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눈
회화 작가 김서울은 신체적 한계를 거스르지 않고 감각을 단련하기 위해 작가로서 삶을 가다듬는다.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집요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김서울 작가는 주요 작업 도구인 물감, 붓, 캔버스 틀과 액자, 기법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애프터 드 쿠닝’ 연작을 통해 빌럼 더코닝의 작품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회화 언어로 재조립하며 물감과 색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필버트 패밀리’ 연작을 전개하며 붓의 형태를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작가라면 응당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무엇이 처음 작가님을 예술의 길로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백남준 선생을 정말 존경합니다. 어릴 때 그분의 작품을 보고 매료됐어요. 특히 ‘TV 부처’란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릴 만큼 그분의 작품은 혁신적이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백남준 선생의 휴머니즘적 사고에 더 끌린 것 같아요.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작업에 임한 게 보였거든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 작가죠. 현대미술에 더욱 깊이 빠져든 건 학부 때였어요. 그 당시 세계적 미술관의 홈페이지를 탐방하곤 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미국 휘트니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솔 르윗(Sol LeWitt)이란 작가를 만나게 됐어요. 그는 예술의 제작 방식을 연구한 인물이죠. 그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회화를 주 매체로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말씀하신 백남준 선생이나 솔 르윗은 모두 다른 매체로 작업한 작가였어요. 회화에 관해 제대로 알기 위해 가까운 다른 학문, 즉 디자인과 건축, 조각, 인문, 사회 등을 많이 공부했어요. 그러다 알게 되었죠. 회화가 제일 어렵구나. 인류 역사상 예술적 행위가 자의적으로 이뤄진 첫 사례가 바로 동굴벽화예요. 인간의 예술 활동 중 첫 번째가 바로 그림 그리기였다는 거죠. 그만큼 오래된 회화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제 평생을 바쳐 해보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물감에 있어요. 지금이야 공장에서 만들지만, 옛날에는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 안료를 달걀노른자 등 여러 가지 바인더에 섞어 물감을 만들었어요.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더 이상 잘게 빻을 수 없을 때까지 빻은 거죠. 저에게는 그게 지구의 소인수분해처럼 느껴졌어요. 물감 입자가 마치 제일 작은 크기의 지구 같았죠. 이만큼 매력적인 매체는 찾기 어려워요.

위_좌 Installation View, 〈Sonata for a Beautiful Soul〉 at ThisWeekendRoo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위_우 Color Chart for after de Kooning No. 5, Watercolor on Paper, 38×28cm, 2017.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아래 Installation View, 〈Sonata for a Beautiful Soul〉 at ThisWeekendRoom,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Seoul.
이번 특집의 주제는 ‘신체’입니다. 회화 작가에게도 눈과 손을 활용하는 감각이 중요하잖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본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감각을 굉장히 예민하게 훈련하는 사람이에요. 보는 것 모두가 저에게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보통 손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눈으로 그리는 거예요. 손은 따라가는 거죠. 그렇다 보니 보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는 일종의 훈련입니다. 하지만 작업에 시각만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에게 있는 다른 감각, 가령 후각과 미각, 촉각, 청각 모두 함께 민감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림 그릴 때 시각을 제외하면 남는 감각이 촉각인 것을 생각하면 쉽죠. 감각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함께할 때 비로소 시각도 단련된다고 할 수 있죠. 그렇다 보니 평소에 눈이 시리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면 할수록 힘들어요. 그래서 제 물리적 신체성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너무 완벽한 직선이나 원을 그리려고 애쓰는 것 같은 노력 말이에요.
예술은 꽤 낭만적인 노동이죠. 아름다운 것을 만드니까요. 하지만 낭만주의적 태도만으로 작업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낭만에 취하는 순간 제대로 된 전투는 못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감정이 사람의 신체적 특성에서 발현된다면, 그것을 예리하게 가꾸는 노력을 선행하고 그 가꾼 것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일이 중요하죠. 바둑에 빗대어 얘기하면, 대국에서 이기고 싶어도 떼를 쓰고 우는 것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 보니 이성적으로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만이 살길이고,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업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한번 강조하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야 작품을 통해 그것을 제대로 발현할 수 있는 겁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님은 스스로 연구자에 비유합니다. 물감의 물성부터 색채까지 ‘스터디’하는 과정에서 왠지 직접 재료를 만들어봤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 역시 감각을 통해 체득해 마치 신체의 일부가 되듯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맞아요. 필요한 작물을 기르는 것 빼고는 작업에 쓰는 물감이나 캔버스 같은 재료를 거의 다 만들어봤어요.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니 굳이 만들어서 쓸 필요는 없겠다 싶었죠. 똑같은 퀄리티로, 같은 색상을 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과정을 거쳤기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주문할 수 있었죠. 저는 예술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도 있죠. 더 좋은 것을 찾고자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 또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신체와 정신 그 모든 것이 작품에 투영되니까요. 이러한 연구는 한순간에 이뤄질 수 없어요. 무언가 지불해야 죠. 자본, 개인의 노력, 체력 같은 것 말입니다. 제가 직접 느낀 바로는 예술가의 모든 것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더 진중하게,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매일매일 듭니다.
