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이야기
솔직해서 더 흥미로운 소설가의 수필집 세 권.

누군가를 좋아하면 속속들이 알고 싶어진다. 마음에 드는 소설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섭렵하거나 에세이 등 각종 산문을 찾아 읽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수필은 작가의 문학 세계 깊은 곳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한다. 작가의 일상과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그런 소설을 쓴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것. 소설에서 꺼내지 못한 자잘한 이야기가 되레 재미있기도 하다. 마침 이름만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는 작가들이 각자의 수필집으로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하얼빈> 등의 소설을 쓴 김훈은 유려하고도 간결한 문체의 수필로도 유명하다. <허송세월>은 그가 겪은 일을 담담히 써 내려간 수필집이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 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라는 서문의 강렬한 첫 문장부터 ‘김훈다움’이 느껴진다. 1부 ‘새를 기다리며’에서는 그의 현재가 엿보인다. 골병든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떤 것인지 자조하고, 몸이 사그라들어 뼛가루가 되기 전 어떤 유언을 남길지 고심하는 식. 생로병사의 무거움을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 버텨내는 중생의 고단함을 곱씹는다. 2부 ‘글과 밥’에서는 밥벌이하며 지지고 볶는 일상을 이야기하더니, 3부 ‘푸르른 날들’에서는 난세를 살았거나 살고 있는 이에게 시선을 돌린다. 대로변의 투명 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 철모를 남기고 간 옛 병사를 향한 헌사로 끝맺는 이 책은 김훈 수필 특유의 ‘생활의 정서’에 완연한 노년기에 접어든 작가의 사유가 더해져 어머니의 된장찌개 같은 구수한 맛이 난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근대문학 작가 중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일 것이다. <만년>, <사양>, <인간 실격> 등 작품을 둘러싼 비상한 관심에 비해 그의 참모습을 살필 수 있는 수필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편. 그래서 <마음의 왕자> 출간이 반갑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33년부터 스스로 생을 마감한 1948년까지 톺아볼 수 있도록 결정적 작품만을 연대별로 엄선해 수록한 수필집이다. 작가의 섬세한 내적 풍경을 아포리즘 형식으로 보여주는 ‘생각하는 갈대 1~3’, 자신의 작품을 혹평한 선배 작가에게 보내는 사나운 응답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어릿광대의 슬픈 미소 같은 인생관을 확인할 수 있는 ‘답안 낙제’와 ‘나의 반생을 이야기하다’, 우울의 수렁 속에서도 천상의 순수한 빛을 동경하라고 일러주는 ‘마음의 왕자’까지.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주자로서가 아닌, 생활과 문학에 혼신을 다하는 인간 다자이 오사무의 맨얼굴이 보인다. 그의 주요 작품을 우리말로 소개해온 유숙자 번역가가 작가 고유의 호흡과 리듬을 빈틈없이 살려서 옮겨 더욱 생생하고 진솔하다.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럭> 등으로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에 대하여>는 한층 경쾌한 느낌이다. 수수께끼 같은 꿈의 세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낸 작가의 젊은 시절 에세이다. 그녀의 소설에는 꿈이 자주 등장한다. 죽어버린 그리운 친구와 꿈에서 만나 현실처럼 대화를 나누는 ‘하얀 강 밤배’, 꿈속에 나온 가게를 현실에서 찾아내는 ‘서커스 나이트’, 엄마를 잃은 아이가 중요한 장소에서 다시 엄마를 잃는 꿈에 시달리는 ‘새들’ 등. 작가에게 꿈은 현실과 끈이 이어진 예감, 메시지, 정서, 직감이 응축된 무언가이며, 그런 의미에서 <꿈에 대하여>에는 바나나 문학의 근간이 되는 생각의 뿌리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팬이라면 깜짝 선물 같은 작품일 테고, 팬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직관을 열어두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태도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