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진동하는 감각

LIFESTYLE

4월 12일부터 5월 31일까지 파운드리 서울에서 아나스타샤 코마, 에피 완이 리, 페르난다 갈바오, 도현희, 오묘초의 그룹전 가 열린다. 파운드리 서울의 첫 그룹전인 이번 전시는 인간과 자연, 기술과 감정, 과학과 신화의 교차점에서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지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왼쪽부터 도현희, ‘Scene of Senses 68’, 2025.
두번째 위 에피 완이 리, ’A Way Out of Turmoil‘, 2025.
두번째 아래 오묘초, ’In-vitro‘, 2023.
페르난다 갈바오, ’Astralis Embauba‘, 2025.
아나스타샤 코마, ’Archaea‘, 2023.

도현희 Hyunhee Doh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감각과 기억이 축적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한지를 통해 시각화하는 도현희. 물을 머금고 주름지며 흔적을 남기는 한지의 특성은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성장과 소멸을 거치며 변화하는 세포의 생명 역학과 닮았다. 한지에 분채와 아교로 색을 입히고 씻어내는 반복적 행위와 흡수도를 조절하고 물성을 변화시키는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은 흔적을 쌓고 지워내며 각 작품의 서사를 형성한다. 축적된 흔적은 경험적 감각과 정체의 변화를 물질에 담아내려는 시도로, 작품에 녹아 있는 특정 일대기와 시간은 작가의 자아 탐구적 시각에서 존재의 흐름과 해석을 대변하는 요소다. 일생 동안 체득한 감각과 기억은 자아의 축적물이자 변화하는 정체성의 단면으로 고스란히 각인된다.

에피 완이 리 Effie Wanyi Li
에피 완이 리 작가에게 신체는 감정과 사고를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이자 이들 간 관계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인식을 감각하는 장(場)이다. 불안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신체와 마음이 상호작용하는 섬세한 원리를 이해하며,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과 감각을 시각화한다. 최근에는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통증이 확산되는 신체의 과민 지점인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s)’에 주목해 촉발되는 긴장감과 그로 인한 균열, 변화를 화면에 풀어낸다. 색과 형태가 얽힌 복잡한 선율 속에서 작가는 신체 감각과 감정의 접점을 가시화하며 해소를 통한 회복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연약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흐름 속에서, 자기 인식은 곧 인간의 회복력이자 끊임없는 재탄생임을 일깨운다.

오묘초 Omyo Cho
오묘초는 생물학과 과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SF적 서사를 구축하고, 조각과 설치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2021년 뇌 과학자와 협업한 것을 계기로 기억의 전이와 대리 감각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2025년 SF 소설 <누디 헬루시네이션>을 집필하며 상상된 미래와 그 복잡성을 물질적으로 번안하는 시도를 해왔다. ‘바다달팽이의 기억 전이 실험’에서 영감받아 기억과 감정이 데이터로 유통되고 타인의 기억을 편집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미래 사회를 형상화한다. 글에서 조각과 설치로 가상의 비전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가는 유리와 금속을 재료 삼아 기억과 신체, 삶의 연약함과 지속성, 존재와 환경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페르난다 갈바오 Fernanda Galvao
페르난다 갈바오 작가는 생물학 탐구와 공상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 식물 생태계를 구현한다. 세포와 인간의 신체 구조, 동식물 같은 생물학적·해부학적 요소가 결합된 풍경은 해체와 재탄생의 서사가 담긴 장면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세포에서 발견한 우주적 이미지와 신비한 해양 생태계를 표현하며 깊은 푸른색이 이전 작업의 주된 색감인 분홍과 어우러져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비비드한 색감은 오일 스틱, 목탄, 파스텔의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질감과 어우러지며 생물의 유기적 구조를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상상 속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다양한 생태계 요소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작가 고유의 신화적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나스타샤 코마 Anastasia Komar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에 의해 새롭게 탄생할 생명체와 미래적 형상을 탐구하는 아나스타샤 코마. 그는 생물학과 기술 과학 연구, 신화적·역사적 참조를 융합하며 작업을 전개하는데, 짧고 생동감 있는 붓질로 구현된 아크릴 회화와 이를 감싸며 뻗어 나오는 정교하고 단단한 폴리머 조각을 결합한다. 자연 세계의 보이지 않는 구조와 유기적 흐름을 시각화한 회화와 그 외곽을 감싸는 난초, 뱀, 해양 생물 형상의 조각은 생명체 간 공생 또는 기생 관계를 상징하며 오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적 진보 속 트랜스 생태계의 단면을 통해 다층적 경험과 감정을 반영한 생명 윤리와 존엄성에 대한 내밀한 사유를 암시한다.

 

에디터 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
사진 파운드리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