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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면

ARTNOW

영상을 매체로 우리 사회를 반추하는 염지혜 작가.

염지혜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와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 송은아트스페이스의 〈송은미술대상전〉을 포함해 하이트컬렉션, 백남준아트센터, 두산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등 다양한 국내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프랑스, 아랍에미리트, 일본, 베트남, 홍콩, 브라질 등지에서 열린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벌써 연말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보통 1년에 1점 신작 작업을 진행해왔어요. 작업을 통해 사회 전반을 아우르며 질병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말 많은 작업을 했죠. ‘미친 듯이 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했습니다. 그때 영상 작업을 좀 쉬면서 회화에 몰두했거든요. 2015년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뒤로 한순간도 쉼 없이 앞만 보고 꾸준히 달렸는데, 조금 내려놓는 시기를 거치다 보니 전시를 앞두고 직격탄을 맞은 기분이에요.(웃음)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연례 전시인 〈2024 타이틀매치〉전 오픈을 앞두고 계시죠? 맞아요. 전시 이야기는 지난 2월부터 꾸준히 해왔어요. 그럼에도 직접 작업 전반에 개입하다 보니 더욱 바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시스턴트 없이 최대한 혼자 하고 있거든요. 물론 영상 촬영이나 리소스 구매 등 예산이 허락하는 범주 안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요. 〈2024 타이틀매치〉전에서는 영상 작품 2점과 함께 이전 전시에서는 선보인 적 없는 회화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어떤 주제로 작업하셨나요?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책을 보는데, 그녀가 서문에서 인용한 구절 하나가 마음에 탁 걸렸어요. “오늘이 마지막 밤이면 어찌하나”란 문장이었는데, 그 ‘마지막 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되었죠. 물론 종말론자는 아니지만, 작업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저 역시 마지막 밤에 대해 많은 상상을 해보게 됐어요.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 작업한 신작을 이번에 선보일 예정이에요. 정말 ‘마지막처럼’ 강렬한 장면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 Moving Image, 21min 37sec, 2015, SeMA Emerging Artist Grant, Seoul Museum of Art. © 염지혜.

심바이오플롯, Moving Image, 20min, 2020, Commissioned by Soorim Cultural Foundation and KIST, Korea.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오픈 스튜디오’ 전경.

작가님의 작품은 서울에 돌아와 2015년 선보인 것부터 신작에 이르기까지 쭉 하나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항상 불편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뉴스를 볼 때 화가 나는 소식이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어떤 현상 같은 것이죠. 예를 들어 ‘미래열병’이란 작품은 굉장히 오랜 시간 저를 놔주지 않은 지점들이 쌓여서 분출한 작품이에요.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활기를 띠면서 AI가 사람을 압도하기 시작했죠. 또 국내외에서 ‘미투 운동’도 벌어졌어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을 헤아리는 것은 물론, 제가 실제로 왜 불편한지 알아야 하니 리서치도 오랫동안 진행하게 되죠. 2016년부터 시작한 작품인데 세상에 펼쳐 보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품에 항상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작품에 대해 직접 설명하시는 경우는 많지 않고요. 작업이 언어로 설명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작가란 많은 시간을 들여 시각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던지는 사람이잖아요. 물론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작가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걸 설명하는 순간 많은 부분이 축약될 수도 있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잘못 전달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 같아요. 시각적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게, 그 설명을 빈칸으로 남겨두는 것에 더 무게를 싣고 싶어요. 그래서 10여 년 동안 작품을 꾸준히 만들었는데,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도, 사람이 조명을 받지도 않으니 아직 저를 젊은 작가로 여기는 분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웃음)
영상을 주 매체로 활용하는 작가로서 꼽는 영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전에 누군가 제 작품을 보며 “마라톤처럼 긴 호흡으로 들려줘야 할 이야기를 단거리경주 하듯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화면 하나에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림 그릴 때도 그 안에 아주 복잡한 이야기를 켜켜이 쌓은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영상을 접했는데, 자연스럽게 제 작업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저는 여느 영상 작가와는 달리 긴 호흡으로 이어가기보다 응축해서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해요.

에이아이 옥토퍼스, Moving Image, 16min 35sec, 2020, Commissioned by ACC, Korea. © 염지혜.

미래열병, Moving Image, 17min 10sec, 2018, Commissioned by MMCA, Korea. © 염지혜.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 Moving Image, 21min 37sec, 2015, SeMA Emerging Artist Grant, Seoul Museum of Art. © 염지혜.

주로 단채널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와도 맞물릴까요?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지금까지 작업을 마무리할 때 전시에 선보일 딱 한 피스만 남기고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한 작품으로 여러 베리에이션을 만들거나, 공간에 따라 다채널로 선보일 수 있게 하는 등 어떠한 전시 환경에서도 전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버전을 함께 구상하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아닌 거죠. 만약 제가 리서치에 이어 작업을 하던 중 이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또 하나 떠오른다면 다른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택합니다. 예를 들면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와 ‘검은 태양’ 그리고 ‘검은 태양 엑스’ 등이 저에겐 지속해서 전개하는 작업인 셈이죠. 그러니까 딱 그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편인 것 같아요. 결국 단독 작품으로 계속 연결되긴 하지만요. 감사하게도 그동안 신작 커미션 전시가 꽤 많았어요. 전시 공간에 맞춰 아예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겼죠. 몇 년간 계속 작업하다 보니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작품은 다시 보면 볼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있어요. 반대로 다시 보기 부끄러운 작품도 있죠. 현재는 선보이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작업 방식에 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초기에는 실사 촬영 영상도 많이 활용하신 듯한데, 점점 디지털 이미지로 만든 영상이 눈에 띕니다. 20대에 꽤 많이 돌아다녔거든요. 다른 나라와 도시, 혹은 오지를 찾아다녔죠. 그때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경험해보나’ 싶었어요. 예를 들어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이라는 작품은 실제 아마존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영상은 직접 찍은 푸티지, 파운드 푸티지, 그래픽 영상이 한데 섞여 있습니다. 당시 멋지고 이국적인 장면에 기대어 카메라를 꺼내 드는 걸 불편하게 느꼈나 봐요. 생각보다 많이 촬영하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푸티지가 믹스되기 시작한 거예요. 직접 컴퓨터그래픽스도 배웠고요. 그러다가 점점 작품 전체를 컴퓨터 이미지로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잖아요. 전체 작품을 모두 꺼내 흐름을 보면 저는 그렇게 큰 변화를 느끼지 않아요. 제 작품이라 그렇겠죠.
모든 창작은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맨 경험이 있나요? 창작은 고통스러운 일이란 말에 공감해요. 그럼에도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즐겁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란 생각도 들고요. 앞서 얘기했듯이 지난해에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한 뒤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하다 보니 영상 작업만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겠더라고요. 정말 어려워요. 즐거워서 그리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부분이 많거든요. 제 영상과 회화를 함께 보면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투영되나 봐요.
어떻게 보면 고양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이 휴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곧 선보일 전시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에 대해 살짝 귀띔해주세요. 그간 오랫동안 보여주지 않은 작업 방식을 선택했어요. 앞서 작업 방식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실사 영상이 주가 되는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색다르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으로 2채널 영상을 시도합니다. 지금까지 집중해온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했잖아요. 이번에 작가로서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2024 타이틀매치〉전에 함께하는 카운터 파트너인 홍이현숙 작가님의 작품과 어떻게 따로 또 같이 공명하는지도 기대해주세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