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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삭스가 상상하는 우주의 모습

LIFESTYLE

미국 항공우주국의 우주탐사 계획을 재구성한 대표작 ‘스페이스 프로그램’ 시리즈 200여 점과 함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착륙한 아티스트 톰 삭스의 우주여행기.

3년 만에 한국에서 대규모 개인전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9 톰 삭스>를 열게 됐어요. 다시 온 서울은 어떤가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여러 번 와봤지만, 특히 이번에는 DDP가 위치한 동대문에 완전히 반했습니다. 제가 아티스트가 되기 전, 50여 년 전 뉴욕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도구, 재료 그리고 장인이 많기도 하고요. 만약 제가 지금 막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아티스트라면 서울을 베이스로 택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돌아갈 때 도쿄를 경유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계획을 취소했어요. 이곳에 며칠 더 머물면서 뭔가 만드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섬세함과 헌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은 것 같아요.
2007년 달에서 시작한 당신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여정은 화성, 유로파, 베스타를 거쳐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어요. 이번에는 우주탐사 미션 중 처음으로 항로를 수정해 새로운 우주를 탐구한 것으로 들었는데요. 새로운 우주 탐사 미션의 타이틀이기도 한 ‘무한대(infinity)’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가 만든 구조물이에요. 우리가 공유하는 이 3차원 안에서만 존재하죠. 그런데 다른 차원에서는 삶도 죽음도 없고,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저 ‘존재’만 있는 상태, 그게 제가 생각하는 ‘무한대’예요. 이번 전시에서 특히 ‘Faith’라는 작품은 그 무한대를 지탱하는 것을 다룹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개념을 이해하려는 시도죠. 사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플랫랜드(Flatland)>라는 책에 2차원 존재가 3차원을 이해하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도 4차원이나 그 이상의 세계를 상상조차 하기 힘들잖아요.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탐구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이스 프로그램’ 시리즈 신작을 포함해 200여 점을 망라했어요. 기발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가득한데, 이번 미션을 위해 새로 제작한 신작 몇 가지를 직접 소개해줄 수 있나요? 두 가지 주요 신작이 있어요. 하나는 앞서 말한 ‘Faith’입니다. 이 작품은 무한대를 탐험하는 동시에 ‘명성(fame)’이라는 개념을 다룹니다. 명성은 죽은 자에게 내리쬐는 햇살 같은 것이죠. 누구든 결국 죽고, 모두 먼지가 됩니다. K-팝 스타, 할리우드 배우, 인플루언서, 무명의 일반인까지 모두 평등하게 다룹니다. 또 다른 작품은 ‘현지 자원 활용(In Situ Resource Utilization, ISRU)’을 주제로 한 설치 작업으로, ‘보데가’로 불리는 구조물 안에 있어요. 여기에는 공기 중 수분을 모아 물을 만들어내는 워터 리클레이머가 설치돼 있고, 이 물은 작은 용기에 담겨 ‘성수’로 저장됩니다. ISRU는 화성 등 다른 행성에서 물과 공기, 연료를 현지에서 직접 확보하는 기술인데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지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탐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4월 25일 전시 오프닝 당일 전시장에서 장장 6시간 동안 아시아 최초로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을 진행했죠.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선 일종의 생경한 체험 같은데요.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우리 팀은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 ‘퍼포먼스’라는 말을 쓰면 1유로를 ‘레더페이스 벌금통’에 넣는 팀 규칙이 있어요. 관람객 입장에선 퍼포먼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정교한 ‘비행 계획서’에 따라 모든 단계를 차근차근 진행하는데 5시간이 될 수도, 8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원래 지루한 분야니까요. 이건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실제예요. 라이브 데몬스트레이션은 아주 느리고, 매우 정적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평온을 찾곤 해요. 우리가 하려는 작업의 의미와 핵심이 잘 담긴 인용문을 소개하고 싶네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남긴 말인데요. “인류가 번영할 수 있는 미래는 가장 빨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필요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세상이 광적으로 움직일 때, 우리는 속도를 비전으로 착각하게 된다.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땅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가속할 뿐이다.”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우주비행 관제센터(MCC)에 자리한 톰 삭스.

