다. 시대에 맞게 새롭게 만들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가구를 고르고 사는 것이 유럽에 비해 흔한 일이 아니다. 이들의 관심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까?
잘 구축된 것, 아름다운 것에 매혹되는 사람에겐 디자인의 영역이 중요하지 않다. 디자인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패션이든 가구든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편안한 것을 소유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집 안에 존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바로 가구다. 인터뷰 직전에 한국가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주거 문화와 역사는 남성의 문화라고 들었다. 현대의 한국 남성은 이런 한국 가구의 원류를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겪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외한인 남자들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기사를 써야 하니까!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잡지의 종말을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잡지는 독자에게 정보를 주고 소통하며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저널리즘은 위대한 역사를 다루며 대중에게 이런 문화를 알려야 한다. 당신이 속한 매체는 ‘노블레스’라는 최고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살로네 사텔리테가 낳은 스타 디자이너에게 묻는다
지난 20년간 살로네 사텔리테를 거친 신진 디자이너의 수만 1만여 명. 그중 살로네 사텔리테를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라이징 스타가 되고, 지금은 세계 디자인계에 단단히 자리 잡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중 명실공히 스타 디자이너로 성장한 4명(팀)에게 살로네 사텔리테 데뷔 시절과 행사의 의의, 그리고 마르바 그리핀과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1 살로네 사텔리테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 살로네 사텔리테는 당신의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을 주었나?   3 당신을 비롯한 신진 디자이너에게 살로네 사텔리테는 어떤 의미인가?   4 마르바 그리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마탈리 크라세 Matali Crasset

1 1998년 살로네 사텔리테에 대한 정보를 보고 가구 제조업체 도모앤페레(Domeau & Peres)와 상의한 끝에 내 첫 가구 작품인 ‘짐이 파리에 왔을 때(Quand Jim Monte a Paris)’를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2 살로네 사텔리테에 참여하며 모듈 방식으로 가구를 연구하는 시도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다. 몇몇 사람이 내게 손을 내밀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좋다고 격려해준 게 생각난다. 지금도 종종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로네 사텔리테에서 선보인 작품을 통해 날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내 작품을 찾아보았다고 말하곤 한다.  3 남 앞에서 무언가 작품을 처음 내보이는 건 일종의 모험인데 살로네 사텔리테 전시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간에 형성되는 그 분위기는 환상적이다. 살로네 사텔리테는 신진 디자이너와 그들을 찾는 사람들을 매개하는 현실적 플랫폼이다. 더 나아가 업계의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한다고 본다.  4 마르바는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태양 같은 존재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디자이너의 작업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은 여전히 강렬하더라.

1 Dar HI   2 Reflexcity   3 Ikea PS Light 2017   4 When Jim Comes To Paris

 

그자비에 뤼스트 XAVIER LUST

1 1999년 디자인 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살로네 사텔리테에 대해 알게 됐다. 그때 난 몰드 없이 3차원적으로 금속 표면을 굴절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디자인 세계에 내 작업과 이런 노력을 알리고 싶었다.  2 2000년, 2001년에 잇따라 참가한 살로네 사텔리테는 내가 세계적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시발점이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이런 플랫폼은 아주 새로운 시도였고, 신선한 재능에 관심 있는 업계 리더들의 눈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살로네 사텔리테는 내게 가시적이고 기술적인 성취를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MDF 이탈리아의 브루나 파토리니, 마달레나 데 파도바, 자노타의 마르티노 자노타 등 전시에서 대화를 나눈 사람들과 다시 만나 내 작품을 상품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살로네 사텔리테는 젊은 디자이너가 이탈리아 가구업계와 연을 맺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다. 또한 자신의 작업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믿음만 준다면 굉장한 파트너와 함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4 마르바는 전 세계 어느 가구 디자인 페어에 가든 빠지지 않고 모습을 비친다. 정말 존재감이 강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여러 세대의 디자이너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마르바는 디자이너에게 엄마와도 같은 존재다.

1 Finder   2 Baobab Coat Tree   3 PicNik Table   4 Le Banc   5 Turner Candlesticks

 

프런트 FRONT_소피아 라게르크비스트 SOFIA LAGERKVIST 안나 린드그렌 ANNA LINDGREN

1 살로네 사텔리테에서 처음 전시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우리는 아직 학교에 다니던 중이었고 막 우리끼리 디자인 그룹을 결성한 무렵이었다. 살로네 사텔리테는 개념적 작업부터 실용적이면서 최신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작업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플랫폼 같았다.   2 현장에는 수천 명의 방문객과 언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디자인 언론이 모두 관심을 갖는 자리였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앞으로 컬래버레이션을 함께 할 미래의 파트너들을 다수 만났다. 디자인 커리어의 시작으로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는 말이다. ‘모오이(Moooi)’의 창립자 마르셀 반더스도 거기서 처음 알게 됐다. ‘The Animal Thing’이란 작품을 그와 나중에 상업화했는데, 그중 말 모양의 램프는 우리에게 국제적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 되었다.   3 밀라노에서의 전시는 너무나 황홀했다. 비록 고되긴 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기회를 얻는 건 대단한 경험이었다. 만일 우리가 다시 디자인을 처음 시작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살로네 사텔리테에 당연히 참여할 것이다. 업계의 최전방에서 우리를 내보일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많은 신진 디자이너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4 마르바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바탕으로 멘토와 같은 사람이 되어줬다. 디자인업계에 대한 가이드와 조언은 잊을 수 없다. 살로네 사텔리테에 설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아직도 무척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1 Melt -Tom Dixon crushed by Front   2 Blow Away Vase   3 Hideout Lounge Chair for Gebruder Thonet Vienna   4 Animal Thing   5 Design by Animals

 

넨도 NENDO_사토 오키 OKI SATO

1 2002년 처음으로 밀라노를 방문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보게 됐다. 그 전까지는 살로네 사텔리테에 대해 전혀 정보도 없었고 피에라에서 열리는 전시를 그저 하나씩 돌아보았는데, 살로네 사텔리테를 보자마자 첫눈에 아주 특별한 전시임을 알아챘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디자인을 시작, 그다음 해인 2003년과 2004년에는 참여 작가로 밀라노를 다시 찾았다.   2 살로네 사텔리테에 작품을 발표하자 수많은 기회와 만남이 생겼는데, 특히 줄리오 카펠리니와 마달레나 데 파도바와의 인연은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과 다름없었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의 아버지, 어머니와 다름없다. 동시에 디자인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과 만남의 기저에 깔린 자세 덕분인지 이탈리아 가구 회사와 연을 맺을 때면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라기보다 대가족의 구성원끼리 만나는 느낌이 든다.   3 살로네 사텔리테는 엄청난 에너지와 흥분이 존재하는 특별한 전시였다. 카펠리니와 파도바뿐 아니라 이토 도요, 톰 딕슨, 스테파노 조반노니 같은 엄청난 크리에이터가 내 부스를 찾아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당시 함께 전시한 스웨덴의 디자인 그룹 프런트와 가끔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회상에 잠기곤 한다.   4 마르바는 나를 디자인 세계로 이끌었고 카펠리니는 내가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마르바는 내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1 Streeterior   2 50 Manga Chairs   3 Chocolatexture   4 Cabbage Chair   5 Thin Black Lines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조성재  번역 이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