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향한 첫걸음, 예술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도에 설치 작품 '숨결의 지구'를 선보이는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at Marshall House Reykjavik, Photo: Ari Magg, 2018.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출신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1997년부터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 홀의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를 통해 현대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뉴욕 시티 워터폴스(The New York City Waterfalls)’(2008), ‘당신의 무지개 전경(Your Rainbow Panorama)’(2011), ‘아이스 워치(Ice Watch)’(2014~2018) 같은 공공 미술 작품으로 관람자의 생각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동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엘리아슨의 작품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루이 비통 재단, 서울 리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과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섬’으로 불리는 신안군은 한국 최대 다도해 지역으로, 지난 2021년에는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안군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자산 삼아 다도해 지역의 각 섬에 하나의 미술관 또는 예술 작품을 설치하는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이 대규모 프로젝트에 인체와 공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조각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 비금도 바다의 미술관),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자은도 인피니또미술관),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를 주도한 일본 현대미술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 안좌도 태양의 미술관) 등 ‘세계적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작업이 ‘대지의 미술관’ 프로젝트로 알려진 올라퍼 엘리아슨의 설치 작품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다. 빛과 물, 공기 등을 활용해 자연현상과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온 올라퍼 엘리아슨은 과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도초도의 독특한 지형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흐름과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공간에서 관람객이 그 에너지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작품.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소장과 협업해 조성한, 항구에서 ‘숨결의 지구’가 자리한 언덕 꼭대기로 이어지는 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면 복잡한 기하학적 격자 구조의 돔을 만나게 되고, 관람객은 언덕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이 공간을 “모서리와 수평선, 경계가 없고 벽, 천장, 바닥의 구분조차 없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돔 구조의 격자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태양광은 지하에 조성한 내부 공간을 구성하는 화산암을 깎아 만든 용암석 타일의 기하학적 패턴을 드러내고, 곡선형 구조가 독특한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이 기묘한 공간을 통해 올라퍼 엘리아슨은 무엇을 표현하고, 관람객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신안 도초도를 비롯해 예술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역은 한국에서 섬이 많은 바다라는 의미의 ‘다도해’로 불립니다. 이러한 도초도의 자연환경은 이번 대지의 미술관, 그리고 숨결의 지구 공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까요?
도초도에서 진행하는 ‘숨결의 지구’ 프로젝트에서 주변 환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경험을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특히 신안군 다도해 지역의 특징인 광활한 갯벌 덕분에 땅과 물, 수평선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 상호작용으로 하루 24시간 도초도의 풍경은 극적으로 변화합니다. 그렇게 섬과 바다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것처럼, ‘숨결의 지구’는 관람객과 환경 그리고 관람객 자신의 인식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를 만들어냅니다. 바다의 변화는 변하는 주변 환경을 반영하며, 이는 제가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 즉 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는 ‘역동성’과 공명합니다.
배를 타고 도초도에 도착, ‘숨결의 지구’를 설치한 대지의 미술관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항구에서 출발해 ‘숨결의 지구’가 자리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기 전에 바다와 인근 섬, 멀리 보이는 푸른 언덕 등 주변 지역의 광활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방문객이 본격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도초도의 자연환경을 충분히 흡수하기를 바랍니다. ‘숨결의 지구’는 마치 외부 세계를 등진 은신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장소를 의도했습니다. 가령 내부를 구성하는 용암석으로 만든 타일의 물성은 이곳에 도착하기에 앞서 본 풍경의 울퉁불퉁한 암석 지반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관람객을 맞이하는 내부 공간은 마치 전망대 같은 느낌을 주는데, 하나뿐인 창문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용암석 타일의 패턴은 특정 각도에서 바라본 시점에 맞춘 채 관람객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 작품은 지구와 우주, 자아의 상호 연결된 요소에 주목해 그 어느 것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곳에서 함께하는 순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 모두를 지탱하는 요소에 귀를 기울이도록 초대합니다.
언제나 예술에 대한 관람객의 경험과 참여를 강조해왔습니다. 이번에 진행한 ‘숨결의 지구’ 프로젝트는 관람객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참여해 창조의 과정에 함께할 수 있도록 의도했나요?
