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CE OF ART, PINAULT COLLECTION
프랑수아 피노 회장의 세계적 아트 컬렉션 ‘피노 컬렉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하여.
어떤 컬렉션은 시대를 대변한다. 지극히 사적인 취향의 집합인 ‘수집’이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 막대한 자본과 어우러질 때 컬렉션은 개인을 넘어 업계를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힘을 품는다. 엄청난 유산을 바탕으로 아트 컬렉팅에 열성을 다한 페기 구겐하임은 현대미술의 주요 무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영국에서 광고 회사 사치 & 사치를 설립해 크게 성공시킨 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국의 신진 작가를 적극 후원한 찰스 사치 덕분에 데이미언 허스트, 사라 루카스, 마크 퀸 같은 스타 작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아트 신에서 슈퍼 컬렉터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다. 이 같은 맥락에서 동시대 아트 신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개인 컬렉션을 생각할 때 주저 없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피노 컬렉션이다.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맥퀸, 부쉐론, 포멜라토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어링 그룹 설립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회장의 아트 컬렉션으로, 그가 50년 이상 수집해온 1만 점 이상의 현대미술품이 포함되어 있다. 1970년대 초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폴 세뤼지에의 그림 ‘Cour de ferme en Bretagne’를 구입하며 아트 컬렉팅을 시작한 그는 나비파와 큐비즘,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에 빠져들었고, 이후 추상화, 미니멀리즘을 거쳐 현대미술의 다채로운 흐름까지 관심을 확장했다. 그의 이런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피노 컬렉션은 회화, 조각, 비디오,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른다. 한편 예술이 전하는 호기심과 강렬한 영감에 매료되어 컬렉팅을 시작한 만큼 피노 회장은 아티스트와 긴밀하고 깊은 관계를 통해 작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문에 컬렉션에는 널리 알려진 거장부터 젊은 신예 작가까지 폭넓은 예술가의 작품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피노 컬렉션의 특별함은 단순히 개인의 즐거움을 넘어 공들여 수집한 예술 작품을 많은 이와 나누려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감정을 일깨우는 작품을 컬렉팅하고, 이것을 많은 이와 공유하고자 하는 피노 회장의 열망은 세 곳의 전시 공간에서 구현되고 있다. 베네치아의 그랜드 운하에 위치한 18세기 궁전을 개조한 팔라초 그라시, 17세기 세관 건물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푼타 델라 도가나, 그리고 18세기 곡물 거래소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가 그것이다. “예술이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과 우리가 던지는 질문을 대중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가 시작한 문화 프로젝트의 본질입니다.” 피노 회장의 말이다.
피노 컬렉션의 주요 작품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9월 4일부터 11월 23일까지 송은에서 개최되는 <컬렉션의 초상: 피노 컬렉션의 주요 작업들(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이다. 2011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국내 최초로 피노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13년 만에 마련된 자리로, 2021년 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전 <우베르튀르(Ouverture)>를 모티브로 준비했다. 마를렌 뒤마, 뤼크 튀망, 피터 도이그, 플로리안 크레버, 세르 세르파스 같은 작가들의 걸작이 기다리고 있다. 파리 문화 예술 공간 프락 일 드 프랑스의 르 플라토에서 예술감독을 지냈고,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 피에르 위그 등의 작가와 공공 공간에서 대규모 예술 협업을 이끌었으며, 2008년부터 피노 컬렉션과 함께해온 수석 큐레이터 카롤린 부르주아에게 컬렉션의 의미와 본질, 이번 한국 전시의 특징 등에 대해 물었다.
