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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살았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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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세단, 벤틀리 뮬산의 신작을 만나고 왔다.

신형 뮬산의 당당한 자태. 새로 출시된 이 모델은 페이스리프트 버전이다.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더했다.

도착한 인스브루크 공항에는 비가 꽤 내리고 있었다. 우리를 맞으러 나온 건 한 영국 사내였다. 그는 우산을 들고 우리를 공항 게이트 바로 옆에 서 있는 차로 안내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올해 초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한 뮬산 EWB. 뮬산의 휠베이스 길이는 3266mm. 이만해도 충분히 대형 세단이지만, 이 롱 휠베이스 버전은 250mm 더 늘렸다. 벤틀리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뒷좌석’을 자부한다고 얘기한 바로 그 모델이다. 뒷좌석은 그야말로 광활했다. 전동 시트는 앞뒤로 밀고 당길 수 있었고, 충분할 만큼 뒤로 젖혀졌다. 전동식 발받침대가 오랜 비행으로 퉁퉁 부은 다리를 부축했다. 암레스트를 내리자 소형 냉장고 안에 크리스털 샴페인 글라스가 들어 있었다. 앞좌석 헤드레스트에는 10인치 크기의 태블릿이 달려 있었다. 이 태블릿을 통해 음악을 듣거나 조명을 켜는 등 차의 어지간한 기능은 다 조정할 수 있다. 팔걸이 쪽에는 은색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재떨이가 놓여 있다. 문득 궁금했다. 5억 원을 호가하는 차의 뒷좌석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면 어떤 기분일까.

그릴과 헤드램프 디자인의 변화가 돋보인다. 그릴의 폭은 80mm 커졌고,
세로로 내려오는 블레이드를 추가했다. 적응형 LED 라이트는 주행 환경에 따라 도로를 달리 비춘다

리어램프의 디자인도 바뀌었다. ‘B’를 형상화했다.

지독하리만큼 편안한 뒷좌석이었지만 나는 계속 차의 이곳저곳을 탐색하듯 만지작거렸다. 벤틀리는 보는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게 중요한 차다. 가죽과 나무의 촉감,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버튼. 이 모든 건 전부 ‘진짜’다. 가죽이나 나무는 당연하고 작은 금속성 버튼조차 플라스틱으로 흉내만 내는 대신 진짜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한다. 이건 최고급 세단을 만드는 마음가짐이다. 어떤 것도 ‘가짜’를 쓰지 않겠다는. 문득 예전에 인터뷰한 벤틀리 디자이너의 말이 생각났다. “눈을 감고 시트 가죽을 만졌을 때도 그게 벤틀리인지 알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그걸 디자인의 ‘내적 깊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수준에 도달한 건 자동차업계에서 벤틀리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실내에서 풍기는 향기, 아니 냄새였다. 향기라는 표현은 좀 얕게 느껴질 정도다. 깊은 숲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차분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벤틀리는 가죽과 나무를 포함해 모든 소소한 냄새를 하나의 틀로 관리하는 조향사를 따로 둔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관리하는 것, 그것이 브랜드의 철칙이다.
1시간여를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독일 남단에 있는 슐로스 엘마우(Schloss Elmau) 리조트. 이곳은 100년 전에 지은 고성인 슐로스 엘마우, 지난해에 새로 지은 현대적 느낌의 리트리트로 나뉜다. 지난해 6월에 독일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의 개최지가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부킹닷컴 같은 유명 숙박 사이트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 직접 예약만 가능하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이곳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위해 영업한다. 벤틀리가 굳이 이곳을 숙소로 잡은 이유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곧바로 시승이 시작됐다. 처음 탄 건 벤틀리 뮬산의 기본형이다. 이번 뮬산은 풀 체인지가 아닌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외관에서는 디자인의 변화가 느껴진다. 프런트 그릴의 폭이 80mm 커졌고, 격자 그물 모양의 그릴에 세로로 떨어지는 블레이드를 적용했다. 헤드램프는 주행 환경에 따라 도로를 달리 비추는 적응형 LED 램프로, 리어램프도 벤틀리의 ‘B’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멋스럽게 바뀌었다.

