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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성의 몸을 그리다

ARTNOW

'현대'와 '여성성'을 규정한 위대한 여성 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삶과 작품.

Upper Body of a Woman Leaning toward the Left, Charcoal on Paper, 48×63cm, 1898.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Self-Portrait on Sixth Wedding (Anniversary) Day, Oil Tempera on Cardboard Mounted on Wood, 101.8×70.2cm, 1906. Paula Modersohn-Becker Museum, Bremen.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Portrait with Two Flowers in Her Raised Left Hand, Oil Tempera on Canvas, 55.2×24.8cm, 1907. Jointly owned by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Gift of Debra and Leon Black, and Neue Galerie New York, Gift of Jo Carole and Ronald S. Lauder.

1906년과 1907년은 모더니즘 회화에 결정적 시기였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앙리 마티스가 ‘푸른 누드’를 그리며 인간의 형상을 화폭에 옮기는 전통적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20세기와 ‘현대’라는 개념을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앞의 두 예술가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류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더욱 급진적으로 바꿔놓은 예술가가 같은 시기, 그들과 같은 도시에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했다.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 1876~1907)는 최초로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 화가로 알려져 있다. 모더존-베커의 대표작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자화상(Self-portrait on Sixth Wedding Anniversary Day)’(1906)이 바로 그 작품이다. 엉덩이 근처까지 옷을 내린 반라의 여성이 몸을 약간 틀고 서 있다. 목부터 가슴께까지 커다란 호박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임신한 듯 부른 배를 손으로 받쳤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림 속 여성의 강렬한 눈빛! 살짝 치켜뜬 눈으로 똑바로 정면을 응시한 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림의 안과 밖에서 자신의 벗은 몸이 조금도 수줍거나 부끄럽지 않은 그녀,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대체 누구였을까?
눈에 보이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1876년 드레스덴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와 독일 철도공사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러시아 혈통 아버지가 이룬 가정은 주말마다 작가와 예술가를 초대해 파티를 즐길 정도로 유복하고 자유로운 환경이었다. 1888년 브레멘으로 집을 옮겼을 때 지역에서 활동하던 화가에게 처음 그림을 배웠고, 1892년 이모가 살던 영국 런던의 세인트 존스 우드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긴 작품이 무려 20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동료 작가와 교류하며 예술가로서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은 1898년, 독일로 돌아와 브레멘 근처 작은 마을 보르프스베데에서 일군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작업하던 예술 공동체로 거처를 옮기면서다. 그곳에서 그녀는 평생 친분을 유지한 오스트리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 그리고 훗날 결혼하는 풍경화가 오토 모더존을 만난다. 하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이상화한 전원 풍경을 그린 보르프스베데 예술 공동체의 예술가들과 달리 파울라는 농촌을 낭만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묘사했다. 인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전통적 방식을 따르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실히 그리는 것을 즐겼다.
1901년 친구인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결혼한 다음 달, 파울라는 열한 살 연상인 오토 모더존과 결혼한다. 당시 신부 수업을 위해 요리 학교에 등록한 그녀가 남편에게 남긴 편지의 한 구절이 흥미롭다. “당신에게는 아름다운 그림이겠지만, 내게는 그저 수프와 만두, 스튜일 뿐이에요.” 남편의 전처가 남긴 의붓딸과 집안을 돌보며 회화 작업을 병행했지만 아내와 엄마, 예술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파울라는 1906년 2월, 모더니즘 운동의 중심지 파리로 향한다.
아름답고, 밝고, 당당하고, 장난기 넘치는 남편과 어린 의붓딸을 보르프스베데 집에 남겨둔 채 홀로 작업에 몰두하던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파리에 머무르는 6개월간 앞서 소개한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자화상’을 비롯해 8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한다. 당시 그녀가 방문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 중 여성 화가의 그림은 4점뿐이었다. 전시하는 그림을 그린 여성은 그림으로 전시된 여성에 비해 압도적 소수였고, 그중 상당 부분은 나체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남성 화가가 그린 여성은 파울라의 누드 자화상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의 눈에 비친 여성은 수줍어하거나, 이상화됐거나, 대상화됐거나, 배경에 머물렀다. 파울라는 보르프스베데의 자연을 묘사한 것처럼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군데군데 붙은 군살과 정리되지 않은 체모, 포즈를 취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자세는 당시 박물관에 걸린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Paula Becker in her “lily” studio, Worpswede, ca. 1900.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Cat in a Child’s Arms, Oil Tempera on Canvas, 32.5×25.6cm, c. 1903.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Still-Life with Clay Jug, Peonies, and Oranges, Oil Tempera on Cardboard, 61.5×49cm, 1906.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Portrait of Rainer Maria Rilke, Oil Tempera on Cardboard Mounted on Wood, 32.3×25.4cm, 1906.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on loan from a Private Collection.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Sheep in the Birch Forest, Oil Tempera on Cardboard, 73.5×56.5cm, 1903. Meadows Museum of Art at Centenary College, Shreveport, Louisiana. © Paula-Modersohn-Becker-Stiftung, Bremen.

