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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Tomorrow

ARTNOW

손을 강조한 영화 같은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터 플랙바스.

두아르트 스퀘이라 서울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미술가 카터 플랙바스.
카터 플랙바스 주인공의 손, 공간, 빛 그리고 사물의 일루전과 자각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는 미국 작가. MZ세대 컬렉터에게 인기 있는 젊은 작가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지각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페인팅의 환영적 특성에 주목한다. 그림의 환영적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상기시킨다. 플랙바스의 작품에서 손의 형상은 종종 회화에 힘을 불어넣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번 전시 제목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스래셔빌(Thrasherville)은 고향이자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애틀랜타의 한 지역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스래셔빌’이라고 명명한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누아르 영화의 제목 같은 느낌을 관람객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지역의 옛 이름을 붙임으로써 작가로서 정체성도 반영했습니다. 그곳에서 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림에 자전적 내용을 담으면서도 영화나 만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를 의도한 것인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림 속 어떤 인테리어는 내 방과 동일합니다. 고양이도 실제 내 고양이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누아르 영화의 주연 배우처럼 개인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나는 주로 책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는데, 그걸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이 우리 현실로 들어올 때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서 그립니다. 그림 속 인물은 내 모습과 다르지만, 내 이야기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담고 있기에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느끼는 감정이나 긴장감은 나와 같습니다. ‘메인 캐릭터 신드롬’에 관심이 많은데, 이는 SNS가 발달하면서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를 자신의 삶처럼 여기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에서 연유합니다. 현실과 드라마의 간극이 줄어들고 있는 거죠. 나와 같은 MZ세대는 현상이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공존하는 사회를 바라지 않아요. 그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이미지를 과도하게 생각(over narrative-rising)하며, 자기 삶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비판하기보다는, 이런 것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재미있게 반영하는 중입니다.
누아르 영화를 영감의 원천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유러피언 화가였다면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겠지만, 나는 미국 작가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로 레퍼런스를 찾습니다. 누아르 영화에서 구도를 통한 감정의 전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처럼 상황과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작업을 성숙하게 하고, 앞으로 작업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됩니다. 시각언어의 발달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카터 플랙바스의 작품은 입체감이 느껴져 얼핏 콜라주로 보이지만 아크릴물감의 두께를 달리한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 섬세한 질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TWLT, Acrylic on Canvas, 60x50cm, 2023

카터 플랙바스의 작품은 입체감이 느껴져 얼핏 콜라주로 보이지만 아크릴물감의 두께를 달리한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 섬세한 질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당신은 손이 돋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상세히 설명해주세요.
뒤러는 손을 특히 멋지게 그린 작가입니다. 옷깃을 잡은 손에서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섬세한 표현에 감탄하게 됩니다. 중세에는 초상화를 미술가에게 의뢰할 때 손까지 그리면 비용이 한층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만큼 손을 제대로 그리는 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일이고, 얼굴보다 손이 작가의 실력을 보여주는 척도였다고 합니다. 더불어 손에 작품의 주제와 작가의 정체성을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화풍이 유행했는데, 나는 반대로 미술의 전통적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이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도 있어요. 내 그림은 볼록렌즈(fish eye perspective) 같은 느낌을 줍니다. 손을 강조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캔버스에 담으려다 보니 배경이 볼록렌즈처럼 굴절되어 보이게 된 것입니다. 작품의 손에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손은 내 그림의 원동력이자 주체지요. 이는 곧 나의 감정과도 연계됩니다. 손을 강조해 인물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작품 속 여러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손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관람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기보다는,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과거에는 앱의 지시를 통해 꽃 그림을 그렸고, 이를 ‘자화상’이라고 명명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최근 시리즈는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하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예전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지시에 따라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내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좋아서 그 그림에 ‘자화상’이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최근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 속 남녀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이미지입니다. 영화나 책 등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3D 컴퓨터 프로그램에 돌려서 조각처럼 만들고, 이를 보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여러 이미지를 보다 보면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데, 그 위에 드로잉을 하고 발전시키지요. 때로는 이미지를 출력해 그 위에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 컴퓨터 화면을 보며 드로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림을 그립니다. 캔버스에 곧장 스케치하지 않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 작품의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에서 3차원 스케치를 구성해보며 작품 속 빛과 그림자, 손을 강조했을 때의 구도 등을 미리 고민하죠. 오래전부터 페르메이르 같은 화가는 카메라옵스큐라를 이용해 스케치 단계에서 이미 구도와 빛의 정확성을 추구했습니다. 특히 내 그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의 큰 손은 상상에 의존해 그리면 지나치게 왜곡되거나 실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도한 대로 정확하게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스케치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물감이 두꺼운 부분은 마스킹테이프를 라인에 붙여 그려서 물감이 얕은 부분과 차이를 두는데, 많은 이들이 다른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로 오해하곤 합니다.
지난해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리처드 헬러 갤러리(Richard Heller Gallery)와 서배너 SCAD 미술관(SCAD Museum of Art)에서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지난 전시와 이번 서울 전시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메인 캐릭터 신드롬에서 영감을 받은 약간 과장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선보인 것은 공통점입니다. 어떤 의미나 감정을 인물에 투영해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작업이 발전될수록 캔버스의 주인공과 내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리처드 헬러 갤러리 전시는 내가 이 시리즈를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고, 이번 서울 전시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전시도 이번 전시와 내러티브는 비슷하지만, 개인적 이야기를 많이 담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 싶어졌습니다.

