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NGTH IN NUMBERS
상하이 미술 시장의 회복세와 여전한 잠재력을 보여준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2014년 시작부터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와 함께해온 웨스트번드 아트 센터 A홀 외관. 과거 비행기를 생산하던 공장을 복층 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Courtesy of West Bund Art & Design.
화이트큐브, 하우저 앤 워스, 가고시안, 리슨, 페이스, 알민 레슈, 타데우스로팍, 리만머핀, 에스더쉬퍼….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가 열리는 웨스트번드 아트 센터 A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다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글로벌 메가 브랜드의 부스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풍경은 그 이름값만으로도 자못 위압적이었다. 게다가 그 규모라니!
웨스트번드 아트 센터 A홀과 B홀을 비롯해 ‘디자인 딜라이트(Design Delight)’와 ‘드림 셴창(Dream 現場)’ 섹션이 열리는 웨스트번드 돔(Dome), 올 9월 쇼핑몰과 함께 개관한 전시 공간인 게이트 M 웨스트번드 드림 센터,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 특유의 미래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오빗(Orbit)까지 총 5개 전시장에서 열리는 올해의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살짝 과장을 더하면 각각의 공간이 웬만한 아트 페어를 유치할 수 있을 만한 규모였다. 룽텅 거리 남단에서 북단까지 황푸 강변을 따라 자리한 전시장들을 오가는 직선거리만 5km가 넘고, 옛 공장 지대의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골조를 그대로 노출한 페어 현장의 까마득히 높은 천장은 올해 아트 바젤 파리가 열린 그랑 팔레의 고전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경이감을 선사한다.
2014년 처음 열린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이 올해 11회째를 맞았다. 갤러리의 참가 신청을 받는 여타 아트 페어와 달리 ‘부티크 페어’를 표방하며 주최 측인 상하이 웨스트번드 개발공사의 초청으로만 부스를 차릴 수 있는 까다로운 규정과 중국 미술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은 프리즈나 아트 바젤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이름 없이도 빠른 속도로 아트 바젤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로 자리매김했다. ‘3월의 홍콩, 11월의 상하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상하이 미술 시장과 더불어 페어는 침체를 피하지 못했다. 첫해인 2014년부터 매년 페어에 참가해온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강소정 총괄 디렉터는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대단했죠. 2019년까지는 어떤 글로벌 아트 페어도 능가할 만한 열기였어요. 그러다가 팬데믹 이후 눈에 보일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는 중인 것으로 보여요. 아직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는 페어의 완연한 회복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트나우 차이나〉가 미디어 파트너로서 라운지 공간을 마련하고 이승구 작가의 ‘띵구’ 캐릭터 회화와 신작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Courtesy of West Bund Art & Design.

루이 비통은 공식 파트너로서 컬렉터 울리 지그, 작가 장충얼을 비롯한 60여 명의 게스트가 총 16회의 컨버세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웨스트엔드 보이스’를 개최했다. Courtesy of West Bund Art & Design.

‘드림 셴창’ 섹션에 설치한 중국 작가 리산(Li Shan)의 대규모 회화 작품 ‘Echo of Summer II’(2024). Courtesy of West Bund Art & Design.
11월 7일 VIP 오픈 이후 11월 10일까지 열린 올해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참가 갤러리 수가 170개에 달하지만, 5개 전시 공간에 나누어 배치한 덕에 관람 동선이 쾌적했다. 갤러리 부스 외에 기획 전시 섹션도 다양했는데, 드림 셴창은 올해 새롭게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의 전시 공간에 합류한 게이트 M 웨스트번드 드림 센터의 후원으로 40여 명의 작가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 전시장 안팎에 배치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퍼스펙티브(Perspective)’ 섹션에서는 다양한 국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기관의 전시를 선보이는데, 프랑스 국립 기메 동양미술관의 중국 조각가 장충얼(Jiang Qiong Er)의 설치 작품 ‘Guardians of Time’, 중국과 프랑스 아티스트 8인의 공동 작업을 통해 문화적 연결을 강조한 상하이 아이시클 아트 스페이스(Icicle Art Space)의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위의 두 전시는 프랑스와 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프랑스와 함께!(France is in!)〉의 일환이었다.
올해 6월 중국 정부가 웨스트번드 지역을 IT특구로 지정한다는 풍문과 함께 유즈 미술관, 샹아트 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등 상하이를 대표하던 여러 미술 기관과 갤러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곳을 떠나게 된 후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의 성패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페어의 1차적 대응 방식은 규모의 확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커진 탓일까? 페어 운영 방식에서 군데군데 엉성함도 엿보였다. 30분 간격으로 계획한 퍼포먼스는 대기하는 관람객에게 한마디 고지도 없이 연기되었고, 저녁 7시까지 20분 간격으로 페어장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고지된 셔틀버스는 5시가 지나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상하이가 속한 중국의 미술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 역시 그 규모일 것이다. 세계 미술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10만 달러 이상 고액 미술품 경매 총액이 전년보다 40% 이상 감소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지는 이 시기에도 중국 미술 시장은 상대적으로 하락세가 덜하다. 아츠 이코노믹스(Arts Economics)가 발행한 2024년 상반기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고액 자산가들이 구입한 작품 가격의 중간값은 9만4000달러로, 다른 지역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미술 작품 구입을 사치가 아닌 대대로 이어지는 문화의 계승으로 여기는 전통에 더해, 마치 한국이 그런 것처럼 최근엔 중국 시장에서도 컬렉터의 저변이 중산층과 젊은 세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요. 저희는 여전히 중국 미술 시장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강소정 총괄 디렉터의 말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는 샹아트 갤러리, 파워롱 미술관 등과 더불어 상하이 중심가 징안 지구에 자리 잡고 내년 재개관을 준비 중이다.

디자인과 예술의 융합을 표방한 ‘디자인 딜라이트’ 섹션에선 7개 브랜드와 갤러리가 가구와 조명, 주얼리 작품을 선보였다. Courtesy of West Bund Art & Design.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