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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ARTNOW

음악과 공간,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청중을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초대하는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7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특별한 음악 여정이 될 것이다.

2018년 음반 〈Nightfall〉은 드뷔시와 사티, 라벨 등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피아노 독주곡을 통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바야흐로 음악을 ‘공간’으로 인지하는 시대다. 특정 무드나 장소를 떠올리도록 겨냥한 플레이리스트가 각광받고, 음악에 시각적 터치를 더하는 아티스트가 인기를 끈다. 클래식 음악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 선두에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가 있다. 사라 오트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18세기 낭만주의 작곡가의 작품이 흐르고, 눈 덮인 광활한 대지로 화면이 전환된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라는 키워드로 건축과 음악을 연결하거나, 때론 클럽에서 거대한 미디어 아트에 둘러싸여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연주 레퍼토리에 대한 접근 방식도 과감하다. 이러한 사라 오트의 특별 공연은 또다시 그 장소에 머무른 모든 이가 함께 경험한 ‘공유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그녀는 ‘듣는 행위’를 중심으로 가상과 현장을 오가며 지극히 사적인 방향으로, 집단적 방식으로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창조해낸다. 애플 뮤직 클래시컬 글로벌 차트 1위 아티스트, 5억 회가 넘는 음반 스트리밍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은 결국 동시대 리스너들이 원하는 바를 꿰뚫은 결과다. 샤프한 단발머리에 컬러풀한 매니큐어, 볼드한 액세서리를 매치하고 맨발로 무대에 오르는 사라 오트. 전통을 벗어나 자신만의 진정성을 표현하려는 그녀의 태도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일본계 혼혈로 태어난 알리스 사라 오트는 5세에 뮌헨 청소년 콩쿠르 결승에 오르고, 12세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 입학하는 등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긴 웨이브 머리를 하고 또렷한 음색의 낭만주의 음악으로 세계적 커리어를 쌓더니, 점차 동시대적 감각을 겸비한 시대의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2019년에는 근육이 마비되는 다발경화증 발병으로 활동을 멈췄다가 복귀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지난 2021년 내한 무대에서 다발경화증이 발병한 왼손으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가 올 7월 다시 한국을 찾는다. 작곡가 존 필드와 베토벤을 큐레이션한 솔로 리사이틀로, 음악과 공간 그리고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라 오트의 매력을 느끼기에 제격이다.

알리스 사라 오트. 무대에서 맨발로 연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Hannes Caspar.

18세기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의 녹턴(Nocturne, 야상곡)과 베토벤의 음악을 교차해 연주합니다. 두 작곡가는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스타일과 배경은 매우 다르죠. 존 필드의 녹턴을 연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솔직히 그의 이름만으로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함께 연주할 작곡가를 고민했죠. 모차르트, 하이든, 리스트 등이 떠올랐지만 결국 필드의 음악을 탐구하는 내내 계속 머릿속을 맴돈 베토벤을 선택했어요. 단순히 동시대에 산 작곡가라든지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는 사실을 넘어,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대조적인 이들의 음악 언어에서 뜻밖에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죠. 이를 음악적 · 감정적 · 역사적 맥락에서 나란히 놓고 보는 작업은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관객과 이런 연결점을 나누고, 그 여정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요. 올해 존 필드의 녹턴 전곡 연주 음반을 발매했죠. 녹턴은 필드가 창시한 장르임에도, 정작 그의 작품은 잘 연주하지 않는 편이에요. 존 필드의 녹턴을 처음 접한 건 팬데믹 록다운 기간 중이었어요. 다양한 녹턴을 모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던 중, 우연히 희귀한 전곡 녹음을 발견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중 어느 한 곡도 알지 못하더라고요. 제 음악적 성장 과정에서 전혀 접해보지 못한 음악이었죠. 신기한 건 분명 처음 듣는 곡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하고, 마치 어린 시절 듣던 멜로디처럼 향수를 자극했어요. 곧 그의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전곡을 배우고 싶어졌죠. 필드의 녹턴은 겉보기엔 단순한 듯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주 섬세한 놀라움이 숨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화성 전개, 불규칙한 리듬, 절제된 구조적 전환…. 슬픔, 그리움, 기쁨을 자주 터치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위안이 되는 무언가가 존재해요.