신형 뮬산의 실내. 고급스러움을 넘어 사치스러울 정도다.

다음 날 아침 곧바로 시승이 시작됐다. 처음 탄 건 벤틀리 뮬산의 기본형이다. 이번 뮬산은 풀 체인지가 아닌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외관에서는 디자인의 변화가 느껴진다. 프런트 그릴의 폭이 80mm 커졌고, 격자 그물 모양의 그릴에 세로로 떨어지는 블레이드를 적용했다. 헤드램프는 주행 환경에 따라 도로를 달리 비추는 적응형 LED 램프로, 리어램프도 벤틀리의 ‘B’를 형상화한 모양으로 멋스럽게 바뀌었다.
운전석에 앉자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차는 한화로 대략 5억 원부터 시작한다. ‘뮬리너’라 불리는 벤틀리의 개인 맞춤 프로그램으로 여러 옵션을 더하면 가격은 훨씬 올라간다. 긴장감이 없다면 더 이상할 것이다. 뮬산의 센터페시아는 요즘 나오는 차들과 비교하면 꽤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다. 꼭 필요한 버튼이 필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 아날로그적 구성에는 오히려 터치스크린에 모든 걸 집어넣은 요즘 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품격이 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면서 나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렇게 농담을 건넸다. “우리 지금 시승이라기보다 운전기사 체험하는 것 같은데요?”

전면부에 달려 있는 벤틀리의 로고.

롱 휠베이스 버전인 뮬산 EWB의 실내. 공간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전동식 발받침대도 부착돼 있다.

롱 휠베이스 버전인 뮬산 EWB의 실내. 공간은 그야말로 광활하다. 전동식 발받침대도 부착돼 있다.

이 차는 6.75리터 V8 엔진으로 512마력, 최대 104kg·m의 토크를 낸다. 과잉에 가까운 파워지만 차체가 2.6톤에 달하는 걸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는 수치다. 놀라운 건 1750rpm부터 최대토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차량의 가속감은 놀랍다. 울컥거리지도 않고, 힘을 내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다. 운전자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정중하고 부드러운 가속이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km를 넘긴 것을 속도계를 보고서야 알아차렸을 정도다. 초고속 영역에서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고, 그 상황에서 조수석에 앉은 사람과 일상적인 데시벨의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말 놀라운 건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보통 이런 대형차를 타면 전신마취 주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극단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다 보니 운전하고 있다는 감각마저 흐릿해진다. 하지만 뮬산은 달랐다. 안락함은 같지만 스티어링 휠의 반응은 선명했다. 하이엔드 세단을 추구하면서도 스포츠성을 놓지 않는 벤틀리의 특성이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드라이브였다. 참고로 이 큰 차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는 5.3초가 걸린다. 아우디 TT와 같고, BMW Z4보다 0.2초 빠르다.
페이스리프트 버전답게 앞뒤 램프의 디자인 개선 외에도 서스펜션과 시트 쿠션 등 세세한 부분을 조율해 좀 더 쾌적한 주행 환경을 만들었다. 분명한 변화가 있지만 도드라지는 변화는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벤틀리 같은 브랜드는 변화에 굉장히 보수적이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엄청난 공을 들이고, 벤틀리 특유의 우아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결코 놓지 않는다. 디자인의 핵심은 ‘변화’가 아니라 ‘성장’인 것이다. 그래서 벤틀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올드 카’가 아닌 ‘클래식’으로 남는다. 그게 벤틀리 디자인의 핵심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올 때와 같이 뮬산의 뒷좌석에 타고 공항으로 떠났다. 창밖으로 남부 독일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더 이상 이 차의 무언가를 탐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를 비우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쩐지 축복받은 기분이 들었다. 여유와 휴식, 안정감 같은 단어가 몸으로 느껴졌다. 아마 이 차를 타고 다닐 사람들은 늘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제공 | 벤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