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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대한 이야기

ARTNOW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가의 신체를 통해 표현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린 〈닥쳐 자궁〉은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Reisa Shimojima)의 지극히 내밀한 개인사에서 비롯한 작품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 봄, 10대 후반이던 시모지마 레이사는 자신의 몸에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내 안과 밖에서 모두 대지진이 일어났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러한 예기치 못한 발견은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현대무용이라는 진로를 걷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21년 한국에서 초연한 〈닥쳐 자궁〉은 무용가이자 안무가로서 시모지마 레이사가 자신의 신체적 특성과 가족사에 대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알린 뜻깊은 작품이다. 초연에서는 무용가 3명, 30분 분량으로 구성한 작품을 이번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퍼포머 9명을 함께 무대에 올리고, 공연 시간도 60분으로 늘렸다. 안무가는 새롭게 무대에 올린 〈닥쳐 자궁〉에 대해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을 움직여 만들었다”고 말한다.

옴진리교와 적군파 등 극단적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광기와 순응, 압박을 다룬 2018년작 〈Sky〉. ⓒBozzo

1980년대 마츠야마 시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의 살인자인 후쿠다 카즈코에게서 영감을 받은 2021년작 〈Because Kazcause〉. ⓒ Kusamoto Toshie

무용은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몸을 주요 도구로 사용합니다. 무용가에게 자신의 신체는 어떤 의미를 지닌 대상인가요? 사람의 인생은 길어봐야 100년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인류가 세상에 처음 탄생한 순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 개인이 살아가며 알게 되는 것보다 사람의 신체가 품고 있는 기억 또는 지식이 훨씬 풍부할 거라 생각합니다. 머리를 써서 생각할 때보다 몸을 움직일 때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건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요? 제게 무용은 몸을 써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해 파악하는 수단입니다.
무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일곱 살 때 친구 따라 재즈댄스 교실에 갔는데, 별로 즐겁지 않아 구석에 혼자 숨어 있곤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재즈댄스 선생님이 지역 축제에서 단체로 추는 요사코이(よさこい)라는 전통무용을 가르쳐주었는데 그건 재미있더군요. 요사코이는 춤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사는 고장의 좋은 점을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주말마다 여러 도시에 가서 군무를 추곤 했는데, 춤추는 것도 즐거웠지만 담배를 피우며 춤추는 아저씨, 바닥에 앉아 술 마시는 아주머니 등등 복잡한 어른의 사정을 보는 게 왠지 좋았습니다.
요사코이는 지금 추는 현대무용과는 상당히 다를 것 같은데요. 가고시마 지방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시골이어서 여자는 때가 되면 시집가서 아이 낳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남자친구와 사귀고 있던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요사코이를 추는 건 즐거웠지만, 아이 낳으면 그만둬야 하는 일로 알았죠. 그런데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선천적으로 제게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 상식으로 알고 있던 것이 전부 거짓말 같았지요. 한편으로 현대무용을 공부하러 도쿄로 가는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신체적 특성이 무용가의 길을 열어줬다고도 볼 수 있겠군요.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못할 게 뭐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지’ 결심했습니다. 무대에서 어떤 짓을 하든 내 DNA는 여기까지일 테니까요.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공연한 〈닥쳐 자궁〉은 그런 신체적 특성과 연관이 깊은 작품입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건 제 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가장 제멋대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른바 결손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폭력적인 사람이었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막대한 빚을 남기고 가족을 떠나버렸죠. 그래도 그는 여전히 제 아버지입니다. 제 DNA의 절반은 그에게서 온 거니까요. 어쩌면 제가 자궁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버지의 DNA를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 의사표시가 아닐까요?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몸에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처음 알린 것도 지난 2021년 〈닥쳐 자궁〉을 한국에서 초연하면서였어요. 일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실이 지나치게 큰 화제가 될 것 같았고,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기도 싫었습니다.
2021년 초연한 작품을, 공연 시간을 60분으로 늘려 다시 선보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닥쳐 자궁〉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마치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킬 것 같은 기세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자궁이 없다는 건 후세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나도 바이러스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초연 당시에는 신체를 통해 그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몸을 움직이기에 앞서 머리로 생각해 논리적으로 안무한 거죠. 그래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머리보다는 몸을 주로 써보려고 했습니다.