2023년 발매된 〈베토벤〉 음반을 위한 프로모션 이미지. 피아노협주곡 1번과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등이 수록되어 있다. © Andrew White

녹턴 2번의 뮤직비디오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디스토피아 게임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콘셉트는 필드의 음악에선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조합인데요. 필드의 녹턴은 각 곡이 고유한 성격과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녹턴 2번은 일본의 민속음악이나 1970년대 대중가요를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멜랑콜리가 담겨 있죠. 그런 음악은 무엇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적 풍경을 그려내는 특유의 서정이 있어요.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는 제가 좋아하는 게임 ‘스트레이(Stray)’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고양이가 로봇만 존재하는 디스토피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그중 네온사인이 반쯤 꺼진 콘크리트 도시 장면이 나옵니다. 왜곡되고 어긋난 간판 사이, 그 흐릿하고 불균형한 느낌이 제가 만들고자 한 분위기와 맞닿아 있었죠.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억, 일종의 ‘기억의 오류(glitch)’ 같은 향수 말이에요. 제겐 이처럼 그의 모든 녹턴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머시브 공연도 종종 선보이는데요. 제 역할은 과거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 음악을 오늘날에도 충실히 전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때때로 전통이라는 틀 안에 갇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곤 해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다양한 도구와 형식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저는 이런 기술을 단지 시각적 장치로 쓰기보다는, 음악에 담긴 정서와 이야기를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어요. 음반 〈Echoes of Life〉(2021)에서는 건축가 하칸 데미렐(Hakan Demirel) 팀과 협업했죠. 이들이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배경으로 라이브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Echoes of Life〉 실황을 구상하며, 관객에게 단순한 프로그램 북 이상의 것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작품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이스탄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하칸 데미렐을 만났어요. 1년에 걸친 긴 협업 끝에, 하칸 팀은 제게 음악의 감정적 흐름을 시각적으로 반영한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줬어요. 서사 중심의 영상이 아니라 빛과 구조, 질감으로 구성한 시각적 세계였죠. 저는 건축과 음악이 모두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믿어요. 어떤 음악이나 공간은 문득 우리를 특정한 순간이나 감정으로 데려다주기도 하니까요. 둘 다 감정을 담는 그릇이자 개인적 경험이 살아 숨 쉬는 장소죠. 쇼팽의 프렐류드 사이사이 현대음악을 배치한 음반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Lacrimosa)’를 당신이 편곡한 ‘Lullaby to Eternity’도 넣었고요. 음반에 수록한 현대음악은 지난 60년 사이 작곡한 것이에요. 생존 작곡가들의 곡도 있죠. 저마다 다른 작곡 스타일을 대표하는 곡을 19세기 쇼팽의 프렐류드 사이에 배치해보니, 오히려 쇼팽의 음악이 얼마나 현대적이고 도발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것인지 뚜렷이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가 음악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그 음악이 놓인 맥락’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특히 그 음악이 보수적이고 낡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현대적이고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지를요.

에드바르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A단조와 서정 소품집이 수록된 음반 〈Wonderland〉(2016).

평소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제 모든 프로젝트는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돼요. ‘어떤 음악을 왜, 어떻게 나누고 싶은가?’ 어떤 아이디어는 갑작스레 떠오르고, 때론 몇 년에 걸쳐 조용히 자라나기도 해요. 제가 보고 듣는 것, 나누는 대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열어주는 창의적 가능성. 그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에요.
2008년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한 뒤 꾸준히 음반을 발매해왔습니다. 당신의 음반은 애플 뮤직 클래시컬 스트리밍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현재 리스닝 시장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우리 시대의 리스너들이 어떤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람들이 ‘진정성’에 끌린다고 믿어요. 특히 젊은 세대는 클래식 음악이 단순화되기를 바라지 않아요. 권위적인 것을 원하지도 않죠. 대신 더 인간적이고, 접근하기 쉽고, 살아 있는 무언가를 원해요. 디지털 세상을 공연장과 분리해 생각하기보다는 창작 활동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훨씬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그들과 연결될 수 있어요. 관객이 머무는 공간으로 다가가 우리 세계로 초대할 수 있는 거죠.
맨발, 매니큐어, 볼드한 액세서리 등은 이제 당신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저처음부터 ‘시그너처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단지 콘서트홀 하면 흔히 떠올리는 드레스 코드나 에티켓에 의미를 두지 않을 뿐이죠.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특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패션과 미학에 대해 늘 실험적이었어요. 그 또한 하나의 표현 방식이니까요. 심플하게 말하면, 저는 맨발로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편해요. 가방 디자인도 합니다. 독일 패션 브랜드 요스트(Jost)를 위해 디자인한 오리가미 가방이 인상적이었어요. 디자인과 관련된 건 뭐든 좋아해요. 그래서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함께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죠. 그 작업이 제게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예술가나 협업하고픈 작가가 있다면요?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레피크 아나돌(Refik Anadol),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의 창작 세계를 깊이 존경합니다.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죠. 음악은 우리를 ‘듣는 행위’ 속에서 하나로 연결합니다. 서로를 구분 짓기보다는 함께 가진 공통점을 보게 하죠. 또 음악은 집중력, 공감 능력 그리고 상상력을 확장해요. 음악은 우리가 더 깊이 성찰하고, 구별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듣는 예술’이에요.

 

전윤혜(음악 평론가)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마스트미디어, 유니버설뮤직