언덕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내부 공간으로 들어온 관람객은 우선 규모에 대한 감각이 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용암석 타일로 구성한 다면체가 흙속 미세한 결정체처럼 보이고, 지평선이 사라지며 넓게 펼쳐진 풍경의 원근감이 좁혀집니다. 입구에서 보면 돔을 이루는 기하학적 격자의 두께가 선명하지만, 내부 구조의 중앙으로 접근할수록 점차 희미해지면서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섬세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타일의 위치는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내부 공간의 중심에 자리한 관람객의 시점이 작품의 중요한 일부가 됩니다.
지붕은 돔 형태를 이룹니다. 마치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 같은 철골 구조를 연상하게 됩니다.
저는 평생 기하학과 패턴에 매료되었고, 이는 곧 형태에 대한 내적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원근법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다면체를 재현해 2차원 표면에 3차원 환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평면에서도 깊이와 볼륨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부 공간의 벽은 빨간색과 초록색, 청록색 용암석 타일로 장식했습니다. 용암석을 재료로 선택한 배경과 이 세 가지 색상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수백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 중 하나인 도초도의 지질학적 역사를 기리기 위해 용암석으로 만든 타일을 사용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으로 도초도의 지형이 오늘날의 거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니까요. 타일의 색상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타일의 패턴과 색상은 공간에 마치 3차원 다면체의 결정체와 같은 것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미세한 토양 결정을 연상시키는 이 타일은 ‘숨결의 지구’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지표면 아래 땅속 공간에 집중하게 합니다. 빨간색은 지구 중심부의 열과 에너지를, 녹색은 표면의 생명체를, 청록색은 물 · 공기 · 하늘을 나타내는 등 지구의 지층을 반영합니다. 한 가지 균일한 타일을 사용하는 대신 각 타일을 고유하게 제작해 반복을 피했습니다.
도초항에서 ‘숨결의 지구’까지 이어지는 길은 50년 넘게 한국 조경 설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조경설계서안 소장과 협업해 완성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늘 협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로서 이번 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한국 전통 조경에서 인간과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정영선 소장의 이해가 협업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땅과 그 역사에 대한 그녀의 존중은 공간과 지각, 자연 세계의 관계에 대한 제 관심사와 일치합니다. 또한 정영선 소장은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조경 설계와 조화롭게 통합합니다. 그녀의 전문성 덕분에 공간의 문화적 · 환경적 맥락에 뿌리를 둔 조경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넘어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 특정적 작품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이번 ‘숨결의 지구’ 프로젝트와 유사한 과거 프로젝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우리의 빙하적 관점(Our Glacial Perspectives)’은 자연에 대한 감탄뿐 아니라 관람객이 자연 속에서 우리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도전입니다. 이탈리아 그라반드산의 빙하가 깎여 형성된 능선에 설치한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저 멀리 보이는, 느리게 움직이는 빙하와 그 규모를 비교하게 되고, 그 풍경의 깨지기 쉬운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체험하게 됩니다.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는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엄청나게 바꿔놓았습니다. 전시 공간을 찾은 대다수의 사람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SNS를 통해 이를 공유합니다. 예술의 관람객 참여를 강조하는 작가님에게 이러한 현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소셜 미디어는 미술관, 갤러리 등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공식적 채널이나 작품이 설치된 실제 현장을 넘어 그 도달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예술을 민주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예술 참여 방식을 수용하면서도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의 힘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제 작품이나 전시회의 이미지와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은 그 경험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것입니다. 참여와 공동 제작은 항상 제 작업의 중심에 있었고,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작업에서 이러한 감상 방식의 변화를 고려한 사례가 있나요?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더 이상 갤러리 공간과 출판, 미디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확장되어 시청자가 이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의 깊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순간 그 자체보다 우선시된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현장의 감상과 그것을 전하는 매개체 사이의 긴장은 작업 과정에서 점점 더 의식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제 작업이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두 세계에서 각각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공유하는 새로운 소셜 미디어 환경이 관람 경험에 더하게 될 피할 수 없는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기후 위기를 비롯해 우리가 마주한 심각한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작품에선 언제나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기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숨결의 지구’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고요. 지금을 사는 우리를 둘러싼 그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낙관적 관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낙관주의가 문제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2021년 작고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주교 데즈먼드 투투(Desmond Tutu)는 “나는 희망의 포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예술이 구체화된 경험을 창조하고 우리 자신과 타인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오늘날의 복잡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예술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와 참여로 인해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예술 작품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와 관점을 작품에 보태고, 적극적 참여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냅니다. 저에게 이런 변화의 행위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예술을 통한 변화가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 이러한 것이 저에게는 바로 희망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