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
루이 비통 트렁크의 용도는 비단 짐을 운반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친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렘과 모험,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적응하며 점차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매일 영감을 불어넣는 여행에 대한 소망을 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트렁크의 진정한 용도가 아닐까.

다양한 모양과 사이즈의 루이 비통 하드 트렁크. 위부터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해트 박스,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비스텐 65cm 사이즈, 푸크시아 컬러 에피 가죽 소재 알저 70cm,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알저 75cm 사이즈와 80cm 사이즈. 여기서 잠깐! 매우 흡사해 보이는 비스텐과 알저 모델의 차이점을 설명하면 비스텐은 내부에 트레이가 없고 알저는 트레이가 있어 알저의 높이가 비스텐보다 조금 높다. 모서리 부분의 메탈 장식 모양도 서로 다르다.
지난 6월 8일부터 8월 27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하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전시. 이를 통해 만난 루이 비통 트렁크의 2017년 에디션을 7월 중순 성북동에 위치한 가구 박물관에서 열린 VIP 행사를 통해 다시 한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에디터는 다채로운 소재를 사용한 다양한 용도의 트렁크로 채운 현장에서 다시 한번 감동하기 이전에 전시장에 진열한, 장인들이 손끝을 거쳐 열정으로 완성한 트렁크의 섬세한 면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내가 루이 비통 트렁크를 주문한다면 어떤 용도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루이 비통의 5대손 파트리크 루이 비통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트렁크에는 고유의 이야기가 배어 있다. 트렁크를 주문해 소유한 이들 그리고 트렁크가 태어난 시대를 통해 전해지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인지 트렁크를 활짝 펼쳐볼 때마다 마치 앨범을 들여다보는 듯하다”라는!

1 하드 프레임 여행 가방에는 놋쇠로 만든 자물쇠를 단다. 여러 개의 회전판을 장착한 자물쇠는 1890년 조르주 비통이 발명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
2 천연가죽 소재의 트렁크 핸들을 강화하기 위한 새들 스티칭 작업. 밀랍으로 코팅한 리넨 소재 실과 2개의 바늘을 사용하는 새들 스티칭은 아니에르가 자랑하는 전통 기술 중 하나다.
3 천연가죽 소재로 여행 가방의 모서리를 만드는 작업.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메종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아니에르 워크숍에서 제작한다. 1859년부터 1977년까지 100년이 넘게 루이 비통에서 운영해온 유일한 공방이다. 물론 이후 새로운 시장 개척과 다양한 제품 개발로 타 지역에 다양한 생산 시설을 구축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메종의 상징이다. 하드 프레임 여행용품과 스페셜 오더, 특수 가죽 제품과 패션쇼를 위한 리미티드 에디션 백을 여전히 이곳에서 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 사실 아니에르 워크숍은 1800년대 중반 루이 비통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탄생했다. 창립자 루이 비통은 브랜드 설립 4년 만에 윗면이 평평한 트렁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기존 공방보다 넓은 생산 시설이 필요해 아니에르로 옮긴 것.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찾는 마을이었을 뿐 아니라 센 강변에 위치해 근처 우아즈 계곡에서 채벌한 원목을 운반하기 쉬었으며, 파리 생라자르 역으로 연결되는 철로와도 가까웠다. 또 현대 기술에 대한 루이 비통의 열정을 반영해 빅토르 발타르와 구스타브 에펠이 당시 최초로 개발한 유리와 철골 구조를 채택했다. 자연 채광을 최대한 보장하는 특별한 구조는 장인들이 어떤 세밀한 작업도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했다.
이후 2005년 아니에르 워크숍은 1년여 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건축가 질 카르누아(Gilles Carnoy)는 역사적인 외부 구조를 살리는 동시에 현대적으로 개조한 내부를 자연스럽게 융화시켰으며, 첨단 조명과 전기, 온도 조절 시스템과 재봉기를 위한 압축 공기 시스템, 그리고 장인들의 편의와 업무 효율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구조의 작업 공간을 디자인했다. 더불어 1000㎡의 공간을 추가로 마련해 포플러, 너도밤나무, 오쿠메(okoume, 감람나무과에 속하는 아프리카산 나무) 등 하드 프레임 여행용품을 위한 목재와 캔버스, 가죽을 완벽하게 보관할 수 있는 특수 시설까지 갖추었다. 물론 이 안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워크숍에 도착했을 때와 장인의 손으로 넘어가기 전 두 번에 걸쳐 철저한 검사를 거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아니에르 워크숍의 작업 공간은 몰라볼 정도로 큰 변화를 거쳤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185명의 장인은 아직도 과거와 동일한 도구와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만든다. 특히 워크숍이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또 하나의 전통이 있는데, 바로 도제(徒弟) 시스템이다. 워크숍의 마스터 장인들은 도제의 교육을 담당하며 메종의 창조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잇고 있다.