기자간담회 당시 팀원 모두 같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 제품이 9월 출시될 ‘마스 야드’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언급했죠. 나이키 마스 야드 시리즈는 당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 중 하나인데, 새로운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다니 기대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아직 밝힐 수 없는 내용이 있어 간략하게 소개할게요.(웃음) 오는 9월 초 출시 예정이고, 이전에도 그랬듯 수량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마스 야드 3.0은 앞선 모델보다 훨씬 무거워요. 미드솔은 새로운 리액트 폼 소재로 교체했고, 힐 카운터는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밑창에는 탄소섬유 플레이트와 고무를 추가해 더 튼튼하죠. 겉으로는 이전 모델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모든 몰드와 패턴을 완전히 새로 제작했어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작업을 거쳤죠.
당신에게 ‘우주’란 무엇인가요? 무한대 이후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나아갈 또 다른 우주가 있을까요? 사실 제가 다루는 ‘우주’는 우주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주를 통해 지구를 다시 바라보는 것에 관한 이야기예요. 수십억 개의 다른 세계가 어딘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는 그 확률이 매우 낮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우주에서 고립된 존재로 인식해야 해요. 우주로 가는 이유는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를 다시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주비행사들이 말하는 ‘오브 뷰 이펙트’처럼요.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국경은 없고,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매일 휴대폰을 든 채 플라스틱과 오염에 익숙한 환경에 살고 있어 자연과 분리된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수달이 돌로 조개를 깨는 것과 인간이 로켓을 발사하는 건, 기술이라는 면에서 크게 다를 게 없죠.
우주탐사 중 외계 생명체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요? 이 질문엔 좀 복잡한 감정이 있어요. 저도 저널리즘적 성향이 있어 “지갑 내놔!” 같은 농담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웃음) 그 뒤엔 사실 식민주의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어요. 역사적으로 지구에서 우리가 다른 세계로 갈 때, 항상 성경과 총을 함께 들고 갔잖아요. 그래서 만약 외계 생명체를 만난다면 무엇을 말하기보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 어려운 발전 단계를 극복했나요?”라고요. 우리는 지금 ‘원자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인간이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 즉 ‘인류세’에 있죠. 다른 세계를 탐험할 만큼 발전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할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단계를 무사히 넘겼는지, 아니면 파괴 이후 살아남은 건지 묻고 싶어요.
당신은 브리콜라주 기법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죠. 일상의 재료 중 가장 좋아하거나 선호하는 게 있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는 없어요. 모든 재료를 사랑하죠. 돌이나 석고처럼 다루기 어려운 것도 포함해서요. 제가 더 관심 있는 건, 재료를 숨기지 않고 그 자체를 드러나게 만드는 접근 방식입니다. 우리는 항상 페인트칠을 먼저 하고, 그 위를 잘라내 재료 내부를 보여주죠. 모든 재료를 다룰 때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해요. 반대로 디지털 프린팅이나 CGI, 챗봇 같은 기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거든요. 예술가의 작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지문을 작품에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작업할 때 그 지문을 더 크고 뚜렷하게 보여주려고 합니다.

왼쪽 우주 탐사 미션을 시작하기 전과 후,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복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에 선 톰 삭스.
오른쪽 우주 미션 발굴 현장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 ‘Dig Site’와 실제 무인 탐사 차량을 모티브로 제작한 ‘Rover’.

과학과 종교, 예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결국 핵심은 ‘믿음’이에요. 저는 종교를 믿진 않지만, 열렬한 과학 신봉자죠. 그런데 과학도 결국은 ‘믿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아무리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따지고 실험해도, 빅뱅 이전처럼 끝내 알 수 없는 영역은 종교와 다를 게 없거든요. 예술이나 마법도 마찬가지예요. 뭔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힘을 믿고 감동하잖아요. 결국 믿음이 있어야 희망도 생기고, 나아질 가능성도 만들어지는 거죠.
예술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먼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딱 맞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용기를 가질 수 있거든요.
당신은 예술가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죠. 그럼에도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바람, 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복잡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능숙하지만, 멈추는 것에는 늘 어려움을 느껴요. 어쩌면 ‘성과 중독’일지도 모르겠어요.(웃음) 하지만 예술가로서 제 진짜 목표는 ‘덜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시를 성공적으로 오픈했을 때도, 아무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무언가를 만드는 고요함 속에서 큰 평화를 느끼거든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냥 진흙을 만지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늘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번 전시의 관람 팁이 있다면?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어디를 봐도 괜찮습니다. 우주는 찻잔 속에도 있습니다. 현미경은 망원경이기도 하니까요.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