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bels in Our Arts
단 한 번도 순응의 삶을 산 적이 없는 아티스트 마르타 미누힌은 지금껏 내딛은 걸음걸음이 배반의 역사를 증명한다. 도시와 사회를 유영하며 다양한 예술 세계를 펼친 그녀를 통해 예술이 도시와 맺은 관계의 고리를 살펴본다.
1943년생인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ín)은 아르헨티나의 개념미술가이자 행위 예술가다. 그녀가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건 2017년 카셀 도쿠멘타 14에서다. 그녀는 독일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앞에 파르테논신전의 실제 크기를 차용해 길이 70m, 폭 31m, 높이 10m의 대형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를 구성한 것은 전 세계에서 금서로 지정된 도서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종교적 갈등, 난민 문제, 인종과 성차별, 폭력, 전쟁 등 전 세계를 둘러싼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바로 ‘책의 파르테논(El Partenón de los Libros)’이다. 미누힌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문화의 묘지(cultural cemetery)’라 일컬으며, 살아 있는 예술이 제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고 경고했다. 1960년대부터 관람객 참여형 예술, 퍼포먼스, 해프닝, 집단적 체험 등 시간성이 드러나는 일시적 예술(ephemeral art)을 실험해온 그녀는 예술을 ‘살아 있는 경험’으로 여겼다. 즉 그녀에게 예술은 기록되거나 보존되는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천이었다. 그래서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며 작업을 완성해왔고, 또 그들을 작업의 일부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은 그녀가 도시 공간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녀는 제도적 공간이 아닌 거리, 광장, 폐허처럼 역사의 숨결이 깃든 장소에서 작업을 펼치며, 도시 자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무대로 전환한다. 그렇게 역사를 단순히 회고하거나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와 마찰을 일으키는 장으로 재구성해왔다.
이는 초기 작품이자 첫 해프닝인 ‘파괴(La Destrucción)’부터 ‘혼란(La Menesunda)’과 같이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1965년 선보인 ‘달콤한 오벨리스크(El Obelisco de Pan Dulce)’도 마찬가지다. 해체 가능한 조형물을 만들어 예술 작품을 소비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고, 국가적 상징물의 권위와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면서 자신의 예술 철학을 견고히 쌓아 올렸다. 마르타 미누힌은 도시를 살아 있는 캔버스로 인식한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인 그녀는 다시 한번 도시를 예술로 물들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계획은 항상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계획은 항상 도시와 사람, 역사가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강렬한 시각 이미지와 정치적 ·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한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언제나 무의식이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준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책의 파르테논’을 떠올려볼 수 있어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사람들은 ‘생각이 담긴 책’을 갖는 것조차 두려워했어요. 다시 말해, 군사정권은 사람들이 ‘생각’ 자체를 갖는 걸 두려워하게 한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 ‘누군가의 검열로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의 ‘파르테논’이 떠올랐어요. 인류 최초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니까요. 그게 ‘책으로 파르테논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곧 작업을 시작했죠.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제 머릿속은 아주 강력하고 빠르게 작동해요. 저는 정치와 예술 사이의 균형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예술이 정치 위에 있다고 믿어요. 예술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바꿀 힘을 줄 수 있습니다.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을 선보인 커리어 초반과 지금을 비교할 때 예술가로서 관점이나 접근 방식에 변화가 있나요? 저는 늘 한결같아요. 마치 나만의 행성에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작업해왔죠. 시간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는 기분이 들어요. 대체로 저는 기존의 고정된 사고방식이나 폐쇄적 룰에 저항하는 편이에요. 이를 이미지나, 사람들이 직접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관람객 참여형 설치 작품으로 깨부수고자 하죠. 제 작업의 목적은 언제나 사람들이 예술과 함께, 예술 안에서 실제로 살아보게 하는 거였어요. 그것만큼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작가님의 예술적 실천은 해프닝이나 퍼포먼스에서 볼 수 있듯 종종 ‘덧없음(ephemerality)’을 수용합니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영속성(permanence)’은 어떻게 정의하나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일까요? 예술은 영원하다고 믿어요. 한번 사람들의 머릿속이나 기억에 들어가면, 거기서 계속 살아 숨 쉬죠. 제가 만들어온 거대한 규모의 일시적 작품을 보는 순간부터 그건 이미 분해되기 시작해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작품은 책으로 구성되어 누군가에겐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먹을거리로 구성돼 누군가의 간식이 되기도 하죠. 저는 해프닝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해프닝이란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그 상황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게 하는, 아주 미친 듯한 행동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순간적이고 덧없는 예술을 통해 그와 같은 즉각적 반응과 적응을 유도하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 요소입니다.
