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메데이아
그리스신화의 비극 속 희대 악녀 메데이아는 이 시대에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유럽 여행길에서 찾은 해답.

파리 뤽상부르 궁전.
비극의 주인공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다트머스 대학교 강단에 선 하프시코드 연주자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 그가 베트남전쟁 징병을 피해 파리에 온 것은 1971년이다. 크리스티는 1979년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의 작품에서 이름을 가져온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 꽃피는 예술)’을 창단하고 바로크 음악사로 돌진해 전인미답의 업적을 쌓으며 어느 프랑스 예술가보다 이 나라 정신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지난 시즌, 파리 오페라는 레자르 플로리상이 연주하는 샤르팡티에의 오페라 <메데이아(Medee)>를 주력 공연으로 내세웠다. 이들이 1984년과 1994년 연거푸 녹음해 세상에 알린 숨은 걸작이다. 마침 크리스티의 옛 동료인 에르베 니케가 작년에 샹젤리제 극장에서 같은 곡을 지휘해 <메데이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지난달에 살펴보았듯이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작품이다. 남편의 외도를 자녀 살해로 되갚는 비상식적 이야기가 어떻게 아직도 호소력을 갖는 걸까? 현대에도 종종 자식을 해치는 비극이 전해지지만 대개는 빈곤이나 장애를 비관해 벌어진 가슴 아픈 사연이거나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인데, 동정과 연민으로 가리기에는 큰 죄다. 하물며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제 자식을 죽이다니, 그런다고 원한이 풀리기나 하는 것인가!

위쪽 뤽상부르 궁전 내 메디시스 분수.
아래쪽 앨프리스톤의 성 앤드루 교회.
경쟁하는 두 메데이아
<메데이아>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에 그쳤다면 모를까,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이를 다시 소환했다. 또 루이 13세 때 피에르 코르네유가 <메데이아>(1635)를 공연했고, 루이 14세 통치 시기인 1693년에는 그 희곡을 각색한 샤르팡티에의 오페라가 초연되었다. 샤르팡티에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참신한 화성과 세련된 춤곡을 프랑스어에 접목해 전임자 장 바티스트 륄리(피렌체 출신)의 성과를 일신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지나치게 이탈리아풍이라 생각해 <메데이아>를 깎아내렸고, 작품은 단 열 번의 공연 뒤 막을 내리는 푸대접을 받는다. 그로부터 한 세기 뒤인 1797년에는 피렌체에서 온 루이지 케루비니가 똑같은 코르네유 원작에 프랑스혁명의 공기를 담았다. 베토벤까지 열광케 한 케루비니의 <메데이아>는 19세기 내내 프랑스보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끌다가 20세기 그리스 출신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에 의해 급부상했다. 피렌체와 밀라노 공연의 연이은 성공은 바다 건너 댈러스까지 이어졌고, 칼라스는 ‘메데이아의 화신’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운명이 그녀를 옭아맨다. 1968년, 칼라스의 애인 오나시스가 이아손처럼 그녀를 버리고 케네디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한 것이다. 칼라스는 이듬해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감독한 <메데이아>에 출연했고, 노래 한 곡 없이 몇 마디 대사뿐이지만 눈빛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메데이아였다.
한편 올해 파리 오페라의 주연은 갓 서른을 넘긴 1993년생 메조소프라노 레아 데잔드레(Lea Desandre)였다. 2015년부터 크리스티의 마스터클래스 ‘목소리의 정원(Jardin des Voix)’에서 훈련받은 그녀는 이듬해 이미 케루비니의 <메데이아>로 데뷔했고, 이후 정상의 무대를 섭렵하며 샤르팡티에의 <메데이아>로 우뚝 섰다. 공연 직후 그녀는 노르망디 상륙 8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를 불렀으며, 여름 동안은 엑상프로방스 축제에서 한동안 잊힌 장 필리프 라모의 오페라 <삼손>을 부활시키는 데 매진했다. 크리스티가 서곡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샤르팡티에의 마법에 사로잡혔다. 실제 공연으로 처음 마주한 데잔드레의 존재감은 역시 대단했다. 메데이아의 걱정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광기가 되는 3시간 동안 데잔드레의 숨결이 가르니에 극장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은 17세기의 샤르팡티에와 다음 세기의 라모를 21세기에서 경쟁시켰다. 그렇다고 메데이아의 복수가 정당화될까? 일각에선 메데이아를 콜키스(조지아) 출신의 미개한 마녀가 앞선 문명의 코린트(그리스)에서 빚은 ‘문화 지체’로 해석하기도 한다. 샤르팡티에가 이탈리아 물을 먹었다고 파리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살던 당시 아테네는 이교도 여인과 사이에 낳은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었다. 제한된 토지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운영하던 정책으로, 초기에는 효과를 거뒀으나 폐쇄적인 결혼 제도는 인구 감소를 불러왔다. 그리고 결국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에우리피데스가 외국인 아내와 한 약속을 어기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아닐는지.
