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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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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가 7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 같은 세월을 지나 다시 돌아온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라운드 니트와 팬츠 Lanvin by Koon, 브레이슬릿과 링 Josslyn, 시계 Hublot, 슈즈 Q by Pasquale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가 이제 막 종영했다. 오늘이 쫑파티 날이다.(웃음) 그간 다들 고생했으니 회포 좀 풀어야지.

 

7년 만의 컴백이었다. 낯설었을 것 같다. 워낙 많은 게 바뀌었으니까.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서 감독에게 미리 부탁한 게 있다. ‘내가 나이 많다고 어려워하지 마라. 연기가 아니다 싶을 때는 꼭 가감 없이 얘기해달라’고 했다. 배우들이 자기 세계에 빠지면 큰 흐름에서 비껴가기 쉽다. 다행히 모완일 감독이 많은 도움을 줬다.

 

출연진 중 당신이 가장 고참이었다. 촬영장에서 제일 웃 어른이 된 건 처음이었을까? 처음이다. 뒤늦게 합류한 이재룡도 내 동기라.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다. 내가 막내일 때는 선배들이 너무 무서워서 늘 도망가기 바빴는데.(웃음) 후배들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했다. 후배들이 제대로 놀아야 드라마가 살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연결 고리 같은 역할이었으니까, 그걸 잘하려고 노력했다.

 

조연이었지만 존재감은 강렬했다. 하긴 어떤 작품에서도 늘 그랬다.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작가와 감독이 멋진 역할을 준 덕분이다.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1986년에 데뷔했으니 올해가 벌써 데뷔 30주년이다.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 큰 감회가 있기보다는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 태어난 것 같다. 뭐랄까, 인생의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떻게? 세속적인 명예나 부가 아니라 영적인 목표가 생겼다. 지난 2006년부터 기독교에 귀의했고, 거기서 내 삶이 바뀌었다. 이제야 진정한 안식을 얻었다.

 

2006년은 당신이 직접 뮤지컬 <해어화>를 제작하고 또 흥행에 실패한 해였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됐을까? 어느 정도는 맞다. 뮤지컬 시장이 지금처럼 커질 것을 예상했고, 초석을 다져놓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수익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투자자들을 충분히 설득했는데, 그들이 기다리지 못했다. 그때쯤 여러 가지 시련이 동시에 몰려왔다. 술 없이는 못 살 정도로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을 때 종교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종교와 공백기 사이에 관련이 있었나? 영적 체험을 한 이후 쉽게 작품을 할 수 없었다. 알다시피 나는 악역을 많이 맡았다. 쉬는 동안 들어온 작품도 유독 잔인하거나 악랄한 역할이 많았는데, 그게 맘에 걸렸다. 단순히 악역이어서가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굳이 안 죽여도 되는데 죽이고, 안 싸워도 되는데 싸우고. 최소한의 인과가 없는 작품은 내가 못한다.

 

허준호라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도 작용했을까? 그렇다. 배우는 흰 도화지 같아야 하는데 나에게는 이미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그래서 감히 나서지 못한 것도 있다. 배우는 감독과 작가가 색을 칠해줘야 하는 존재인데 그때는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뷰티풀 마인드>는 어떤 점에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나? 한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런 드라마가 있는데, 감독이 허준호라는 배우를 꼭 원한다고. 거기서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시놉시스를 봤는데 심지어 내가 의사더라.(웃음) 병원에 실려가는 역할은 많이 했지만 의사 역할은 처음이었다.

 

감독은 왜 당신을 그렇게 원했다고 하던가? 오늘 쫑파티에서 물어보려고 한다.(웃음) 그동안 궁금했지만 부담 줄 것 같아서 굳이 묻지 않았다.

 

<뷰티풀 마인드>는 좋은 드라마였지만 결국 조기 종영됐다. 낯선 결과였겠다. 조기 종영은 예전에도 꽤 있었다. 다만 그때는 정말 작품이 안 좋으면 시청률이 낮았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그게 아니니까. 시청률 면에서 실패한 건 맞지만 작품성은 충분히 인정받았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만족한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었다.

 

 

베이지 터틀넥 니트 Jil Sander

당신을 생각하면 늘 퍼그 같은 주름이 떠올랐다. 지금도 말할 때마다 얼굴의 주름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보톡스 광고 찍자는 제안을 꽤 많이 받았다.(웃음) 그런데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인공적인 건 질색이니까. 사실 얼마 전에 거울을 보는데 목살이 꽤 처졌길래 잠깐 걱정하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 나이가 벌써 쉰이 넘었는데. 그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거다. 주름은 살아온 세월에 대한 훈장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컴백하고 보니 한 번쯤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나 작가는 없던가? 지난 30년 동안 내 입으로 ‘이 작품 하고 싶다’, ‘누구와 작업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 없다. 배우는 자신을 원하는 감독과 작가에게 불려다녀야 한다. 그게 배우의 자존심이다.

 

그런 기질 때문일까, 당신에게는 무용담이 꽤 많다. 독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그의 펜을 뺏어 들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은 일화는 여전히 회자되곤 한다. 쑥스러운 얘기다. 뮤지컬 <갬블러>의 일본 순회공연 당시였다. 인터뷰 전에 독도 관련 질문은 하지 말자고 합의했는데 그 기자가 굳이 그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다.

 

일본 공연을 앞둔 입장에서는 참았어야 하지 않나? 울컥하는 기분에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거기서 희미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난 한국인인데.

 

당신 세대의 스타들에게는 그런 멋진 충동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스타들은 너무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인다. 뭘 해도 너무 조심스럽다. 가끔 사고도 치고 객기도 부리던 예전 스타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좀 잘못해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요즘 젊은 스타들을 이해한다. 모두가 날 찍고 감시하고 있는데 당연히 위축되지 않겠나. 그래서 나도 사생활은 절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아, 그 부분을 묻고 싶었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위해서인가? 아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다. 내 발언으로 다치는 사람이 생기는 걸 원치 않는다. 물론 난 떳떳하게 살아왔고, 당장이라도 해명하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만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당신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배우다. 드라마도 끝났으니, 아마 많은 제작자가 당신에게 러브콜을 보낼 것 같다. 이미 몇 건의 제의를 받긴 했다. 아직 결정된 건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한 곳이라면, 그리고 작품만 좋다면 얼마든지.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 김지원  스타일링 |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