그간 작품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뤄온 듯하지만, 결국 검열과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가장 심각한 형태의 검열은 무엇일까요? 경제는 지금 시대에 가장 거대한 검열 방식 중 하나예요. 그리고 경직된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죠. 사고가 굳어 있으면 변화나 진화가 일어날 수 없어요. 결국 경제 시스템 역시 사람들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생각을 제한하는 검열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시각예술가보다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요. 1960년대 히피 문화에 영향을 받은 세대니까요. 그 시절엔 음악이 모든 것이었죠. 히피 시절엔 개인 작업을 잠시 멈추고, 모두 함께 드로잉도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을 완성했죠. 저는 시각예술가보다는 철학자나 시인, 록 뮤지션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시각예술가는 좀 더 개별적이고, 각자 자기 세계, 자기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아트나우〉 여름호는 특집을 통해 예술과 도시 그리고 역사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조명합니다. 지금까지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 수많은 대형 공공 설치 작품을 선보인 작가님이 상상하는 ‘도시 속 이상적인 예술의 형태’는 어떤 모습인가요? 도시는 그동안 정말 많이 변화해왔어요. 거리의 벽화부터 조각, 대형 설치 작품, 조각 공원, 건축, 건물이 된 조각까지, 이제 예술은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일체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죠. 제가 생각하는 도시 속 이상적인 예술의 형태는 아마 거대한 건물을 통해 구현할 수 있을 거예요. 현대사회에서 도시라고 하면 우리는 즉시 멋진 마천루를 떠올릴 수밖에 없죠. 건물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거나,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건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에요. 회화 작품이든, 태피스트리 작품이든, 어떤 형태든 제 작품으로 ‘오벨리스크’ 전체를 뒤덮는다면, 정말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경험일 겁니다. 지금은 도시의 건물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지만, 거기에 예술이 스며든다면, 그 도시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을까요?
도시 공간 속 공공 미술이 단순한 장식을 넘어, 시민과 의미 있는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도시 공간 속 공공 미술이 단순한 장식을 넘어 시민과 의미 있는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이 되려면, 일상에 강하게 개입할 수 있는 예술의 존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 앞에서 시선을 돌리고, 놀라움에 익숙해지게 하는 힘 말이에요. 저는 예술을 보기 위해 떠나는 ‘관광 여행’ 자체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아요. 단체로 이동하며 사진만 찍고 금세 떠나버리는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감정이 실제로 움직이지 않거든요.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순간을 ‘산다’는 느낌 없이 지나가버리니까요. 그래서 그런 식의 관광은 저에게 큰 의미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진심으로 예술에 관심을 갖고, 그 안에서 살며 예술에 대해 읽고, 혼자 전시를 찾아간다면,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그런 경험은 마음에 오래 남고, 삶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을 선물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이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기 위해선 ‘큰 개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공공 미술이 일상의 흐름을 잠시 멈춰 세우고, 감정을 건드리고, 도시 속에서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제 작품의 규모가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났고, 그곳의 산은 정말 거대했어요. 그런 자연처럼 예술도 크고 인상적이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만든 예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는다고 믿어요. 저는 경험의 힘을 믿고, 그것이 남길 영향을 사랑합니다.
오늘날 예술 소비는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 해프닝, 설치 작업과 같이 신체적 경험에 의존하는 예술가로서, 디지털화가 이러한 유형의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지털 세계는 냉동식품 같아요. 겉보기에는 모든 맛을 갖춘 듯하지만, 여전히 얼어 있고 정지된 상태죠. 모바일이나 컴퓨터 화면 속 이미지는 결국 멈춰 있는 이미지예요. 물론 디지털은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도 어느 정도 포함하긴 하지만, 그 방식은 결국 3차원적 감각을 깨뜨린다고 봅니다.
미래의 예술 소비는 어떻게 변할 것 같나요? 더 많은 대중이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게 될까요, 아니면 특정 그룹만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무엇으로 남을까요? 이제는 아트 페어 같은 장치 덕분에 누구나 예술을 감상하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더 이상 예술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죠.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쿠리만주토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