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에서 만나는 한국 미술
올겨울, 미국 여행을 간다면 K-아트 투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이클 주의 작품이 설치된 필라델피아미술관 전시장 전경. 안쪽으로 이수경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세계 미술 시장의 파워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미국에서 동시에 다양한 한국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어 반갑다. 더군다나 필라델피아 미술관, 스미스소미언 국립아시아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샌디에이고 미술관 등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한국 미술 기획 전시를 볼 수 있다니, 새삼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전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의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이다. 우현수 부관장과 엘리자베스 애그로 낸시 M. 맥닐 큐레이터의 공동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미국에서 기획한 대형 한국 현대미술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플레인 뷰티, 한국 백색 도자와 구본창의 사진〉(2010), 〈한국에서 온 보물, 조선의 예술과 문화〉(2014), 〈백남준과 존 고드프리〉(2022) 등 한국 관련 전시를 개최하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지금을 알 수 있는 전시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미술관에서 만난 우현수 부관장은 88 서울 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이후 한국 미술이 어떻게 매력적으로 발전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운 전시라고 설명했다. 서도호, 신미경, 함경아, 정연두 등 한국 작가 28명의 작품이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전에선 196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출생해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지나온 작가들의 사회 비판적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28인의 작가는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한 세대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작업은 대부분 긴장과 불안, 추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의 부조화를 보여줍니다.”
한국 문화가 요즘처럼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은 문화 상품 수출을 통해 국제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또한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에서 비롯했기에 이 전시는 여러모로 의미 깊다. 지금 가요와 드라마, 화장품과 한식이 세계를 휩쓰는 것과 이 전시 제목에서 언급한 ‘1989년’이라는 연도가 일맥상통해 더욱 흥미롭다. 작가 28인의 작품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이 많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서도호 작가의 15m짜리 대형 실크 오간자 작품은 미술관의 포토 스폿이다. 유학을 거쳐 유럽에서 작업하고 있는 서도호 작가는 자신이 성장한 서울 집을 모티브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천장에서 드리운 작품은 몇 점뿐이다. 작품 제목은 전시하는 곳의 지명을 계속 넣어 명명하는 형식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신미경 작가는 뉴트로지나 브랜드의 후원을 받아 대형 비누 조각 3점을 만들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ㄷ자 모양 건축물로 오른편에는 조각 작품을 설치한 반면, 반대편에는 조각 작품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신미경 작가는 비누 조각을 만들어 야외에 설치했다. 비누의 노화는 돌과 달리 인간과 비슷한 시간으로 흘러가기에 야외에서 해와 바람에 따라 변하는 조각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마이클 주의 작품이 설치된 필라델피아미술관 전시장 전경. 안쪽으로 이수경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포토스팟은 서도호 작가의 대형 설치 작품이다.
한국계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주와 바이런 킴의 작품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이클 주는 부처의 몸에 귀여운 캐릭터의 작은 얼굴을 결합해 코리안-아메리칸의 문화적 충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바이런 킴은 1991년부터 이어온 패널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가 만난 사람의 피부와 같은 색의 물감을 만들어 패널에 채색한 작품으로 총 560점이며, 요즘도 여전히 제작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320점의 작품이 걸렸다. 이 연작은 앞으로 만들 것까지 모두 워싱턴DC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소장품이다. 유의정, 주세균, 여선구, 김계옥, 윤상희 등 한국적 공예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의 작품을 여러 점 선보인다는 것도 2024년 2월 11일까지 이어질 이 전시의 특징이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The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sian Art)에서는 박찬경 작가의 개인전 〈박찬경: 모임(Park Chan-kyong: Gathering)〉이 열린다. 이 전시는 미국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현대미술가의 첫 개인전으로,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문을 연 근현대 갤러리(National Museum of Asian Art의 Modern and Contemporary Galleries)전시장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전시다.
전시 제목 ‘모임’은 2019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박찬경의 MMCA 현대차 시리즈 개인전과 같다. 당시 전시는 한국 미술과 재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기계를 통한 구원, 코믹한 제의, 유치한 기복에 담긴 숭고, 재난을 능가하는 자연미 같은 아이러니의 언어를 택하고, 이를 통해 희박해지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 어떻게 새로운 출처를 찾을 수 있을지 살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 전시 역시 그는 민속적 전통, 시사와 더불어 예술사적·문학적 참고 자료를 엮고, 급속한 사회경제적 발전과 냉전이 한국 정치와 사회에 미친 지속적 영향에 근거해 시각적으로 강력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이폰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밤낚시(Night Fishing)〉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공동 연출한 작품으로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이 전시는 체이스 F. 로빈슨(Chase F. Robinson) 관장과 함께 캐럴 허(Carol Huh)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2024년 초에는 개관 100주년을 기념해 서도호의 커미션 작품 ‘공공 인물(Public Figures)’을 프리어 갤러리(Freer Gallery of Art) 전시장 앞에 설치할 예정이다. 1923년 개관한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은 한국 미술 전시를 종종 개최했고, 800여 점의 한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2014년 10월 13일까지.