슈즈, 의상, 향수, 주얼리, 화장품 등 담고자 하는 아이템에 맞춰 내부를 구성한 루이 비통의 다채로운 하드 트렁크 컬렉션. 오더메이드 서비스를 통해 소재, 크기, 내부 디자인까지 고객이 원하는대로 맞춤 제작이 가능하다.
19세기 이후 루이 비통은 수십만 개의 핸드메이드 트렁크를 만들었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어떤 트렁크는 다락방에 잠들어 있는가 하면, 어떤 트렁크는 박물관에, 또 다른 트렁크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트렁크는 정성스럽게 간직하거나 때로는 영원히 잃어버리기도 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소유물인셈! 다양한 용도로 제작한 루이 비통의 트렁크가 전하는 가치, 멈추지 않고 여행을 꿈꾸게 한다는 것이다.

4 액세서리 박스 쿠션감 있는 안감을 적용해 외부 충격에 약하고 사이즈가 작은 주얼리와 액세서리를 보관할 수 있다.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40×40×24cm.
5 슈즈 트렁크 & 향수 트렁크 슈즈 트렁크에는 총 8켤레의 슈즈를 보관할 수 있으며 각 보관함마다 오른쪽과 왼쪽 슈즈가 뒤엉키지 않도록 구분하는 쿠션이 있다. 67×34×21cm.
향수 트렁크는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제품을 보관할 수 있다. 들고 다닐 때 유리병의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단에 동그란 홈을 넣었다. 10.5×29.5×29cm.
하단의 하드 트렁크는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비스텐 70cm.

다미에 그라파이트 캔버스와 타이가 가죽 브랜드 창립 초기 트리아농 캔버스 소재의 트렁크를 출시하던 루이 비통은 모조품 방지를 위해 스트라이프 패턴을 선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모조품이 끊이지 않자 새롭게 개발한 패턴이 바로 체크무늬의 다미에 그라파이트로 이는 브랜드의 정통성을 잇는 패턴이다. 한편 타이가 가죽은 루이 비통에서 개발한 가죽, 침엽수림을 뜻하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거칠고 불규칙한 무늬가 특징이다. 둘 모두 남성적 매력을 자아내는 소재로 비즈니스맨에게 어울린다.

클래식한 모노그램 캔버스 브랜드 창립자의 이니셜을 딴 LV 로고, 꽃과 별 문양이 교차하는 모양의 모노그램 캔버스는 창립 이후 꾸준히 모조품과 전쟁을 치러온 루이 비통 역사를 집약해 보여준다. 그러니 루이 비통을 떠올릴 때 모노그램 패턴이 연상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듯.

경쾌한 에피 가죽 에피는 루이 비통에서 처음 소개한 가죽 라인이다(다미에 그라파이트와 모노그램은 캔버스 소재!). 특유의 가로무늬 결에서 오는 클래식함,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레드와 오렌지 등 비비드한 색감이 주는 화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에피 가죽 소재 뷰티 박스와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워치 박스.


