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트 캘린더를 다시 쓰는 도시
홍콩과 상하이의 시대를 지나 선전이 새롭게 떠오른다. 기술과 예술, 전략과 실험이 맞물리며 만들어낸 전례 없는 문화 생태계. 이제 ‘3월의 선전’에서 동아시아 미술의 새로운 계절이 시작된다.

쉐쑹 개인전 〈Meta Nature〉 전경. Courtesy of MOCAUP.
현재 아시아 미술 애호가들의 캘린더는 3월 아트 바젤 홍콩, 9월 프리즈 서울, 11월 상하이 아트 위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홍콩 일정을 며칠 앞당겨 선전까지 동선을 확장해보면 어떨까? 단순한 인근 도시 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미술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선전에서는 지난해부터 아트 바젤 홍콩 기간에 맞춰 아트 위크 선전(Art Week Shenzhen)이 열린다.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는 선전 미술관, 해상세계문화예술센터(SWCAC), 선전 현대미술관 · 도시계획박물관(MOCAUP) 등 69개 기관이 참여해 총 80여 건의 전시를 선보였다. 아트 위크 선전은 예상을 뛰어넘는 밀도와 속도로, 이 도시가 단순한 테크 허브를 넘어 동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선전은 실리콘밸리를 닮은 첨단 산업도시로, 싱가포르처럼 녹지와 계획된 도시환경을 자랑한다. 1980년대에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어촌에서 개혁 · 개방의 상징적 도시로 급성장했으며, 이제는 기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신흥 예술 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적 예술 교육기관이나 유서 깊은 미술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이런 결핍은 오히려 예술 실험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여백이 되었다.

2025 아트 위크 선전 개막식이 열린 해상세계문화예술센터(SWCAC) 현장. Courtesy of Art Week Shenzhen.
홍콩은 여전히 글로벌 자본과 자유로운 무역 환경을 기반으로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중국 본토화의 영향과 프리즈 서울의 부상 등 복합적 요인으로 과거의 독자성과 매력은 약화되고 있다. 반면 선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화의 중심부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문화 전략, 테크 자본 유입, 도시계획과 맞물린 공공 문화 플랫폼 구축을 통해 동시대 미술 실험의 허브로 부상 중이다. 2019년 시작된 웨강아오 대만구 개발계획은 선전과 광저우를 포함한 광둥성 9개 도시, 그리고 홍콩과 마카오를 하나의 거대 경제권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선전이 점차 홍콩의 국제적 역할을 대체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트 위크 선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정치적 · 문화적 상징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상하이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과 아트021 등 주요 아트 페어와 미술관 건립 붐을 주도하며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했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민간 미술관 중심의 운영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반해 선전의 MOCAUP는 공공 · 민간 · 상업의 ‘삼각 협력 모델’을 통해 자본 구조를 다변화하며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팬데믹 시기, 과감하게 예산과 역량을 집중해 애니시 커푸어의 대형 전시를 유치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단순한 전시 기획을 넘어 도시 전략, 문화 브랜딩, 실행 역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MOCAUP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도시와 예술이 교차하는 복합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5 아트 위크 선전 개막식이 열린 해상세계문화예술센터의 외관. Courtesy of Art Week Shenzhen.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선전의 갤러리와 미술관 역시 아트 위크 기간에 맞춰 연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를 선보인다. 올해 아트 위크에서는 중국의 주요 현대미술 작가들이 저마다 고유의 방식으로 회고전을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리산(Li Shan), 위유한(Yu Youhan) 등 중국 동시대 미술 1세대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사를 펼치며, 그들의 예술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속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단연 돋보인 전시는 쉐쑹(Xue Song)의 회고전. 정치적 팝아트의 주역으로 출발한 그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실험을 거쳐 도가 철학에 기반한 동적 추상의 미학을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그 여정을 응축해 보여주었다. 그는 단지 유행을 주도한 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진정한 거장의 자리에 다가서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특히 이번 전시가 도시계획 기능이 통합된 MOCAUP에서 열렸다는 것은 중국 동시대 미술 실험이 더 이상 베이징이나 상하이에만 머물지 않고, 선전이 새로운 무대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왼쪽 위 선전 현대미술관 · 도시계획박물관 (MOCAUP)의 내부 모습. Courtesy of MOCAUP.
오른쪽 위 쉐쑹, ‘The Dao from Nature Series – Bamboo’, 2021. Courtesy of MOCAUP.
아래 선전 현대미술관·도시계획박물관의 외관. Courtesy of MOCAUP.
‘3월의 홍콩’이라는 공식은 이제 ‘3월의 선전’과 함께 기억해야 한다. 기술과 예술, 전략과 실험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이곳 선전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실험실이자 그 미래를 가늠할 관측 지점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최근 중국 컬렉터들의 취향은 점차 내향적이고 자율적인 방향으로 옮아가고 있다. 한때 정치 풍자의 팝아트로 대표되던 중국 현대미술은 이미 중심에서 멀어졌으며, 그 유행이 자율적 미감이 아닌 서구의 시선에 부응한 ‘타자화된 중국다움’의 산물이었음을 이제야 되짚어보게 된다. 오늘날 중국 컬렉터들은 자신의 감각에 기반한 선택을 통해 문화적 자신감을 점차 회복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오랫동안 미온적이던 한중 미술계의 교류 또한 온도를 달리하며 새로운 가능성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성공 모델이 되었지만, 현대미술은 그 흐름에 아직 완전히 편입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중국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유효한 파트너다. 선전의 등장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의 경계를 넓히는 하나의 실천이다. 서울을 바라보는 중국 미술계의 시선 역시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예술의 미래는 더 이상 ‘어디서 거래되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어디서 창작되고, 누구에 의해 소비되는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서울, 홍콩, 선전. 이 세 도시는 지금, 동아시아 미술의 미래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경쟁을 넘어 동아시아 미술 생태계의 새로운 상상과 그 실현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조혜정(예술학자,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초빙교수)
에디터 조인정(ijcho@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