시모지마 레이사가 창립한 무용단 케다고로의 2024년 신작 〈Yoga Kimi Berobero Kerberos〉. ⓒ Kusamoto Toshie

〈Yoga Kimi Berobero Kerberos〉는 그리스 신화 속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 Kusamoto Toshie

자신의 몸, 그리고 가족에 대한 지극히 내밀한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일 겁니다. 10대 후반에 제게 자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의사는 또 다른 이야기도 했어요. 제 몸속에 고환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죠. 검사를 해야 하고, 결과는 3개월 후에 알 수 있다고요. 그런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었고,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죠. 굉장히 어두운 시대였어요. 그동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제 내면에서도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제 외부와 내부에 모두 엄청난 충격이 몰아쳤고, 그 이야기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 〈닥쳐 자궁〉입니다.
초연 당시 무용가 3명이던 구성에 오디션을 거쳐 뽑은 퍼포머 9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전문 무용가보다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선정했다고요. 원래 일본에서 공연할 때는 전문 무용가와 거의 작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립현대무용단 무용가들과 함께한 〈닥쳐 자궁〉 초연이 이례적인 경우였어요. 전문 무용가보다는 다른 직업이 있으면서 춤도 추는 사람들과 주로 함께합니다. 2013년부터 게다고로(ケダゴロ)라는 무용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술 파는 분,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 옷 가게를 운영하는 분 등 다양한 세계를 가진 분들과 함께 일합니다. 무용 외에 다른 세계를 아는 분과 작업하는 것이 더 즐겁거든요. 무용가들은 단련된 몸으로 능숙하게 춤추지만, 밭을 가는 동작이라면 농부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댄서와 농부가 함께 무대에 오르면 어떨까? 어떤 화학작용이 생길까? 이번 공연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용가로서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저 스스로 프로페셔널 무용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프로페셔널 인간이 되고 싶달까요.(웃음) 인간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혼할 일도, 아이를 낳을 일도 없어 무대에서 언제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에너지로 춤을 추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겁니다.
스스로 댄서보다는 아티스트라고 여기는 건가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기보다는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뭔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궁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세계가 달리 보였거든요. 제가 그런 것처럼 관객들도 작품을 보고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언어적 소통과 무용처럼 몸으로 하는 소통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배가 고프다”라고 말하면 누구나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죠. 하지만 똑같은 표현을 몸으로 하기 위해 배를 손으로 문지르면 관객이 볼 때 ‘배가 아픈가? 임신했나? 뱃속에 에일리언이 있나?’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겠죠.(웃음) 무용이 재미있는 것은 관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런 게 신체 커뮤니케이션의 재미일 겁니다.
현대미술이나 연극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가 몸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있나요? 시인이자 영화감독, 극작가로 활동한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 1935~1983)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활동할 때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학생운동이 굉장히 활발하던 시기였어요. 예술가들은 시위나 운동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이야기를 표현했습니다. 데라야마 슈지가 젊은 시절 한 언더그라운드 연극 운동이 대표적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장소에 관객을 데려다 놓고 문을 닫은 후 못을 박아 나오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칠흑같이 어두운 데에서 조명 없이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연극을 하기도 했어요. 단순히 몸을 사용하는 방식보다는 예술이 사회와 만나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나요? 〈닥쳐 자궁〉은 여러모로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나라 무용수와 함께 일하는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으며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대만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의 무용가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시작점이기도 했죠. 그렇게 다양한 국적과 문화권의 아시아 출신 무용가들을 모아 무용 단체를 만들어서 새로운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문화적 충격을 극대화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거죠. 말하자면 컬처 쇼크 축제랄까요.(웃음)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전문 무용가가 아닌 케다고로 단원들의 격렬한 움직임을 강조한 2022년작 〈세월〉. ⓒ Kusamoto Toshie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시모지마 레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