손님의 방 멀티 컬러 모노그램 캔버스 알저 70cm와 80cm 사이즈, 뷰티 박스 35cm 사이즈, 해트 박스 40cm 사이즈 제품으로 채운 손님의 방. 한국의 전통 수묵화로 꾸민 병풍과 멀티 컬러 모노그램 캔버스의 조화가 은은하게 밝은 기분을 전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한국 전통 가구 모서리에 장식한 메탈 장식과 루이 비통 트렁크 모서리에 적용한 메탈 장식의 형태와 용도가 유사하다는 사실. 동양과 서양의 하이엔드 문화를 담아낸 제품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 같아 반갑다.

남자의 방 모노그램에 블랙 레더를 더한 모노그램 마카사 라인의 알저 70cm와 60cm 사이즈, 주얼리 박스, 슈트케이스, 해트 박스 40cm와 30cm 사이즈 그리고 다미에 그라파이트 캔버스 소재 알저 65cm, 70cm, 80cm 사이즈, 마작 트렁크와 게임 트렁크로 채운 남자의 방. 브라운과 블랙 등 중후함이 느껴지는 컬러 톤의 제품이 남성미를 부각시킨다.

여자의 방 다양한 크기의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알저와 슈트케이스, 에피 가죽 소재 50cm, 40cm 사이즈 해트 박스 그리고 악어가죽 소재의 시티 스티머 백을 디스플레이한 여자의 방. 레드 컬러 에피 가죽이 방 안의 포인트가 되어 여성스럽고 세련된 무드의 정점을 찍는다.


6 1924년 시암 왕국의 왕자 부라차트라 캄펭페치(Purachatra Kampengpetch)를 위해 만든 모노그램 캔버스 여행용 금고.
7 스페셜 오더 서비스는 고객이 디자인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메이드 투 오더와 커스텀메이드로 구분된다. 트렁크의 외부와 내부에 사용할 가죽의 종류와 컬러 모두 고객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8 루이 비통 하드 트렁크에는 페인팅 서비스를 통해 다채로운 컬러와 사이즈의 알파벳 이니셜을 새겨 넣을 수 있다.
‘고객의 어떤 요구도 최대한 만족시킨다’는 철학과 함께 발전해온 루이 비통의 스페셜 오더 서비스는 화려한 전통을 자랑한다. 전 세계를 누비는 탐험가를 위해 루이와 조르주 비통이 디자인한 전설적인 침대 트렁크부터 할리우드 스타 샤론 스톤을 위해 제작한 모노그램 화장품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우아하면서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고객들의 특별한 요구를 충족해온 것.
스페셜 오더 제품은 전통에 따라 아니에르 워크숍에서 루이 비통 가문의 5대손인 명장 파트리크 루이 비통의 지도하에 제작한다. 스페셜 오더 서비스는 메이드 투 오더(made to order)와 커스텀메이드(custom made)로 분류된다. 메이드 투 오더는 하우스의 컬렉션에 속한 제품 중 일부를 고객의 취향에 맞추어 새롭게 제작하는 서비스로 기존 버전과 다른 소재, 다른 컬러의 안감이나 마무리 등을 선택할 수 있으며,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 넣을 수 있다. 반면 커스텀메이드는 고객과 루이 비통이 함께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치고 장인들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간단한 소품부터 크고 복잡한 제품까지 정밀한 스케치와 섬세한 모델 제작을 통해 진행, 세계 유일의 아이템을 창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제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장인이 만들며, 제작 기간만 수개월이 소요된다. 물론 때로는 고객의 요청이 기술적 이유로 실현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루이 비통은 고객과 함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면서도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 하지만 스페셜 오더 서비스의 필수 조건은 어떤 제품이든 여행자의 정신에 걸맞게 고객의 소지품을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오늘날 이러한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 파트리크 루이 비통은 여행이라는 ‘이동의 문화’를 토대로 하우스를 설립, 외젠 황후가 가장 아끼는 여행 가방 제조업자로 성장한 루이 비통의 역사를 잇고 있다.

페인팅 서비스 루이 비통의 하드 트렁크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페인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니셜과 도형 등 고객이 원하는 그림을 넣을 수 있는데, 최대 트렁크 크기의 25% 정도로만 그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 장인의 의견. 과거엔 파리 아틀리에에서만 진행했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한국 장인이 아틀리에에 상주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에디터 서재희(jay@noblesse.com)
사진 정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