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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과 보테가 베네타의 두 번째 조우

LIFESTYLE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을 위해 보테가 베네타와 리움미술관이 다시 만났다.

피에르 위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 <리미널> 전시 전경. 사진: 레스(Less)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것 같은’ 어둠의 공간. 임신부의 배 모양을 본뜬 화석 형태 조각을 거쳐 전시장 안으로 발길을 옮기면 얼굴이 뚫린 전라의 여성이 스크린 속에서 방황하고, 수조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스크가 담긴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타카마사막에서 무덤 없이 발견된 해골 주변을 마치 장례 의식 치르듯 맴도는 기계들, 황금색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전시장을 맴돌며 발화하는 알 수 없는 언어, 원전 사고로 황폐화된 후쿠시마의 버려진 식당에서 어린 소녀 가면을 쓴 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원숭이 등 SF 소설 혹은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되는 작품이 여럿이다.
리움미술관이 올해 첫 전시로 현대미술의 고정된 형식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탐구해온 세계적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 <리미널>을 준비했다. 2월 25일부터 7월 6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베니스에 위치한 피노 컬렉션의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과 협업한 결과물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공개한 후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막을 올렸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비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전환해온 작가의 작업은 얼핏 난해하고 암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애정 어린 고찰이 스며 있다. “나는 이야기의 형태가 선형성을 벗어날 때 흥미를 느낀다. 역사를 넘어선 서사 밖 허구에 관한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혼돈을 지날 수 있게 해주는 여러 가능성의 투영이다.” 피에르 위그의 설명이다.

이디엄(Idiom)’, 2024~진행 중, 인공지능에 의해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목소리, 금색 LED 마스크. 사진: 토비아스 리스 피에르 위그, 푼타 델라 도가나 제공.

‘카마타(Camata)’, 2024~진행 중, 기계 학습으로 구동되는 로보틱스, 자기생성 영상. 피에르 위그, 갤러리 샹탈 크루젤, 메리언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리미널(Liminal)’, 2024~진행 중, 실시간 시뮬레이션,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피에르 위그, 갤러리 샹탈 크루젤, 메리언 굿맨 갤러리, 하우저&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라는 의미의 전시명처럼 각 작품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독립된 센서를 통해 주변 정보를 수집하며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또 하나의 생명체로 기능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제시해 관람객의 감각을 깨우고 인식을 확장하는 이 특별한 전시를 위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가 힘을 보탰다. 지난해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에서 열린 <리미널> 첫 전시와 연결된 후원이자, 2023년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에 이은 리움미술관과의 두 번째 파트너십이다.
1966년 비첸차의 장인들이 뜻을 모아 만든 보테가 베네타는 ‘베네치아 장인들의 공방’이라는 브랜드 이름에 걸맞은 문화 후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티스트들이 함께 작업하며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이탈리아의 전통과 베네토 지역의 풍부한 문화적 역사에 뿌리를 둔 정체성을 기반으로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춤, 인쇄 출판 등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와 협력해왔다. 전 세계 소규모 공방을 지원하고 여러 장인의 수공예품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는 ‘보테가 포 보테가스’, 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다차원적 시도로 ‘베니스 댄스 비엔날레’의 퍼포먼스 의상을 연출한 ‘베니스 댄스 비엔날레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 조르주 바타유의 잡지 <도퀴망>과 앤디 워홀의 <인터뷰> 매거진 창간호 같은 20세기 걸작을 재현한다는 포부로 2023년 론칭한 예술 잡지 <마그마(Magma)>를 후원하는가 하면, 2022년에는 ‘테라포르마 뮤직 페스티벌’의 파트너로서 역사적 정원의 미로를 복원해 무대로 꾸미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한 <리미널> 전시 오프닝 현장을 찾은 주지훈과 김다미.

피에르 위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감상 중인 손예진.

보테가 베네타는 이번 피에르 위그의 개인전 <리미널> 전반을 후원하는 한편, 작가와 협업해 지난해 베니스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작품 ‘이디엄’을 위한 의상을 제작했다. 브랜드의 근간인 장인정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색다른 미적 경험에 기여하고 있는 것. 독창적 미학으로 동시대를 사유하는 예술을 위한 미술관과 브랜드의 만남이 반가운 이유다.

<리미널> 전시 전경.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리움미술관, 보테가 베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