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산, 다보스
거시적 화합의 장이 된 다보스.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는 그 뿌리를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 발견한다.

스위스 칸톤 그라우뷘덴 다보스의 전경.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K-팝 스타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음식점 앞에 줄 서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 당연하거나 심지어 불편하다고 느끼는 복잡다단한 일이 그들에겐 흥미롭고 즐거운 체험이다. 거꾸로, 비현실적인 경치의 스위스 알프스에 올라가 컵라면을 먹는 한국인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전 세계인이 선망하는 스위스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변화가 없다면 지루하기 마련이다. 알프스 가장 깊은 속자락의 다보스. 해가 진 겨울엔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곳이다. 나만 해도 서울의 평범함을 버리고 스위스의 비범함을 택하라고 한다면 좋기만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다보스지만 매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릴 때마다 전 세계인의 눈이 이곳에 집중된다. 다보스 포럼을 정치가나 기업인의 사교장쯤으로 알고 있다면 오해다. 1980년대에는 그리스와 터키의 반목을 화해로 돌렸고, 1990년대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넬슨 만델라의 나라로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 2000년대부터는 글로벌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포괄적 논의를 진행 중이다. 스위스 벽지에서 어떻게 이런 거시적 안목의 회합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마의 산>에서 그 기원을 찾았다. 역동적 현실을 벗어나 정지된 7년을 기록한 소설이다.
토마스 만의 대장정
독일 문학사에서 괴테는 부동의 정상을 차지한다. 그다음 위치에 오른 사람 중 하나가 토마스 만이다.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을 뮌헨에서 보냈다. 나치가 집권한 뒤 그는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종전 후 스위스로 돌아와 취리히에서 여생을 보냈다. 1929년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21)과 <마의 산>(1924)을 통해 노벨 문학상을 품에 안는다. 이후 “<구약성서>의 ‘요셉 이야기’는 매우 아름답지만, 너무 짧아 아쉽다”는 괴테의 말에 착안해 4부작 <요셉과 그의 형제>(1933~1943)를 완성했다. 악마와 영혼을 거래한 괴테의 ‘파우스트 설화’는 천재 작곡가의 파멸과 구원을 그린 <파우스트 박사>로 거듭났다. 그레고리오 교황의 남다른 삶을 그린 <선택받은 인간>과 미완성작 <고등사기꾼 펠릭스 크룰>까지, 토마스 만은 나치로 오염된 20세기 전반에 독일 정신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한국문학이 세계적 수준을 향해 발돋움하던 시절에는 많은 작가가 앞다퉈 그의 작품을 참고하기도 했다. 방대한 소재와 깊은 사색을 특유의 만연체로 녹인 그의 소설은 대중과 큰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러나 영화로 만든 <베네치아에서 죽음>(1912)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다지에토’와 어우러져 얕은 교양이라도 맛보려는 사람에게까지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밈’처럼 파고들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 걸음 뗐으니 토마스 만까지 가는 여정도 전보다는 수월하지 않을까?
