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슬리의 미술 사랑
미술계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시슬리 젊은 작가상이 한국에 출범했다.
세계 유수 브랜드가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 음악, 무용, 영화 등에서 받은 특별한 영감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다. 다만 후원 방식은 제각각인데, 특히 프랑스 뷰티 브랜드 시슬리의 진정성 어린 행보에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17년 시슬리는 문화 재단 트루아 생크 프리들랑(Trois Cinq Friedland)을 창립했고, 2019년 미술계 젊은 인재를 발굴해 활동을 지원하고자 파리 국립 고등예술원과 파트너십을 맺어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제정했다. 어느덧 5회째 진행된 이 상은 파리 국립 고등예술원 출신 수상자 5인(카롤리나 올젤렉, 이만 샤비-가라, 클레디아 푸르니오, 바르바나 보자치, 니나 자야수리야)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수상에 힘입어 세계적 갤러리와 계약을 맺고 미술 시장의 블루칩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역동성에 고무된 시슬리는 지난 11월 국내에서도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출범했다. 프랑스에서 성공적 운영에 힘입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발하는 방식을 취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브랜드와 비전을 공유하는 동시에 통찰력과 감성을 지닌 전문 심사위원단 10인을 구성했다. 심사위원장인 크리스틴 도르나노 시슬리 글로벌 부회장, 홍병의 시슬리 코리아 사장, 임민욱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니콜라 부리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곽준영 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노재명 아트 오앤오 대표, 박혜원 두산 매거진 부회장, 정일주 <퍼블릭 아트> 편집장, 손란 손스마켓메이커즈 대표 등 면면이 화려하다.

‘Para’, 2024. Photo by Hong Chulki
이들이 선정한 첫 번째 수상자는 곽소진이다. 영화와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2020년부터 현장 리서치와 수행적 촬영을 기반으로 한 비디오 작업, 오브제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오가는 다매체적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동과 휩쓸림 속에서 실현되는 정동적 감각에 집중하고, 멈춤과 단절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변적 실천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 까마귀 떼의 움직임에서 포착한 시간의 이미지와 그것을 정제한 물리적 방식을 교차한 영상 설치 작품 ‘검은 새 검은색’(2021), 팬데믹 기간 자신의 자동차에 장착된 대시보드 카메라가 맞닥뜨린 장면을 모은 영상 설치 작품 ‘Soul 1.6’(2021), 재귀반사(Retro-reflection) 소재로 만든 설치 작품 ‘충돌 커튼’(2022) 등을 발표하며 넓고 깊은 작품 세계를 형성 중이다.
최근 곽소진은 한일 작가 및 큐레이터와 ‘마당극 프로젝트’를 결성해 마당극이 전유되는 방식,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역사를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 첫 워크숍에서 먼 곳의 친구와 같은 리듬을 공유하는 입장단 연주회를 제안했는데, 서로의 호흡을 동기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몸을 상대방의 리듬이 통과하는 통로로 사용되는 경험을 유도한 것이다. 곽준영 심사위원은 이 프로젝트를 복잡한 주제를 탐구하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2024년 작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는데, 야행성 카메라와 야행성 공동체의 응시를 통해 우리를 마주 보게 하는 영상 작품 ‘휘-판’, 공중에서 떨어지는 낙하병과 낙하산 포장병의 관계에서 영감받아 타인을 향한 염려를 물질화한 퍼포먼스 작품 ‘Para’가 바로 그것이다. 윤혜정은 개인의 이야기를 보편적 주제로 매끄럽게 확장하는 작가의 능력에 주목했고, 니콜라 부리오는 독특한 주제적 관심과 탄탄한 형식적 기반을 작품에 반영하는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작가는 750만 원 지원금과 함께 2025년 상반기 서울 전시 개최라는 특전을 제공받는다. 시슬리는 앞으로도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통해 역량 있는 한국 작가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 이들을 알리는 문화적 가교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다.

한국 시슬리 젊은 작가상 수상자 곽소진.

트루아 생크 프리들랑을 운영 중인 시슬리의 파리 본사 전경.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시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