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낭만의 접점에서 만난 랄프 로렌
고전과 현대, 낭만과 절제, 거침과 우아함 사이를 유영하며 피어난 랄프 로렌 2025 가을 컬렉션.

긴장감 속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랄프 로렌 2025 가을 컬렉션 쇼 피날레.
랄프 로렌은 공식 패션 일정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쇼를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랄프 로렌 컬렉션 쇼는 대부분 특별한 이벤트로 여기곤 한다. 지난 4월 중순, 뉴욕의 새로운 갤러리 허브로 떠오른 트라이베카에 들어선 잭 셰인먼 갤러리에서 열린 2025 가을 컬렉션 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 이번엔 조금 달랐다. 그동안 주로 저녁 시간대에 진행되던 형식에서 벗어나 2025 가을 컬렉션은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도심의 낮 시간에 공개했다. 1898년 보자르 양식(Beaux-Arts, 대칭성과 장식성을 강조한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한 고전주의 기반의 건축양식)의 은행 건물을 개조해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이 갤러리는 최근 닉 케이브의 전시로 주목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매혹적인 무드의 룩과 대비되는 이 공간은 이번 랄프 로렌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인 ‘아름다운 긴장감’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했다. 특히 모던한 외관과 대조를 이루는 흰색 대리석 기둥과 몰딩 처리한 우아한 격자형 천장은 컬렉션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또 고현정, 앤 해서웨이, 나오미 와츠, 미셸 윌리엄스, 세이디 싱크를 비롯한 셀러브리티들이 세련된 랄프 로렌 컬렉션을 입고 참석해 현장을 빛냈다.
이윽고 음악이 울려 퍼지자 빈티지 느낌의 캐멀 컬러 레더 재킷과 러플 셔츠, 하이웨이스트 벨트, 라이딩 부츠, 긴소매 드레스 등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색감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계단을 따라 우아하게 등장했다. 이번 컬렉션은 시대를 초월한 자신감과 구조적 미학에 초점을 맞췄다. 화이트 자보 셔츠는 블랙 스웨터, 팬츠와 함께 스타일링했고 프릴 장식 셔츠는 안감 없는 캐시미어 랩 코트 또는 빈티지에서 영감받은 수작업 디스트레스 처리된 항공 재킷과 매치되어 도시적 세련미와 감각적 대비를 선사했다. 이번 시즌은 특히 17~18세기 복식에서 차용한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점이 두드러졌다. 레이스 러플 셔츠는 슬림 팬츠, 가죽 오버니 부츠와 함께 스타일링해 고전적 댄디 룩에 드라마틱한 무드를 더했고, 레더 뷔스티에와 캐멀 스커트는 프릴과 대비되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다.
텍스처의 다채로움 또한 이번 시즌을 정의하는 요소였다. 가죽에서 스웨이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그러데이션 효과를 준 재킷을 시작으로 벨벳과 실크, 레이스, 다크 플로럴 프린트 등은 각기 다른 질감을 강조하며 룩에 볼륨과 깊이를 더했고, 순백의 레이스와 어두운 플로럴 패턴, 몸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드레스와 언컨스트럭티드 슈트는 부드러운 곡선과 텍스처의 대비로 시각적인 흥미를 자아냈다. 한편, 수공으로 비즈를 엮은 플로럴 메달리온 샘플러 스웨터는 1980년대 광고캠페인에서 크리스틴 홀비가 착용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되살렸고, 레이스와 실크 니트로 구성한 홀터넥 드레스는 구조미와 섬세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액세서리 역시 주요한 시각적 장치였다. 프리폴 시즌에 처음 등장한 오버니 부츠 ‘바넷(Barnet)’과 이번 시즌 새롭게 선보인 카우보이 스타일의 앵클부츠 ‘퀸(Quinn)’, 그리고 랄프 로렌의 고성능 클래식 자동차 컬렉션에서 영감받은 ‘더 랄프 사첼(The Ralph Satchel)’ 백은 각각 실용성과 절제된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전체 룩에 완성도와 생동감을 부여했다.
이브닝웨어에서 전통적으로 화려함을 강조해온 랄프 로렌은 이번 시즌 비즈와 스팽글 사용을 줄이고 보다 절제된 로맨틱함을 선보였다. 특히 등 부분의 드라마틱한 디테일이 관능미를 자아낸 블랙 레이스 자보로 포인트를 준 아이보리 벨벳 홀터 드레스와, 피날레를 장식한 모델 모나 투가드의 오프화이트 태피터 셔츠 드레스는 레이스 디테일과 함께 이번 컬렉션의 주제인 ‘더 모던 로맨틱스(The Modern Romantics)’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룩이었다.
랄프 로렌은 이번 컬렉션을 통해 복식사적 레퍼런스를 현대적 감각으로 정제해내며 브랜드 고유의 아메리칸 헤리티지와 장인정신을 새롭게 부각했다. 우아함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남성성과 여성성, 투박함과 세련됨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긴장감’ 속에서 독립적 미학을 구현한 것. 60년 가까이 뉴욕을 대표해온 패션 하우스로서의 정체성과 조형적 완성도가 고스란히 담긴 이번 컬렉션을 통해 낙관주의와 우아함에 대한 미스터 로렌의 탁월한 비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에디터 유은정(ejyoo@noblesse.com)
사진 랄프 로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