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기, 새롭게 보기
'이것 역시 지도'라는 제목 아래 진행 중인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올해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은 레이첼 레이크스. 사진-린춘야오
9월 21일부터 11월 19일까지 열리는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는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라는 제목 아래 디아스포라, 이주, 경계, 언어 같은 기존 개념을 새롭게 보고 읽기 위한 대안적 지도를 자처한다. 그 핵심에는 국제적으로 물리적·문화적 차원의 이주와 이동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오늘날 삶과 한층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이 야기하는 복합적 연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다양한 배경과 국적의 작가들이 서울이라는 도시와 교차하며 보여줄 전시와 프로젝트에는 시각예술가 40명(팀) 외에도 작가, 연구자, 음악가, 안무가 등을 포함해 총 65명(팀)이 참여한다. 이들의 작품은 지리적 영토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을 실천하고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것 역시 지도〉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 부근 서울로미디어캔버스를 비롯해 여의도 SeMA 벙커, 개별 전시 공간 스페이스mm과 소공스페이스까지 총 6개 장소에 펼쳐진다. 이 외에도 서점, 카페, 공공장소 등 협력 공간 열네 곳에서 출판물과 영상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올해 비엔날레 기획을 진두지휘한 레이첼 레이크스(Rachael Rakes)는 지난해 6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역사상 최초로 진행한 예술감독 공모를 통해 뽑혔다. 그동안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시 기획, 저술, 강의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레이크스는 공모 심사에서 “지역성에 기반한 비엔날레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가을 우리의 시지각을 깨울 새로운 지형도는 어떤 모습일지 레이첼 레이크스 예술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위 엘레나 다미아니(Elena Damiani)의 〈달보다 빛나는〉(2016) 스틸 이미지. Courtesy of the Artist
아래 이끼바위쿠르르의 〈땅탑〉(2023) 기록 영상 스틸 이미지. Courtesy of the Artist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큰 틀과 기본 정보는 어느 정도 알려진 만큼, 『아트나우』는 ‘왜?’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3년 서울에서 ‘매핑(mapping)’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매핑을 재평가하는 방향성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 사회 구성 요소, 인프라, 그리고 이들에 종속되거나 재료가 되는 물질적 존재가 무엇이냐에 따라 정치적 경계가 극단적으로 엄격하면서도 압도적으로 다공(多孔)적인 글로벌 시대잖아요. 매핑 혹은 재매핑(re-mapping)보다는 영토에 매이지 않고 세상을 보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다른 목표는 연고 없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거예요. 이주 등의 이유로 땅의 소유권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소속감을 느끼고 ‘자리하는 것’이 가능할지 말이죠. 이런 현실과 공동의 역사적·주관적 조건하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통적 개념의 매핑으로 접근한다면, 이는 결국 반(反)지도에 가까울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새로운 제안’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강조하신 점이 눈에 띕니다. 기존 전시나 비엔날레가 디아스포라, 이주, 탈식민주의 같은 개념을 다루면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해결책을 걱정하기보다는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그리고 항상 음소거 상태인) 시스템과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공정한 삶을 생산하는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또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전면적 제안을 하는 국제 미술계의 경향을 경계합니다. 이는 잘못된 자아와 책임감의 발로입니다. 예술은 세상을 변화시키죠. 하지만 단번에 휩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작은 제스처를 통해 이뤄집니다.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의 〈신세계 지도〉(2012). Courtesy of the Artist and Buenos Aires Barro, Photo by Mariano Costa Peuser
사실 ‘미디어’라는 용어는 상당히 광범위한 의미로 활용될 수 있죠.
저는 매체(media)와 매개(mediation)를 결합하는 데 관심이 있고, 문어나 구어 외에도 예술이 소통하는 모든 방식을 생각합니다. 요즘 예술가는 한 매체만 고집하지 않고 재료와 전달 방식을 융합해 소통하는 경향이 있죠. 미디어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지 정의하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다양한 형식과 도구를 배치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미디어시티’를 하나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시대, 테크놀로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 혹은 그래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하고 흥미롭습니다.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65명(팀)을 선정한 기준도 궁금합니다. 그중 특히 주목해야 할 작가가 있을까요?
협력 큐레이터 소피아 듀론(Sofía Dourron), 비엔날레 팀과 함께 다양한 역사와 관점을 한 공간에 아우르고, 미디어와 디지털 시간 기반 작품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난 국제적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출품작은 텍스타일, 코딩, 조각, 회화, 설치, 월페이퍼, 비디오, 사운드 작품으로 구성합니다. 그중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몇 명을 언급하고 싶네요. 뉴욕에서 활동하는 토크와세 다이슨(Torkwase Dyson)은 대규모 조각과 드로잉 기반의 설치 작품을 선보입니다. 남아프리카 출신 작가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Nolan Oswald Dennis)는 3D 프린팅으로 과도하게 채굴한 남아프리카산 보석의 복제품을 제작하고요. 데니스의 작품처럼 비엔날레 출품작 다수가 광물 혹은 생태적 추출 같은 비인간의 이동을 다뤄요. 이주, 언어, 디아스포라에 대한 조금 더 전체론적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마지막으로, 오래된 지도책과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자신의 기존 작품을 ‘업데이트’하는 아르헨티나 작가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Agustina Woodgate)를 꼽겠습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포스터.
대중에게는 여전히 미디어 아트를 포함한 동시대 미술이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이번 비엔날레를 즐길 수 있도록 조언해주세요.
정치적이거나 지적인 내용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올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작업과 전반적 분위기는 맥시멀리즘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색상, 크고 작은 스케일, 음악, 촉감, 비영토적 매핑 아이디어에 다양하게 접근했어요. 시각 패턴, 퍼포먼스, 인터랙티브 조각, 비디오나 VR 설치 혹은 작품, 워크숍, 출판물에 담긴 농담이나 장난기 넘치는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관람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편안하게 참여하면 좋겠어요. 저는 참여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이동, 도시, 땅, 국경, 커뮤니티, 이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또는 본능적 반응에 따라 눈앞의 작품을 마주하길 바라요. 혹은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접근해도 좋습니다.
에디터 백아영(summer@noblesse.com)
글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