한편, 뉴욕에서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국 미술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이 두 미술관은 뉴요커는 물론 뉴욕을 찾는 이들의 필수 방문 코스이기에 더욱 반갑다. 11월 7일 시작해 2024년 10월 20일까지 이어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의 〈리니지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 미술(Lineages: Korean Art at The Met)〉은 한국

스미소니언국립아시아 미술관에서는 박찬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박찬경, Citizen’s Forest, 3-channel video Courtesy of the artist, 2016 Courtesy of the Artis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미술전시관 개관 25주년 기념전에서는 30여 점의 한국 작품을 만날 수 있다. Kwon Young-woo, Untitled, Ink and gouache on Korean paper, 88 3/16×66 15/16 in.(224×170 cm), 1984, Leeum Museum of Art ©Leeum Museum of Art
미술전시관 개관 25주년 기념전이다. 12세기부터 2023년에 이르는 30여 점의 한국 작품을 선보이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소장한 작품과 대여한 작품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는 선, 사물, 장소, 사람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통해 굵직한 한국 예술사를 다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서세옥 작가의 수묵화를 시작으로 전시가 펼쳐진다. 권영우, 김환기, 바이런 킴, 백남순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전시 기간에 네 차례 작품 교체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수집한 첫 한국 예술품은 악기 8점으로, 1889년 크로스비 브라운(Crosby Brown) 컬렉션 기증품 중 일부였다.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에서는 〈한국 실험 미술 1960~19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전이 열리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연간 65만 명이 방문하는 뉴욕의 명소이기에 우리나라 미술 거장의 작품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미술관 밖에서 펄럭이는 광고 깃발은 성능경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 작품이며 이건용, 하종현, 김구림, 정강자, 이승택 등의 작품이 매력적이다. 단색화에 이어 강력한 미술 사조로 칭송받는 아방가르드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전시로 2024년 1월 7일까지 열린다.
다음은 미국 서부 쪽으로 이동해보자. 애리조나 크리에이티브 사진센터와 샌디에이고 미술관, 덴버 미술관에서도 한국 미술 전시가 열린다.
애리조나 투손의 사진 전문 기관 크리에이티브 사진센터(Center for Creative Photography, CCP)에서는 11월 18일부터 2024년 1월 27일까지 〈기록과 경이: 한국 현대사진(Wonders and Witness: Contemporary Photography from Korea)〉전이 이어진다. CCP에서 처음 선보이는 한국 사진 전시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권도연, 김미현, 김승구, 김옥선, 김태동, 니키 리, 박진영, 방병상, 오형근, 이선민, 윤정미, 정주하 등 사진작가 12인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낯선 도시를 걷다(Walking around a Strange City)’, ‘단지 가족의 문제는 아닌(Not Just Family Matters)’, ‘더 나은 날들(Better Days)’ 3부로 구성했다. 한국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변화를 도시화, 가족 문제, 개인과 집단, 정체성 등과 교차시킨 사진전이다.

최근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한국 실험 미술 1960~19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전시 관련 아방가르드 작가 성능경의 퍼포먼스가 열려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최근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한국 실험 미술 1960~19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전시 관련 아방가르드 작가 성능경의 퍼포먼스가 열려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 SDMA)의 〈생의 찬미(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는 이 미술관 최초의 한국 미술 기획전이다. 전통 회화가 한국인의 삶과 현대 아티스트에게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19세기 전통 회화 작품을 비롯해 동시대 작품까지, 총 34명의 작품 50여 점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김종학, 박생광, 오윤, 이응노 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부터 영상과 설치 등을 통해 전통 회화의 역할을 재해석한 김상돈, 김혜경, 성파 스님에 이르기까지 채색화의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을 것. 2024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덴버 미술관(Denver Art Museum, DAM)에서는 〈완벽하게 불완전한: 한국 분청사기(Perfectly Imperfect: Korean Buncheong Ceramics)〉전이 12월 3일 개막한다.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 한국 고유의 예술 형태로 자리 잡은 분청사기는 한국 근·현대미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유희적이면서 세련됐다. 15세기 분청사기부터 21세기 그림까지 7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 전시는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 기획했으며, 구겐하임 전시와 애리조나 CCP, 샌디에이고 미술관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 미술 시장은 전 세계 매출의 1%도 안 되는 작은 규모지만, 이처럼 일시에 미국 대륙을 점령하고 있으니 놀랍다. 2024년에는 K-아트의 새로운 비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