13년 만에 한국에서 피노 컬렉션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헤어초크 앤 드 뫼롱이 설계한 송은의 새로운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송은 예술감독 로렌시나 화란트-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녀가 제시한 관대함과 비전이 이번 한국 전시를 구상하는 데 훌륭한 맥락이 되었습니다. 9월 초 프리즈 서울, 부산 및 광주 비엔날레 등 여러 중요한 아트 이벤트가 열리는 시기에 전시를 개최하게 되어 기대가 크고요. 한국은 부르스 드 코메르스 방문객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나라라 이토록 열정적인 관람객을 가까이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1만 점에 달하는 피노 컬렉션 중 한국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목표는 컬렉션의 주요 관심사를 두루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피노 컬렉션은 오랫동안 젊은 신진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왔어요. 작품을 수집할 때 가능한 한 직접 보길 원하고, 예술가와의 만남을 중시하는 프랑수아 피노의 철학이 반영된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더불어 회화, 조각, 설치미술, 비디오,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컬렉션의 특징이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최근 컬렉션에 추가된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폴 타부레와 세르 세르파스를 언급하고 싶네요. 매우 젊은 작가들인 데다 모두 회화로 대표되지만 좀 더 도전적 형식의 작업도 진행합니다. 이들은 예술사뿐 아니라 음악, 영화,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 예술가를 대표합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폴 타부레의 회화는 기독교적 영향과 함께 테크노, 아프리카 비트를 혼합한 음악의 색채와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어요. 한편 세르 세르파스의 작품은 컬렉션에서 의뢰해 제작한 여섯 점의 회화 중 하나로, 얼핏 막대에 걸린 천을 그린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작가가 직접 겪은 성전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 관람객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피노 컬렉션의 주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피노 컬렉션은 다양한 출신과 세대의 아티스트를 포괄하는 독특한 컬렉션입니다. 데이비드 해먼스나 줄리 메레투 같은 미국 흑인 예술가의 활동 초기부터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작품 일부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젊은 예술가를 바라보는 특별한 안목을 지닌 것은 물론,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의 작품처럼 뛰어난 설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컬렉션은 프랑수아 피노의 독특한 안목과 열정을 기반으로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구성했어요. 그는 주로 루돌프 스팅겔의 작업 같은 미니멀한 미학을 선호하면서도 예술이 그를 놀라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고, 마를렌 뒤마부터 신이 쳉에 이르는 다채로운 작업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런 만큼 아티스트의 작업 세계와 발전 과정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요.
오랫동안 컬렉션과 인연을 맺어온 대표 아티스트를 소개해줄 수 있나요? 찰스 레이, 필립 파레노, 타시타 딘, 마이크 켈리, 마를렌 뒤마, 뤼크 튀망, 데이미언 허스트, 피에르 위그 등 굉장히 많아요. 서울에서 소개할 모든 아티스트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기존에도 워낙 유명하고 주목받는 컬렉션이었지만, 2021년 파리에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오픈한 후에는 대중적 관심도가 더욱 커진 듯합니다. 공간이 컬렉션에서 일종의 전환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파리는 현재 매우 활기찬 도시지만, 팬데믹 시기에는 공간 오픈을 연기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미술관 개장 당시 대중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어요. 피노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립 현대미술 컬렉션 중 하나로, 이 공간을 통해 더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입장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컬렉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파리의 예술적 역동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피노 컬렉션은 개인 컬렉션으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매우 대중화된 컬렉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공재적 성격을 함께 지닌 컬렉션으로서 목표나 사명이 궁금합니다. 프랑수아 피노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대중과 예술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아티스트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를 제공하거나, 나아가 이상적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길 바라죠. 이와 관련해 파리와 베네치아에 위치한 3개의 미술관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각 공간은 고유한 리듬과 대중, 건축적 정체성을 지녔으며, 모든 전시는 컬렉션을 기반으로 합니다. 현재 베네치아에서 열리고 있는 피에르 위그 전시의 경우 리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것으로, 2025년 2월 서울에서도 소개할 예정이에요. 컬렉션이 국제적으로 확장되며 이처럼 전 세계 다양한 기관과 협력을 진행 중입니다. 프랑스에서도 기관 및 지역, 특히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관련 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부르스 드 코메르스 오픈 당시 인터뷰를 통해 피노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현대미술 작품 중에는 다소 전위적인 것도 있어 익숙지 않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음을 열어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이나 자신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 치유이며, 삶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 전시에서도 유효할 이 문장과 함께 피노 컬렉션의 정수를 마주해보길.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피노 컬렉션, 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