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와 아티스트의 공통분모
디지털로 이미지를 수집하고 매일 그리면서 이미지의 정치학을 연구하는 작가 노상호와 안과 의사이자 컬렉터인 손희진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공유했다.

컬렉터 손희진(왼쪽)과 작가 노상호(오른쪽)의 만남.
손희진 S 우리가 미술에 관해 얘기할 때 ‘계승하되 배반한다’라고 해요. 이전 것을 너무 계승하기만 하면 현대미술이 아니죠. 또 너무 배반하면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라고, 사후 50년 뒤에나 조명받기도 하잖아요. 요즘 젊은 작가는 굉장히 영리하게 그 경계에서 작업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가님의 작업 역시 저에겐 그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노상호 N 실제로 작업하고 한 5~6년 차가 되었을 때 깊이 생각한 부분이에요. 특히 배반하면서 계승한다는 말은 세대가 한 번씩 묶일 때 떠올리게 되죠. 예를 들면 저는 디지털에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것을 굉장히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에요. 그런 세대로 자랐다는 말을 뱉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닌 거죠. 그래서 작업을 설명할 때 처음에 이를 텍스트로 쓸 생각도 못했어요. 전시하거나 우리와 다른 세대를 살아온 작가, 큐레이터 혹은 관람객을 만날 때 느끼게 되는 거죠.
S 여러 매체를 쓰는 것도 사실은 관성에서 벗어나 어떤 내적 질서에 부합하는, 시스템 안에서 불안하지만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느껴져요.
N 롤모델, 아이돌이 있어도 제가 하고 싶은 방식이 있고, 저만의 전략이 있어야 하잖아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근원은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행위를 한단 말이죠. 작업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일도 해요. 그런데 그 일을 할 때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으니까 제 작품 활동이랑 연결 지어서 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처럼 안 보이면 어떡하지, 또 오해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이 가 닿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S 매체에 관해 좀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떤 작가는 하나의 매체에서 시작해 여러 매체를 시도하고, 또 어떤 분은 처음부터 여러 매체를 다루다가 하나의 매체로 좁히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판화에서 시작해 회화, 3D, 애니메이션 등 정말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여러 트랙으로 뻗어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N 지금은 아니지만 도망갈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작업에 흥미를 잃을까 봐 굉장히 불안했어요. 재미있게 하는 것이 작업의 원동력이라고 봤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면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늘 그 대안으로 다양한 매체를 오갔고, 그런 작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3D의 어떤 감각이 다시 회화로 넘어와 평면에 옮겨지고 또다시 3D로 넘어가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매체를 한정하지 않고 더 열어놔요. 그리고 저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있으면 배워봐요. 자연스럽게 작업에 활용해봅니다. 3D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작업해보고자 한 게 아니에요. 일단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S 그럼에도 저는 작가님의 드로잉과 회화를 제일 좋아합니다.
N 저도 제 드로잉과 페인팅을 가장 좋아해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오래 다뤄왔잖아요. 재능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문제보다는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는지에 달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페인팅에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드로잉이 제 가장 오래된 툴이거든요. 판화과 출신이니까요. 그래서 처음 페인팅을 시작했을 때 잘 못할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몇 년 하니까 그림이 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말해요. “그냥 지금 나아간다.” 영상도, 그래픽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작업해요. 완벽하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금은 내가 이만큼 할 수 있고, 지금 내 상태가 이러하니까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더 그레이트 챕북 3, 캔버스에 유채, 90.9×72.7cm, 2024.

〈노상호: 홀리〉 전시 전경. 2024년 2월 29일~4월 20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S 작가님의 작업은 그동안 꾸준히 미디어에서 출발해 완전한 혼합물로서 제시되어왔어요. 이는 일종의 구상적 작업이잖아요. 이를 보면서 정말 궁금했던 부분입니다. 작가님은 마음속에 떠오른 심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N 그 욕구는 저 역시 궁금한 부분입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어요. 직접적인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간접성, 그러니까 일종의 레이어가 있는 걸 선호하는 편이죠. 쉽게 말해 캔버스와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겁니다. 저는 디지털 언어와 그 방식에 맞는 매체를 사용할 때 감동을 받는 사람인 듯합니다.
S 그렇다면 디지털 화면에서 어떤 이미지를 가져올 때, 그 이미지를 올린 이의 의도가 있잖아요. 거기에 그것을 가져오는 작가님의 의도가 더해져 작품이 되고, 작품이 된 후 관람자에 의해 해석될 땐 또 다른 의도가 더해지죠. 여기서 “새로 그려야만 신작이 아니고 생각을 바꿔도 신작”이며 “전시란 전시 스스로를 전시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의 말이 생각납니다. 작가님도 이에 굉장히 충실한 것 같거든요.
N 일전에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할 때 드로잉 1000점을 크기가 제멋대로인 액자 1000개에 맞춰 잘라서 전시한 적이 있어요. 이런 파편화가 당연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디메이드와 다름없는 거니까요. 작가의 의도가 100% 전달될 수 있을까요? 작가 중에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 놓여야 한다는 것까지 컨트롤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제 작품을 가져가 어디엔가 놓는 순간, 그것이 다시 재맥락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어떤 컬렉터가 제 작품을 거꾸로 걸어놓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마저도 좋아요. 제가 더는 픽션을 쓰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요. 그림을 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생성되잖아요. 제 의도를 굳이 선명하게 전할 필요가 있을까요?
