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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위에 예술을 입히다

ARTNOW

신안군의 크고 작은 섬에 미술관과 박물관을 지어 지역민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1도 1뮤지엄 프로젝트가 세계적 아티스트의 참여를 통해 주목받고 있다.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 ‘숨결의 지구’로 들어가는 입구와 외부 전경. © 2024 Olafur Eliasson.

1000개가 넘는 섬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신안갯벌로 이루어진 전남 신안군. 그토록 특별한 자연환경에도 지방 소멸 위기 1위라는 기로에 서 있었으나, 지난 2년간 기적 같은 인구 증가를 기록했다. 2019년부터 신안군은 인프라를 개선해 주민의 편의를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초청한 해외 작가는 올라푸르 엘리아손, 제임스 터렐, 앤터니 곰리를 비롯한 세계적 거장으로 각각 하나의 섬에 건축, 설치 작품을 세운다. 도초도에 가장 먼저 완공한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는 작가와 지자체가 6년간 연계해 작업한 끝에 지난해 말 대중에게 공개하며, 1도 1뮤지엄 프로젝트의 상징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환경과 사회, 신체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는 관람자가 진입할 수 있는 벽, 천장, 바닥의 경계가 없는 지름 8m의 구형 구조물을 선보였다.
앤터니 곰리는 비금도에 작품을 설치한다. 자신의 신체를 소재로 캐스팅하며 명상을 수행하기도 한 그는 조각으로 인류 보편의 신체를 끌어내며, 신체가 장소로 정의되면서 자연 혹은 종교적 의미와 공명하는 예술 세계를 탐구한다. 비금도 원평해변에 설치할 신작 ‘엘리멘털(Elemental)’은 썰물 때 관람자가 그 내부를 걸을 수 있는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영국 게이츠헤드에 설치한 그의 작품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가 도시 재생의 성공적 사례로 잘 알려진 만큼 주요 작가로 초청되었고, 작가는 직접 신안을 찾은 후에야 비로소 협업에 응했다고 한다. 작품의 개념과 맞지 않으면 거액의 제안도 마다하는 것으로 알려진 작가의 선택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지하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준다.

7개의 대형 큐브로 이루어진 안좌도의 ‘플로팅 뮤지엄’. 5개 큐브 공간에는 야나기 유키노리의 작품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 신안군.
아래 세계 최초 그라피티 예술섬으로 ‘위대한 낙서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압해도. 포르투갈 작가 빌스(Vhils)의 700번째 작업으로 신안군의 염전과 여성 노동자를 모티브로 했다.

이어 한국과 연이 깊은 제임스 터렐은 무인도 노대도에 ‘스카이스페이스 (Skyspace)’를 포함한 9점의 작품을 전시, 공간에 빛을 그리는 작업으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 옆 자은도에서는 리움의 고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마리오 보타, 조각의 성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이 함께 인피니또 조각미술관을 만들었다.
김환기 작가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는 세계 최초의 수상 미술관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큐브형 건축이 4면으로 수면을 반사하며 목가적 저수지 위에 생경한 아름다움을 드리운다. 신안군의 섬들과 하얗고 네모난 천일염의 형상을 모티브로 이누지마섬을 예술섬으로 재탄생시킨 일본의 현대미술가 야나기 유키노리가 디자인했다. 작품 구성에도 관여하는 그는 초국가적 주권과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 민족주의를 다루며 전후 일본 사회와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과거와 현대의 소통으로 잃어버린 것과 지속 가능한 것을 고민하는 그의 철학이 깃든 이곳에 담아낼 전시가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은 이승미 예술감독은 세계적 거장들의 참여도 큰 역할을 해내지만, 무엇보다 작은 단위의 마을 미술관들이 사업의 요지임을 밝혔다. 폐교가 미술관이 되고, 소금 창고에 소금박물관을 짓는다. 둔장마을미술관은 50년 전 마을 청년들이 직접 지은 최초의 마을회관이었다. 이런 고유의 역사성이 살아 있는 지역의 미술관들이 전통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 아름다움을 대중과 나누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 과정에서 주민은 폐교와 마을 창고 등의 공간을 군에 제공하고, 직접 그 활용도에 대해 상의하고 예술가의 도움을 이끌어내며 참여자를 넘어 주체로 활동하게 된다.
신안군은 이러한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적 예술가들을 신안의 섬으로 초청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고, 또 소규모 지자체로서 과감한 규모의 공공 미술 투자였을 것이다. 군청 직원들은 2018년부터 끈질기게 작가들에게 연락했고, 어마어마한 예산은 국고보조금과 지방소멸대응기금, 특별교부세 등을 총동원했다. 1도 1뮤지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해온 박우량 전 군수는 섬사람으로서 ‘품격과 자부심을 자아내는’ 곳으로 섬을 가꾸어나가기 위해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새롭게 도약하고자 도전하고, 그것을 일구어내며 한국의 또 다른 문화 자산이 되어가는 신안군에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이미솔
에디터 정희윤(heeyoon114@noblesse.com)
사진 신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