언젠가 작가님이 “물감이나 캔버스 모두 레디메이드(ready-made)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요. 대부분 그런 재료는 모두 ‘로 머티리얼(raw material)’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무엇이 그런 생각으로 작가님을 인도한 걸까요?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캔버스, 물감, 붓을 사용하며 마르셀 뒤샹을 떠올려요. 그의 등장 이후에 예술품은 작가의 선택에 의해 시작된다고도 말하니까요. 미술사에 그런 위대한 스승이 있음에 감사해요. 그들을 통해 배우며 제 것을 만들어가는 편이거든요.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제가 치열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에스코다 (Escoda)라는 브랜드의 붓만 사용해 작업해요. 그걸 선택하기까지 많은 붓을 써보며 연구했죠. 에스코다에서는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붓을 생산하고 있어요. 사이즈별로 다 사서 써봤는데, ‘이런 게 왜 있을까?’ 싶은 붓도 있어요. 물론 홈페이지 등에 사용 방법이 나와 있긴 하지만, 저는 그걸 제 회화 작품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실험한 거죠. 물감, 붓, 캔버스까지 제 작업의 근간이 되는 레디메이드 재료는 제조사별 분류 체계도 살펴보는 등 벌써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연구를 이어가고 있어요. 아직도 배워가는 단계고,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그렇게 만든 작품은 정말 훌륭한 레디메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예술 그리고 예술품이 최고로 높은 차원에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제일 비싼 그 어떤 하이엔드 브랜드의 제품보다도 고급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라면 미술을 배울 때부터 내가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인지, 내가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런 고뇌 없이 만든 작품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 쓰레기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레디메이드(재료)를 활용하고, 여기에 작가의 사유를 입힘으로써 또 다른 최고급 레디메이드(작품)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면 응당 자신이 만든 작품이 최고이기를 바라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그런 연구와 작업을 전개하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의문이 생기진 않나요?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죠. 앞서 말한 것처럼 옛날에는 색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잖아요. 지금은 어떤 곳에선 1000원에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재료가 됐지만, 옛날에는 정말 귀한 안료로 힘들게 그림을 그렸구나 싶어요. 제가 가진 어떤 물감은 너무 귀해서 투탕카멘 무덤에서 눈 부분에나 살짝 쓰일 정도였고, 클레오파트라의 눈 화장에 사용하던 안료를 베이스로 만든 것도 있어요. 이런 걸 손에 넣다 보면 제가 재료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지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죠. 왜 아직도 인간은 붓으로 물감을 칠하나? 제가 만드는 작품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늘 자문하죠. 그린다는 행위에는 고귀함이 깃들어 있어요.
작업 방식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작업실을 둘러보고 지금까지 말씀을 듣다 보니 먼저 구상한 후 그림을 완성해나갈 것 같은데요. 제 작업실에는 규칙이 있어요. 어떤 붓을 어떤 통에 꽂아놨는지, 물감은 어떻게 배치해 보관하고 있는지 다 기억하죠. 하지만 그림은 달라요. 구상해서 그리는 게 제일 쉬운 일이에요. 작업할 때 귀를 막고 눈만 사용하려고 해요. 오롯이 시각으로만 그림을 대하죠. 바둑에 ‘초읽기’라는 시간이 있어요. 바둑돌을 놓기 전에 수를 생각하며 작전을 짜는 거죠. 이와 마찬가지로 화면을 오래 쳐다보며 다음 붓의 행보를 찾습니다. 어떨 때는 8시간을 바라보기만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맞는 수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그려나가죠.
어떻게 보면 ‘기싸움’인 건가요? 기싸움이라고 하면 제가 대체로 압도당하고 있어요. 작업을 하다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거든요. 작업을 떠올리면 잘 벼린 칼로 단번에 대나무를 베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한 획에 이기기 전에는 끊임없이 판도를 읽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어요. 대체로 작업 진행이 50%를 넘기면 그때 제가 이기는 형세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30~40% 정도일 때 그 한 단계를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아요. 그때 시간이 많이 걸리죠. 그렇게 작품과 저 사이에 만들어진 일종의 바둑판을 계속해서 읽다 보니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외하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나요? 만약 이 질문을 서면으로 받았다면, 답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목표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조심스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술에는 기본적으로 ‘로맨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로맨스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어떤 면에선 유물론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만든 작품이 장악하는 힘이 있기를, 그래서 그 가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연구도 이어가는 거예요. ‘하이엔드’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작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보면 해묵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전통 매체인 회화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예술은 혁신적인 것이어야 하니까요. 저는 시각예술 종사자이자 연구자로서 그 혁신을 앞장서서 이끌고 싶은 거죠. 그럼으로써 삶을 좀 더 이롭게 만드는 데 한몫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예술의 목적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디스위켄드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