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고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 축제
조재혁 강릉 하슬라국제예술제 예술감독.

하슬라국제예술제 조재혁 예술감독
아름다운 자연과 음악이 함께 하는 예술 축제, 하슬라국제예술제가 10월 13일부터 20일까지 강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강릉 각지에서 열렸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서 행사 기획과 섭외, 연주까지 도맡은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강릉의 시민들을 위한 즐거운 축제를 오래도록 구상해왔다고 이야기한다.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를 축제의 이름으로 정한 데서 예로부터 이어오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조재혁 예술감독(이하 조): 춘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제 유전자는 강릉에서 왔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강릉 출신이거든요(웃음). 그래서 강릉은 추억도 많고, 굉장히 애착이 가는 지역입니다. 강원도에 평창대관령음악제, 계촌클래식축제, 춘천국제고음악제 등 여러 음악 축제가 있는데 정작 가장 잘 알려진 도시이자 여행지인 강릉에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예술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예술제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예술감독이 아니라 축제의 구상과 기획부터 직접 하신 거였군요.
조: 물론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첼리스트 송영훈과 바이올리니스트 후미아키 미우라 등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음악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주요 공연이 열리는 강릉아트센터 심규만 관장님과 김홍규 강릉시장님도 발 벗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음악제가 아니라 ‘예술’제 입니다.
조: 강릉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기에는 단순히 클래식 음악만 하는 것보다는 여러 가지 예술 장르를 선보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연결하는 것’을 첫 번째 하슬라국제예술제의 목표로 했죠. 올해는 발레리나 김주원, 발레리노 김현웅, 정영재 등 무용가와 협업하지만 앞으로 미디어 아트와 연극, 문학 등 보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하슬라국제예술제 포스터
타 예술 장르와의 연결 외에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조: ‘흥미’였어요. 사람들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 하슬라국제예술제가 올해 모든 면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벤트니까 보다 폭넓은 청중들이 흥미롭게 여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려 했습니다. 가령 10월 17일 열린 ‘뜻밖의 조합’에서는 토이 피아노와 오르간, 트럼펫, 호른 등 실내악 구성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악기의 조합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강릉 시민들의 저변을 넓히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조: 물론입니다. 클래식 FM <장일범의 가정 음악>에서 ‘위드 피아노’라는 고정 코너를 통해 해설을 곁들인 연주를 선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수준과 상관없이 뭔가 하나씩 얻어가는 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구성했는데, 이번 축제도 비슷한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분들과 오랜 애호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했어요.
강릉아트센터 외에도 초당 성요셉 성당, 갈바리의원, 카페 마눌 등 전문 공연장이 아닌 강릉의 명소에서 무료 공연이 열립니다. 어떻게 선정한 장소인가요?
조: 초당 성요셉 성당! 너무 멋진 곳이죠. 헨델과 바흐의 성악곡을 연주하기에 더 좋은 장소가 없을 것 같았고요. 카페 마눌은 유럽풍의 건물에서 대관령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강릉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죠. 갈바리의원은 1965년 지어진, 아시아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입니다. 천주교 수녀회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강릉 시민들이 평온하게 삶을 마감하는 장소입니다. 지역 사람들이 정말 감사하게 여기는 곳이라, 음악을 통해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봉사와 노고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갈바리의원은 임종 간호를 하는 곳이라 공연을 진행하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듯한데요.
조: 중증 환자들도 머무는 공간이라 일반 입장객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갈바리의원을 방문하니, 병실이 양옆에 나란히 있고, 가운데 피아노가 놓여 있는 빈 공간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잔잔하게 실내악 공연을 하고, 환우들과 보호자가 병실 안에서 연주를 듣는 걸 상상했지요. 하지만 막상 쇼팽 녹턴, 타이스 명상곡 등 연주가 시작되자 원장 수녀님을 비롯한 병원 스태프와 봉사자, 환자와 보호자가 악기 주위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며 묵상하는 풍경에서 연주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갈바리의원에서의 연주는 구상 단계부터 축제를 함께 고민한 첼리스트 송영훈, 바이올리니스트 후미아키 미우라와 함께해 더욱 뜻 깊은 자리였겠군요.
조: 그 밖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하슬라국제예술제를 빛내주었습니다. 대부분 저와 친분이 있는 음악가였고, 다행히 일정이 맞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강릉에서 이런 축제를 구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한 건 올해 초부터였거든요. 빠듯한 스케줄에도 기꺼이 참여해 준 동료 예술가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 개월 만에 국제 규모의 예술제를 만드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죠. 후배인 송영훈 씨에게 공동 예술감독을 제안했는데, 굳이 고사한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일이었어요(웃음).
준비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예술감독으로서 축제에 찾아온 시민과 음악 애호가들을 맞이 하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조: 크건 작건 잔치를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심정은 모두가 아시잖아요? 조바심 내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관객도 많이 와주셨고, 무엇보다 참여한 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하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청중들께서 정말 열정적으로 반응해주셨고요. 잔치 상을 차린 사람으로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강원도에는 평창대관령음악제, 계촌클래식축제, 춘천국제고음악제 등 10년 이상 진행하며 특색이 뚜렷한 예술 축제들이 있는데, 앞으로 하슬라국제예술제를 어떤 축제로 자리매김하려 하나요?
조: 무엇보다 강릉 시민을 위한 축제로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찾아가는 무료 공연도 더 늘리고, 미디어 아트와 연극, 영화 등 다른 분야 예술과의 협업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요. 드론쇼 등 첨단 테크놀로지와 결합해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거고요.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축제의 미래를 그리기가 더 즐겁기도 하고요.
피아니스트로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조: 지난 7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11월 1일과 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고, 지난 9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음반을 협연한 베를린챔버오케스트라와 함께 11월 26일에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 콘서트홀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2026년 발매 예정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음반을 녹음하고요.
온통 모차르트군요.
조: 피아니스트로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성악가나 현악기 연주자가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나 교향곡을 들어보세요. 그 표현의 범위가 엄청나거든요. 때로는 무섭고, 처절하고… 하지만 피아노 음악의 경우엔 유리알을 깨뜨리지 않게 조심하는 듯한 영롱하고 투명한 연주가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요즘 좀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모차르트 당대의 포르테피아노와 요즘의 피아노가 엄연히 다른데 왜 옛날 방식으로만 연주해야 하지? 현대 피아노의 표현 영역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연주할 수는 없을까? 소신대로 연주해 볼 생각입니다. 악평을 감수할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웃음).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사)하슬라국제예술제, 강릉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