SNST, Acrylic on Canvas, 137x205cm, 2023

SNST, Acrylic on Canvas, 137x205cm, 2023

GLDNHR, Acrylic on Canvas 60x50cm, 2023

NGHT1, Acrylic on canvas, 182x152cm, 2023

SNDY, Acrylic on canvas, 152x127cm, 2023

전시가 열리고 있는 도산공원 앞 두아르트 스퀘이라 서울 갤러리 전경.

그림 제목인 대문자 약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제목 형식과 비슷합니다. 제목을 통해 관람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만든 약자로 간략하게 제목을 붙였어요. 프랜시스 베이컨도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고 싶어 ‘교황에 대한 연구’ 같은 식으로 그림을 명명했습니다. 제목에 연연하지 말고, 객관적이지만 신선한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젊은 작가지만 미술관과 컬렉터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받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들이 내 작품에서 사랑과 열정을 느끼는 겁니다. 그들은 아마도 내 그림에서 어떤 요소를 발견할 수 있어 관심을 보이는 것이겠지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영감의 원천이라기보다는 즐거움입니다. 작가는 혼자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발전해야 하니까요.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이 그림 속 어디에 있는가?”라고 자주 되묻는다는 이야기를 과거 한 인터뷰 기사에서 봤어요. 요즘에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지 궁금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문화는 돌고 도는데, 과거를 현재로 바꾸는 것과 같이 여러 타임 프레임을 모으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화의 순환이 탐구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애틀랜타의 하이 미술관에는 전시실 두 곳에 르네상스와 중세 미술이 각각 전시되어 있습니다. 중세 전시실의 베드로는 외계인같이 낯설게 그려져 있고, 르네상스 전시실의 베드로는 사람의 형상입니다. 성모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죠. 중세의 마리아는 보수적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마리아는 아름답습니다. 100년의 시간차를 두고 이렇게 달라진 그림을 보니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그림의 이미지는 어떤지, 내일의 그림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습이 예술로 발화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비주얼의 힘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시대마다 풍습이 다른데 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누구에게 이를 규정할 자격이 있는가 같은 생각 말입니다. 과거에는 글보다 이미지가 중요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내일의 예술에 어떻게 연결될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캔버스 속 빛과 구도에 관심이 많아 계속 공부하는 중입니다. 한계와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계속 탐구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화가들의 화가’가 되고자 합니다. 개념 작가로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컬러와 소재의 사용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작품 자체로 존경받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에디터 이소영(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두아르트스퀘이라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