흥미로운 사실은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1906년 5월 무렵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임신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서 그녀는 많은 임신부가 그렇듯, 손으로 배를 조심스럽게 감싸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브레멘에 위치한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 관장인 예술사가 라이너 슈탐(Rainer Stamm)은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파울라 모더존-베커 관련 서적 〈짧지만 화려한 축제〉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남겼다. “임신을 상상한 것일 수도 있다. 재미로 배를 부풀리고 허리를 젖히고 배를 앞으로 쭉 내민 것이다. 그저 어떤지 보려고.” 자화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그리는 그림이니까. 어쩌면 파울라는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밝고, 당당하고, 장난기 넘치는 임신부.
그래서였을까? 파리로 찾아온 남편과 함께 이듬해 초 보르프스베데로 돌아간 파울라는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최초로 임신한 자화상을 그린 여성 화가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여섯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자화상’이 아니다. 1907년 초여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두 송이의 꽃을 왼손에 든 자화상(Self-portrait with Two Flowers in Her Raised Left Hand)’(1907)에서 푸른색 옷을 입은 파울라는 오른손으로 부른 배를 가리고, 왼손으로 두 송이의 꽃을 들고 있다. 아마도 자신과 뱃속에 있는 아이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9개월 후인 11월 2일, 파울라는 난산 끝에 딸 마틸데를 얻는다. 당시 출산을 도운 의사는 그녀에게 계속 누워서 안정을 취하라고 권했고, 가까운 이들과 함께 파티를 열기로 한 11월 20일이 되어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이에게 걸어가던 그녀는 쓰러지며 갑작스레 숨을 거뒀다. 그때 그녀의 나이 서른하나였다. 마지막으로 “불쌍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는 그녀의 사후에 밝혀진 병명은 폐색전증이었다.
더욱더 나 자신이 되기를 갈망하다 예술사가 다이앤 래디키(Diane Radycki)는 저서 〈파울라 모더존-베커: 최초의 현대 여성 예술가(Paula Modersohn-Becker: The First Modern Woman Artist)〉에서 그녀의 이른 죽음에 대해 “여성이 위대한 아티스트와 어머니로서 삶을 모두 추구할 때 벌어지는 비극”이라고 말한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700점 이상의 회화와 1400점이 넘는 드로잉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했듯 생전에는 단 1점의 작품도 판매되지 않았다. 세상에 파울라라는 이름을 알린 것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출간한 것으로 유명한 출판사 쿠르트 볼프(Kurt Wolff)에서 1920년대에 출간한 그녀의 서간집이었다. 앞서 인용한 그녀의 편지 속 문구가 모두 이 서간집에 담긴 것.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 남편인 오토 모더존 등 당대의 명사들과 주고받은 서신에는 자화상에서 드러나는 파울라의 당당하고 유쾌한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간집의 성공과 함께 그녀의 작품 역시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927년에는 브레멘에 파울라 모더존-베커 미술관이 건립된다. 여성 예술가의 이름이 붙은 최초의 미술관이었다.
파리로 떠나기 직전인 1906년 초, 파울라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담겨 있다. “내 이름은 모더존도, 파울라 베커도 아니다. 나는 나다(I Am Me). 그리고 계속 더욱더 나 자신이 되기를 갈망한다.” 이름을 포함해 자신과 관련한 기존의 모든 정체성을 넘어 독립적 예술가로서 존재하려는 의지를 밝히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녀의 자화상은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표현하려는 강한 결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여성의 몸과 자아를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개척한 선구적 예술가다. 여성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리며 자신의 신체를 남성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냈고, 이를 통해 여성 예술가로서 독립적 자아를 구축했다. 그녀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고, 자화상은 여성 예술가의 자기 탐구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앞서 릴케에게 보낸 서신에 담긴 ‘I Am Me’라는 문구를 전시 제목에 인용한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대규모 회고전 〈Paula Modersohn-Becker: I Am Me〉가 뉴욕 노이에 갤러리(6월 6일~9월 9일)를 거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2025년 1월 12일까지 열린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