토마스 만의 문학 대부분은 서양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다. 고향 뤼베크를 배경으로 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마지막 편 ‘신들의 황혼’을 느슨하게 패러디했다. 오페라에서 절대 반지의 상실과 더불어 영욕의 최후를 맞는 신들은 소설 속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어느 상류 가문과 대비된다. 홀스텐 문은 뤼베크가 한자 무역 동맹의 주요 관문임을 상징하고, 시립 극장은 작가가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도도한 낭만주의를 잊지 못한다”고 회고한 장소다. 젊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연로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후임에 지원하기 위해 400km를 걸어왔다가 노처녀인 그의 딸과 결혼하라는 조건에 포기한 마리아 교회. 한노 부덴브로크가 그린 19세기의 숨 막히는 수업 시간은 아마 학창 시절을 거쳤다면 어느 나라 독자라도 공감할 것이다. 한편, 뮌헨은 토마스 만의 처가이자 <파우스트 박사> 탄생지다. 광활한 영국 정원에는 걸작의 산실이 있다. 교외의 작은 마을 폴링에는 ‘파우스트 박사 길’이라는 호젓한 산책로가 자리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퀸은 작곡가로서 창작력을 얻는 대가로 악마와 사랑을 포기하는 계약을 맺는다. 혹자는 레버퀸의 모델을 난해한 12음 기법을 고안해 청중과는 담쌓은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보스에서 탄생한 소설
토마스 만은 WEF가 열리기 반세기 전부터 다보스 골짜기에서 세계 역사와 인간의 운명에 대해 한없이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는 폐병에 걸린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 요양원에 함께 왔는데, 그것이 바로 <마의 산> 소재가 되었다. 주인공 한스는 요양원에 입원한 사촌을 문병하려고 다보스에 왔다가 예상했던 3주를 넘어 무려 7년을 머무른다. 처음에 작가는 “7일이나 7개월로는 부족할 것이지만, 설령 7년이야 걸리겠느냐”며 운을 뗀다. 정지된 듯한 일상에 녹인 7년이다. 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과 일맥상통한다. ‘변용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 기사장에 의해 숲속에 인도된 파르지팔은 “얼마 걷지 않았는데 멀리 왔네요”라고 말한다. 기사장은 “이곳은 시간이 곧 공간이 되는 곳”이라고 답한다. 역사가는 변화 없는 지루한 시간을 무시한다. 반면 짧더라도 복잡하고 지난한 시간을 밀도 있게 기술한다. 크리스마스라도 매일 반복된다면 무의미할 것이고, 단 하루라야 뜻깊은 날이 된다. 다보스 요양원 숲길에는 <마의 산> 속 한 구절이 적혀 있다. “인간은 자기 삶만 사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시대와 동시대인의 삶도 함께 산다.”
어른이 되어서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유년의 경험이 있는가? <마의 산> 속 한스는 학창 시절 히페라는 친구를 좋아했다. 그는 수업 시간에 그녀의 연필을 빌린 적이 있다. 히페는 웃으며 “꼭 돌려줘야 해”라고 말한다. 한스는 좋아하는 사람의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과 연필을 다시 돌려줄 즐거움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는 돌려주기 전에 연필을 다시 깎았고, 그 부스러기를 책상 서랍 속에 거의 1년 동안 보관한다. 성년이 된 한스는 요양원에서 클라브디아 쇼샤 부인이라는 특이한 여성을 만난다.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게 식당 문을 쾅 닫는 러시아 여성이다. 한스는 문득 그녀가 히페를 닮았음을 알아챈다. 요양소에 온 지 7개월이 지나 열린 카니발에서 한스는 그녀에게 처음 다가가 연필을 빌린다. 사실상 첫 대화에서 히페에게 지닌 막연한 사랑을 클라브디아에게 속절없이 털어놓는 한스. 느닷없는 고백을 받은 클라브디아는 한스에게 연필을 빌려주며 말한다. “꼭 돌려줘야 해.” 작가는 그날 밤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우스트>에서 가져온 대로 ‘발푸르기스의 밤’이라 붙인 장의 제목으로 보면 두 사람이 나눴을 쾌락을 짐작할 수 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주인공은 마법사를 제압한 뒤 그 수하의 요녀 쿤드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떠난다. “어디로 가야 날 찾을지 알겠지?” 클라브디아의 “꼭 돌려줘야 해”는 “나를 찾아오라”는 말이었다. 히페가 오래전 예고한 것처럼.
다보스 포럼은 어쩌면 대중이 아는 수준의 글로벌 엘리트 사교 모임일지도 모른다. 만나야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면서, 정작 아무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일 뿐이다.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가자 지구의 분쟁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최근 몇 년의 포럼은 곧 회의적 시각을 불러왔다. <마의 산>은 7년 동안 다보스에서 내적 성장을 이룬 한스가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참전하기 위해 하산하는 것으로 끝난다. 결과는 알 수 없다.
마을에서 해발 2693m 바이스플루요흐까지는 궤도차가 운행한다. 눈앞의 수많은 설산은 넘어야 할 숙제처럼 다가옴과 동시에 여기까지 왔다는 충족감을 주었다.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