S 작가님에게 인터넷은 현실을 감각하는 일종의 기관인 셈인데, 이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인위적 공간이잖아요. 깨부수겠다고 해서 없애기엔 힘든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작업의 어쩔 수 없는 출발점이 되는 이 지점에 대한 의문이나 질문은 없나요?
N 옛날에는 인터넷이 정말 진보적인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웹 아트’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작가들도 이를 활용한 작업을 다양하게 전개했습니다. 지금 이 작업은 수명이 다했어요.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미 존재하는 곳에서 유영하며 소위 ‘아방가르드’가 불가능하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조금 뜬금없지만 AI 번역에 대해 말해볼까요? 모두가 이제 더는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 않을 거라고 예측할 때, 한 학자가 중요한 건 번역하려는 ‘태도’라고 지적했어요. 디지털 세상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거의 유사한 곳이라는 거죠. 이런 태도를 통해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된 이곳의 주 언어를 이루는 구조를 파악하고 싶고, 매체 훈련을 통해 나름 이를 깨부수며 나아가보고 싶어요.
S 그러고 보니 작가님은 AI도 다루셨어요.
N 그렇긴 한데 최근엔 흥미를 좀 잃었어요.
S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N 저는 AI가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로 가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AI를 만든 기업은 점차 오류를 줄이며 정답을 찾기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오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S 오류라는 것은 ‘참값’이 있어야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데 일전에 작업에 관해 말씀하실 때 ‘AI와 협업했다’고 표현하셨어요. 비인간 객체, 즉 하나의 주체로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사인 저에게 인간의 손가락이 6개인 것은 비정상적 형상으로 보여요. 아마 모두가 똑같이 볼 거예요. 그런데 AI는 그럴듯하게 그려내곤 하죠. 언뜻 소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참값과 함께 기계의 값에 관해 점점 더 고민해보게 되는 거죠.
N 사실 견해가 조금 달라요. 저는 AI를 객체로 인정하지 않아요. 먼저 SF 작가 테드 창의 말을 빌리면 현재 AI는 “고성능 통계 프로그램”일 뿐인데, 그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앞서 다른 매체를 사용해보면서 그 매체의 특성을 알아가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활용한 것처럼 AI도 저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거죠. 그런데 막상 사용해보니 오류가 보이고, 그 오류의 원인 중 ‘진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이 보였기 때문에 참된 의미의 AI라고 보기 어려웠어요. “중요한 건 목적과 태도”라고 테드 창도 말했죠. 이를테면 어린아이가 바다를 빨갛게 칠했다면 그 아이의 의도가 반영된 변형이지만, AI의 빨간 바다는 그저 잘못 출력된 ‘오류’라는 거죠. 그래서 목적과 태도를 보이지 않는 툴에 대해 정말로 우리가 객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S 이영하 작가가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고 역자 후기에 “과녁을 벗어난 화살이 끝내 명중하는 곳”이란 문구를 썼거든요. 가려고 한 곳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꼭 다다르는 모습이 어쩐지 작가님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무언가를 찾아가며 남긴 흔적이 다 의미가 있고요.
N 사실 저는 열린 마음으로 해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웃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 ‘꼭 해내 보이겠어’ 혹은 ‘되게 만들겠어’, ‘밀고 나가겠어’라는 마음보다는 유연하게 전환하죠. 그렇게 작업하기 때문에 저도 다른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기술이나 지식을 학습하면서 전문가의 대단함을 인지하고 팬이 되는 거죠. 조르주 바타유가 한 말이기도 한데, “말은 주문 같다”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어떤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이 되돌아오기 때문에 마법 같은 힘이 있다는 걸 믿어요.
S 그래서 작가님은 1년 365일 매일 그림 한 점, 한 달에 캔버스 하나를 완성하고 계시잖아요. 스스로 그런 약속을 하고 지키면서 작업의 원동력을 삼고 계시죠. 힘들진 않으신가요?
N 이제는 하루하루 정해놓은 일만 해도 너무 바빠요. 이전에 아라리오갤러리 〈홀리〉전을 준비할 때 시리즈 작업을 6개월 동안 준비했어요. 그런데 그때 365일 그리는 ‘The reat Chapbook’ 시리즈 ‘업무’에다 ‘홀리’도 그리고, AI도 만져보고, 3D 툴도 익히니까 너무 바쁜 거예요. 남들의 절반밖에 시간이 없는 기분이었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까진 견딜 수 있어서 그 약속을 전부 지키고 있는 거죠. 생각은 늘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러한 약속과 태도가 삶을 받쳐주니 바꿀 이유가 없죠.
S 삶에 또 작업에 작가님의 모습이 여과 없이 투영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스스럼없이 작품 활동을 ‘업무’라고 표현하는데도, 지금까지 대화 전반에서 또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 느껴져요. 이런 건 작가님을 직접 만나지 않고는 느끼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N 일전에 학생 중 한 명이 물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작업을 계속하냐고요. 그때 그래도 지속할 만큼 좋아하니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력은 다 계단식으로 늘어요. 그런데 일평생 지난한 과정을 오래오래 견뎌서 도약했다는 기분을 느낀 건 미술이 유일한 거예요. 그 감정이 너무 좋았어요. 또 한번 오래 참으면 그다음이 온다는 사실을 아니까 멈출 수 없는 거기도 해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안지섭(인물), 아라리오갤러리(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