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ic Journey
샤넬이 지난해 한국에서 선보인 ‘아트 앤 컬처 프로젝트’의 모든 것.

2024년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 두 주인공이 협업해 제작한 화기와 받침대.
창립 이후 110여 년간 문화와 예술에 헌신해온 샤넬의 행보는 해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일부가 되어라”라는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의 바람에 따라 젊은 예술가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각 분야 아티스트의 재능을 장려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 중인 것. 국내에서도 예올, 프리즈, 리움, 부산국제영화제 등 문화 예술 분야의 주요 단체와 협업해 예술가를 후원하고 새로운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24년 한국 문화 예술계를 수놓은 샤넬의 활약을 짚어본다.

왼쪽 2024 예올ⅹ샤넬 프로젝트의 ‘올해의 장인’에 선정된 정형구 대장장이 제작한 철제 작품.
오른쪽 박지민 작가의 유리공예 작품.
공예를 향한 응원
샤넬은 전통 공예의 가치를 성찰해 새로운 미래 전통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재단 예올과 함께 2022년부터 한국 공예를 후원하는 특별 프로젝트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진행 중이다. 매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인 한 명과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젊은 공예인 한 명을 각각 선정해 작품 제작 및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3년째인 2024년 ‘올해의 장인’에는 대장장 정형구가, ‘올해의 젊은 공예인’에는 유리공예가 박지민이 선정됐다. 정형구는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장장이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숭례문 화재 복구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문화재 철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 국가유산 수리기능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박지민은 투명한 유리 속에 불에 닿아 그을린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추억을 기록해온 작가다. 두 사람의 프로젝트 결과물은 2020년 8월 22일부터 10월 18일까지 예올 북촌가에서 열린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사계절(四季節)로의 인도>에서 공개됐다. 미국 건축 매거진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100대 디자이너에 선정된 양태오 디자이너가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전시 총괄 디렉팅 및 작품 협업에 참여해 재료의 물성에 대한 관념과 편견을 재구성한 현대적 일상 도구를 소개했다. 금속 철판을 반복적으로 두드려 완성한 원예 도구, 한국 전통 꽃꽂이 방식을 재해석한 화기 등 생경하고 아름다운 철제 제품과 함께 그을음이 그려낸 추상적 패턴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유리 달항아리와 화병, 그릇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정형구 대장장, 박지민 유리공예가.
한국 현대미술의 연결 고리
현대미술을 향한 샤넬의 관심 역시 공예 못지않게 확고하다. 프리즈 서울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가를 조명해온 프로젝트 ‘나우 & 넥스트’가 대표적 예. 동시대 한국 아트 신을 대표하는 기성세대 예술가와 떠오르는 신진 아티스트를 한자리에 모아 시간과 연결성, 서울과의 관계, 급변하는 주변 세계 등을 주제로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비디오 시리즈를 통해 각 아티스트의 예술 세계와 철학을 조명해왔다. 세 번째 시즌을 맞은 2024년에는 총 3개의 영상을 공개했다. 7월에 선보인 첫 영상의 주인공은 신화와 기술, 지정학과 미래지향적 도상학을 아우르는 작업을 전개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과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초현실적이고 영적인 영역을 언어·미디어·자연과학 등과 연결하는 작업을 이어온 임영주 작가였다. 두 작가는 창작자로서 일상과 고민, 주변 환경의 영향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세계 어느 곳보다 특히 속도가 곧 화폐가 된 장소처럼 느껴진다”(김아영), “뭔가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임영주)며 아티스트의 작업에 도시 분위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9월, 프리즈 서울 기간에 선보인 두 번째 영상에서는 한지 조각에 색을 칠한 뒤 가장자리를 태우거나 서로 겹쳐 거대한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김민정 작가와 독창적 꽃 정물화 시리즈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로 가득한 시대에 회화의 표현 가능성과 시간적·공간적 차원을 탐구해온 김성윤 작가를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김성윤 작가는 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위치한 김민정 작가의 작업실에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눴다.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요소를 더하고, 오롯이 손으로 감각을 표현하는 두 작가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12월에 공개한 마지막 영상의 주역은 18세기 조선백자의 전통을 계승하는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박영숙 도예가와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얻은 영감을 서정적 텍스트와 키네틱 조형물로 표현하는 양정욱 작가였다. 하고 싶은 일,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물성 있는 재료를 묵묵히 쌓아 올리고 다듬어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두 작가의 영감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확장하는 미술관
2023년 말 샤넬 컬처 펀드가 리움미술관과 협업해 처음 선보인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 국내외 예술가·철학자·과학자 등과 함께 예술적 상상력으로 동시대 현안을 고찰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젝트로, 2026년까지 총 3년 동안 ‘생태적 전환’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기후 위기와 지속가능성, 생태학과 여성, 교육과 돌봄 등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생태 커뮤니티 에어로센(Aerocene)이 이끈 ‘에어로센 서울’ 프로젝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각국의 예술가, 활동가, 지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등이 모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공동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 커뮤니티가 한국에서 특히 눈여겨본 화두는 ‘기후 위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제작한 거대한 설치 작품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단연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다. 공중에 떠 있는 뮤지엄을 뜻하는 이 작품에 사용된 5000여 개 비닐봉지는 샤넬코리아 임직원과 서울 용산구 주민들이 직접 수집한 것이라 더욱 특별하다. 이와 함께 각 지역 미술관에서 개최한 ‘에어로센 백팩 워크숍’,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깨우는 포럼 등도 열렸다. 11월에는 ‘사이 어딘가에’라는 제목으로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흘간 이어졌다. 여성과 남성, 인간과 비인간 등 이분법적 경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19개에 이르는 강연, 퍼포먼스, 스크리닝, 토크, 워크숍 등이 진행됐다. 특히 개막일에는 시인 김혜순의 기조 강연과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세실리아 벵골레아의 퍼포먼스가 펼쳐져 큰 호응을 얻었다. 새로운 공동체 형성과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세계적 인사들의 흥미로운 견해를 마주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위쪽 ‘에어로센 서울’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 작품 ‘무세오 에어로솔라’.
아래왼쪽 샤넬 아트 & 컬처 글로벌 총괄 야나 필로부터 트로피를 전달받고 있는 까멜리아상 첫 수상자 류성희 미술감독.
아래오른쪽 박지민 작가가 디자인한 까멜리아상 트로피.
여성 영화인을 위한 상
지난해 샤넬의 활약이 두드러진 또 다른 분야는 바로 ‘영화’다. 2022년부터 아시아 영화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BIFF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를 후원해온 샤넬이 또 한 번 부산국제영화제와 뜻을 모아 여성 영화인의 지위를 높이고 그들의 문화적·예술적 기여를 알리기 위한 ‘까멜리아상’을 새롭게 제정한 것. 연출, 제작, 각본, 촬영, 미술 등 다양한 영화 산업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를 드높인 제작자 및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 상의 첫 수상자로는 류성희 미술감독이 선정됐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박쥐>, <암살>, <헤어질 결심> 등을 통해 영화의 미학을 이끌었고, 2016년에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아가씨>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최고 기술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벌칸상’을 수상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샤넬은 섬세한 감성으로 영화의 미학을 완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편, 자칫 감독과 배우에 의해 가려지기 쉬운 영화 제작 세계에서 위치를 확고히 구축한 그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2024년 10월 2일에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까멜리아상 첫 시상을 진행했으며, 10월 5일에는 수상자 류성희 감독과 함께하는 스페셜 토크도 열렸다. 까멜리아상 트로피는 샤넬과 예올이 공동 주관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에서 2024년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박지민 작가가 디자인해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