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디자이너
영원한 쿠튀리에 이브 생 로랑, 그가 창조해낸 위대한 패션 유산.

왼쪽 시그너처인 뿔테 안경을 쓴 이브 생 로랑의 포트레이트. @ Aku.ax archv
오른쪽 1961년 그래픽 디자이너 카산드라가 만든 이브 생 로랑 하우스 로고. @ Museeyslparis
생 로랑의 2024 F/W 맨즈 컬렉션 런웨이에 오프닝 모델이 걸어 나오는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파워 숄더 실루엣의 슈트를 입고 검은 안경을 쓴 모델이 생전 이브와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히 ‘이브 생 로랑의 귀환’이라 할 수 있었던 지난 컬렉션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1980년대 파워 드레싱을 바탕으로 클래식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이브 생 로랑에게 경의를 표했다.
프랑스 패션계 황태자, 스물한 살에 크리스챤 디올 수장이 된 천재 디자이너 등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재능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그가 디자이너로서 천재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인 1953년 파리 국제 양모 사무국이 주최한 신인 패션 디자이너 콘테스트에서 3등을 수상한 시점부터다. 이후 파리에 정착한 그는 앞서 수상한 콘테스트에 다시 출전해 드레스 부문 1등이라는 쾌거를 거두었고, 크리스챤 디올의 눈에 띄어 디올 부티크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게 된다. 1957년 무슈 디올이 세상을 떠난 뒤 하우스 후계자로 지목된 이브 생 로랑은 첫 컬렉션에서 밑단이 사다리꼴 형태로 퍼지는 아이코닉한 트라페즈(Trapeze) 라인의 드레스를 발표하며 재능을 꽃피운다.

왼쪽 생 로랑의 2024 F/W 맨즈웨어 컬렉션. © Launchmetrics/spotlight
오른쪽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르 스모킹’ 룩. @ Museeyslparis
1958년, 이브 생 로랑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난다. 든든한 조력자이자 연인이 된 피에르 베르제다. 첫 번째 디올 컬렉션을 공개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동반자의 길을 걷는다. 탁월한 안목과 비즈니스 감각을 지닌 피에르는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 설립을 도우며 그가 오롯이 디자인에 몰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지했다. 이브는 디올 하우스 사임 후 피에르와 함께 1961년 그의 이름을 내건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를 열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많은 디자인을 발표했다. 특히 그는 아티스트의 그림을 의상으로 재해석해 그만의 방식으로 존경을 표했는데, 1965년 피에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드레스로 재해석한 몬드리안 드레스가 대표 작품이다. 이 아이코닉한 드레스는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최고 컬렉션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영감받아 제작한 몬드리안 드레스. @ Museeyslparis
1960년 이후 유행의 상향 전파를 통해 하위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이 쿠튀르 하우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그는 1966년 ‘생 로랑 리브 고쉬(Saint Laurent Rive Gauche)’ 라인을 론칭했다. 당시 패션 하우스는 한 사람을 위한 맞춤복을 제작하는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변화의 흐름을 읽어낸 이브는 패션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위해 첫 기성복 라인 생 로랑 리브 고쉬 첫 매장을 오픈했다. 그리고 같은 해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팬츠로 된 턱시도 ‘르 스모킹(Le Smoking)’을 선보여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남성의 턱시도 슈트 디자인 코드를 바탕으로 여성의 신체에 맞게 변형한 디자인은 당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기존 보수적인 오트 쿠튀르 고객에게는 단 한 벌만 판매될 정도로 외면받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젊은 고객층으로 구성된 리브 고쉬 라인에서는 빠르게 판매되며 하나의 클래식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이브도 르 스모킹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칭했으며, 2002년까지 모든 컬렉션에 다양한 변주를 가미한 형태로 선보였다. 1966년에 발표한 디자인 중 최초로 시어 소재를 사용한 의상도 있다. 이브 생 로랑은 여성의 상체가 훤히 드러나는 파격적 디자인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으며, 그가 만들어낸 스타일은 지금도 패션계의 주요 트렌드로 대두된다. 안토니 바카렐로 역시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하며 시어 소재를 활용한 룩을 공개해왔다.
이브 생 로랑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생 로랑(Saint Laurent)>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과 재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그의 이면에는 오랜 시간 계속된 극도의 신경쇠약과 우울증이 존재했다. 하지만 패션에 대한 열정은 그가 끊임없이 디자인하도록 고무했고, 마지막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받는 디자이너가 되도록 이끌었다. 이는 1983년 생존한 디자이너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회고전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이브 생 로랑은 오늘날에도 놀라운 영향력과 수많은 아카이브를 통해 불멸의 패션 아이콘으로서 여전히 존재한다.
에디터 김유정(yj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