다음 날, 생각을 매듭짓기 위해 현 프랑스 상원 의사당인 뤽상부르 궁전으로 향했다. 유럽 중앙에 자리한 프랑스는 줄곧 혼인을 외교의 한 축으로 삼았다. 왕비 대부분은 유력한 이웃 나라 출신이었는데, 대표적 예가 앙리 2세의 아내 카트린과 앙리 4세의 아내 마리다. 두 왕비는 르네상스 문화의 요람이라 일컫는 메디치 가문 태생이었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도시 국가 피렌체나 토스카나 공국에 불과했기에 촌색시 취급을 받았고, 국왕의 애정도 쉽게 얻지 못한 ‘메데이아 신세’였다. 스페인이나 오스트리아 태생의 다른 왕비 역시 원치 않는 결혼의 희생양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쯤 되면 왕자의 교육으로 <메데이아>만 한 교본이 또 있을까? 왕비와 화목하지 못하면 자식, 곧 미래를 잃는 것과 같은 화를 피하지 못하리라는 강력한 경고인 셈이니 말이다. 마리 왕비가 고향 피렌체의 피티 궁전을 본떠 만든 뤽상부르 궁전 한구석에는 메디시스 분수가 자리한다.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이 분수 중앙에는 그리스신화 속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묘사되어 있다. 거인 폴리페모스는 님프 갈라테이아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양치기 아키스를 향해 있다. 마치 메데이아와는 반대로 현실이 강요하는 사랑과 이상적 사랑 사이에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여러 왕비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여행에서 발견한 가치
톨레랑스(tolerance, 관용)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 정신을 아우르는 최선의 가치다.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가 혼재된 현재 프랑스를 넘어 지구촌에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에우리피데스, 코르네유, 샤르팡티에, 나아가 파리를 대표하는 아메리카인 크리스티,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데잔드레까지 모두 톨레랑스의 기수가 아닌가.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 기차 안에 함께 탄 흑인과 백인 커플, 그들의 아이까지도 톨레랑스를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다. 아이는 태블릿 PC에 나오는 또 다른 이방인 이야기 <해리포터, 마법의 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금방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역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하다.
다음 날 나는 영국 남해안 절경인 세븐 시스터즈로 향했다. 군락을 이룬 노란색 고스 덤불이 흰 석회암 절벽과 끝없이 어우러졌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이곳을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에서 다시 발견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주인공이 마지막을 보낼 곳으로 찾은 장소가 바로 세븐 시스터즈였다. 대략 1억 4000만 년에서 6500만 년 전에 형성된 백악기 지형이니 천문학적 규모의 SF 영화를 찍기 적합한 곳일 수밖에. 게다가 인근의 해안 마을 앨프리스톤에는 600년 전에 지은 목사관이 보존되어 있고, 1397년에 인가받은 여인숙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뽑힌 ‘걱정 많은 책방(Much Ado Books)’에도 한참 머물렀다. 셰익스피어의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사랑에 무관심하던 두 주인공을 누구보다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든 한바탕 소동!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걱정했다면 결과는 좋아야 한다. 이번 여행도, 파리 올림픽도, 올여름도, 2024년도, 이번 생애도. 모두 무사하길 기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런던으로 돌렸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사!” 이번엔 통하길 바라며.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